[IB토마토 이성은 기자]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목표를 조기 달성했으나, 우량 자산으로 꼽히는 대기업 대출 규모는 여전히 작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축소 압박과 중소기업 차주의 상환능력으로 실행 신규 대출 가능 범위가 좁아지는 가운데 이익 창출 기반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 본점 (사진=하나은행)
대기업 대출 '미미'
9일 하나은행에 따르면 대기업 대출 잔액은 29조9200억원이다. 4대 시중은행(KB·신한·우리·하나) 중 가장 적다. 2분기 말 기준 각 사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KB국민은행이 41조7000억원, 신한은행 38조9589억원, 우리은행 52조2020억원이다. 가장 규모가 큰 우리은행과는 22조2820억원 차이다.
하나은행은 대기업 대출은 규모 자체가 가장 작을 뿐만 아니라 1분기에 비해 증가 규모도 가장 열위하다. 같은 기간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한 은행은 신한은행으로, 3개월 만에 대기업 대출만 5조4930억원 증가시켰다. 반면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3월 말 대기업대출 규모인 27조7470억원에서 2조1730억원 증가에 그쳐 4대 은행 중 증가 폭이 가장 좁았다. 하나은행의 3개월간 대기업대출 증가율은 7.8%로, 우리은행·국민은행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대기업대출을 포함한 기업 대출 규모도 하나은행이 가장 작았다. 6월 말 하나은행의 기업대출 총액은 175조1820억원이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이 180조원, 신한은행이 176조5729억원, 우리은행이 182조9360억원을 기록했다.
기업대출이 총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다. 대기업대출이 4대 은행 중 가장 많은 우리은행의 경우 대출 총액에서 대기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6.1%이다. 반면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 비중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에 그쳤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의 총대출 대비 대기업대출 비중은 11.9%, 신한은행은 12.6%를 기록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우량 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연간 성장 목표를 상반기 내 조기 달성했다”라면서 “영업 현장 의견을 상품 등에 반영해 기업 대출 확대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영업현장 역량 관건
하나은행 대기업 대출이 돋보이지 못하는 것은 기업금융 부문에 전통강자가 있어서다. 하나은행은 2015년 외환은행과 합병하면서 외환 부문을 강화했다. 한국투자금융으로 금융 업권에 첫 발을 디딘 만큼 은행업권 내에서도 외환뿐만 아니라 자산관리(WM) 역량도 탁월하다.
같은 맥락으로 KB국민은행의 경우 한국주택은행 합병을 기반으로 부동산과 리테일 부문에서 탄탄하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은행업권 내에서 각각 기관금융과 기업금융의 강자로 여겨진다. 다만 각 은행에서 주력하는 서비스와 상품이 있음에도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 대출 확대는 은행마다 힘을 쏟는 전략이다. 은행의 주요 수익원이 대출을 통해 받는 이자기 때문이다. 이자 이익이 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90%를 웃돈다.
하지만 이자 수익만 기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난해 초부터 금리가 높아져 개인사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 대출에서 건전성 악화가 본격화됐다. 늘어난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업자와 법인이 속출한 것이다.
가계 대출 증가는 더욱 난감하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에 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다. 오는 9월에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시행된다. 스트레스 DSR은 차주에게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 대출한도를 산출한다. 가산금리는 실제 금리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높을수록 대출한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당국이 대출 규제로 은행에 가계대출 압박 수위를 올리는 것이다.
하나은행이 이자수익 증대를 위해 대기업 대출에 집중하는 이유다. 대기업 대출 특성상 분산 대출을 하더라도 주거래은행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물론 신규 대출 외에도 기존 대출 기업에서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추가 대출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한계가 있어 신규 대출을 끌어내는 것이 대기업 대출 성패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수가 정해져 있어 결국 은행 간 파이 뺏기 싸움으로 번지고 있으나 특별한 전략 없이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도 대기업 신규 대출은 은행별 영업현장의 역량 차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각 사의 전신 은행과 역사에 따라 부문별 강점이 갈린다”라면서 “대기업이 분산 대출을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주거래은행은 바꾸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 영업 현장 역량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