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이커머스 업체 티몬과 위메프에서 거래 대금 지급 지연사태가 이어지면서 모회사인 큐텐의 2대주주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R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의 행보가 주목된다. 현재 대금 지급이 지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큐텐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있다. 큐텐은 2022년 9월 지분교환 방식으로 티몬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KRR와 앵커PE는 큐텐의 2대주주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티몬이 사실상 시장 퇴출을 앞둔 지금 두 사모펀드는 투자회수(엑시트)는 커녕 투자실패에 따른 손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걷잡을 수 없는 티몬·위메프 사태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는 25일 서울 삼성동 위메프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고객이 가장 급하게 원하시는 환불을 완수하려고 한다"라며 "현재 현장에서 700건을 완료했고 소상공인·영세상인 등 판매대금 지급 문제에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주까지 티몬과 위메프를 합친 미정산금은 1000억원 정도고 정산대금은 큐텐 차원에서 확보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가 25일 위메프 본사에서 환불받으려는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류 대표가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이달 들어 불거진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때문이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위메프에서 정산일인 지난 8일에 판매 대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위메프의 모회사 큐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스템 오류에 의해 정산이 지연되었을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22일 티몬이 대금정산 무기한 지연을 선언하면서부터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지난 24일 KG이니시스, NHN KCP, 토스페이먼츠 등 주요 신용카드 결제대행사가 티몬에서 결제 취소 건에 한도를 설정하고 신규 결제는 차단했다. 여행사들은 티몬과 위메프에서 여행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정산금 지급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KB국민은행은 티몬과 위메프에 대한 선정산대출 실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했고 SC제일은행도 이들 회사에 대한 선정산대출 취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엑시트하려다 2대주주된 'KRR·앵커PE'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큐텐의 무리한 사업 확장에 있다. 큐텐은 현재 신세계그룹 산하 계열사인 G마켓 창립자 구영배 대표가 설립한 싱가포르 국적의 이커머스 기업이다.
구 대표는 1999년 인터파크에 입사해 사내 벤처 형태로 2003년 ‘구스닥’을 창립했고 사명을 G마켓으로 변경했다. 이후 2006년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2009년 이베이에 매각했다. 회사 매각 후 ‘한국에서 10년간 겸업 금지’ 조항에 따라 한국 시장이 아닌 동남아 시장에 눈을 돌려 전자상거래 플랫폼 큐텐을 창업했다.
서류상으로는 싱가포르 국적이지만 큐텐은 사실상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염두에 두고 창립됐다. 큐텐은 구 대표의 겸업금지 기간이 만료된 2020년부터 본격적인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했다. 큐텐은 2022년 9월에는 티몬, 2023년엔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를 인수했다. 이어 올해에도 미국 쇼핑플랫폼 위시와 애경그룹 온라인 쇼핑몰인 AK몰도 인수했다.
이미 2021년까지 누적 적자가 4299억원에 달해 사실상 완전자본잠식상태였던 큐텐이 회사 쇼핑에 나설 수 있던 이유는 지분 교환 방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큐텐은 2022년 사모펀드 앵커PE와 KKR가 보유한 티몬 지분 100%를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지분과 교환하는 형태로 인수했다.
이에 따라 앵커PE와 KRR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몬스터홀딩스는 큐텐의 2대주주가 됐다. 큐텐이 싱가포르기업청(ACRA)에 가장 최근 제출한 2022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큐텐의 전체 지분 32.24%을 보유한 2대주주로 올라섰다. 앞서 티몬의 매각 당시에도 티몬은 연이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모펀드들 입장에선 연이은 적자로 엑시트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큐텐으로 매각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큐텐과의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수도 있고 이어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계획대로 나스닥에 상장된다면 충분히 엑시트가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구원 투수 VS 손실 감수…'고심 중'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을 통해 티몬에 대한 엑시트가 가능하리라 기대했던 KRR와 앵커PE였지만 큐텐은 올해 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메프와 티몬 모두 이렇다할 시너시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큐텐은 올해에도 회사 사들이기에 열중했다.
지난 2월 큐텐은 미국 기반의 글로벌 쇼핑플랫폼 위시를 1억7300만달러, 한화로 약 23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로서도 티몬·위메프 주요 계열사는 적자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큐익스프레스 상장을 위한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결국 큐텐은 판매자 정산에 쓸 자금을 인수대금으로 사용하는 ‘돌려막기’를 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들어 티몬과 위메프가 자주 실시한 상품권 할인 선주문 판매가 단기간 동안 쓸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심이 이미 퍼져 있었다.
실제 티몬과 위메프는 선불충전금인 티몬캐시와 문화상품권·배달앱 금액권 등에 대해 7~10% 할인판매하는 행사를 최근 자주 열었다. 이 가운데 구매 4주 후 상품권을 발송한다는 ‘선주문’ 조건으로 판매됐는데 사실상 4주짜리 단기 사채를 10%가 못되는 이율로 무보증으로 일반 소비자로부터 빌린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대주주인 KRR·앵커PE의 고심이 깊어졌다. 두 사모펀드는 인내심을 가지고 투자사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는 편이다. 앞서 KRR은 지난 2023년 부동산 PF 유동성 위기를 겪던 태영그룹의 지주사
티와이홀딩스(363280)에 연이율 13%의 4000억원 회사채 인수에 참여했고 이어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전량을 2400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이어 평택싸이로 지분 37.5%도 600억원에 매입해 지원한 바 있다. 앵커PE도 이커머스 기업 컬리의 전환우선주(CPS) 가격 조정 과정에서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번 큐텐 사태에 대해서는 손실을 감내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피해 대상이 일반 개인 사업자뿐만 아니라 대형 여행사와 유통사까지 있는 상황에서 자칫 경영권을 행사할 경우 책임까지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두 펀드가 티몬에 투자한 총액은 2019년에 500억원, 2021년에 500억원으로 총 1000억원 내외로 파악된다"라며 "그러나 현재 큐텐의 미지급금이 일부 언론에 따르면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온 상황에서 경영권을 행사하느니 추후 파산 등의 절차를 밟고 일부라도 만회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2015년에 신현성 전 대표와 같이 경영권을 인수할 때만 해도 아직 쿠팡 같은 경쟁자도 없었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겠지만 이후 티몬은 쿠팡처럼 물류센터와 같은 건설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다"라면서 "오로지 기업공개(IPO)만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이어가다 보니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