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경기침체로 인한 기업 부실은 은행의 건전성을 흔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은행들은 하나 같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로 된서리를 맞았다. 피해 규모가 제각각이라 영업 성과나 실적에 상관없이 은행권 서열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은 저마다 기업 대출을 늘리는 한편, 비이자이익 증대와 해외시장 진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며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다. <IB토마토>는 금융시장의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분야별 리딩 뱅크를 가려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성은 기자] 은행권이 기업 대출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주문에 '이자 장사' 비판까지 받자 무게추를 옮기는 분위기다. 게다가 금리 인상으로 인한 차주의 상환 능력 문제로 우량 자산 위주로 여신을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기존 원화 대출 규모 대비 차주별 성장률은 달라 은행별 순위가 유지될지 주목된다.
'KB', 대출 규모 1위 수성, 성장성은 '하나'
은행권의 대출 증가 전략은 성과를 거뒀다. 18일 각 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원화 대출 합계는 1222조4050억원이다. 지난해 말 1203조4596억원과 비교하면 3개월 만에 1.6% 증가했다.
원화 대출 규모가 가장 큰 은행은 전통 강자인 국민은행이다. 지난해 말 국민은행의 원화 대출 잔액은 341조6438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4% 증가했다.
지난 1년간 증가 폭은 하나은행이 가장 컸다. 2023년 하나은행 원화 대출 규모는 289조8455억원으로 2022년 271조7846억원 대비 6.6% 늘었다. 증가액으로는 18조609억원이다. 우리은행 15조7262억원, 국민은행 13조312억원, 신한은행 8조5493억원이 뒤를 이었다.
은행권이 이자 수익 의존도가 높은 만큼 대출은 당기순익과도 연관성이 짙다. 실제로 원화 대출 증가폭이 가장 컸던 하나은행이 지난해 3조476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총 순익에서도 1위에 올랐다. 지난해 하나은행의 이자수익은 18조6582억원으로 전년 12조3841대비 50% 넘게 증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은행권이 가계 대출 규제 등으로 기업 대출을 특정해 공격적인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기업 대출로 무게추 이동
최근 은행권이 원화 대출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힘을 쏟는 분야는 기업 대출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업 대출을 영업이익 증대의 돌파구로 삼았다. 각 은행은 금리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업 고객 모시기 경쟁이 한창이다. 물론 전통적인 강자가 있지만 증가율과 증가액 추이가 달라 순위가 바뀌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원화 대출 규모 1위에 이어 기업 대출 잔액 규모도 가장 컸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국민은행 175조1574억원 ▲신한은행 155조6404억원 ▲우리은행 142조5455억원 ▲하나은행 157조9412억원이다.
하지만 증가율은 원화 대출에 이어 하나은행의 상승세가 가팔랐다. 하나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2022년 137조8962억원에서 지난해 157조9412억원으로 14.5% 증가했다. 대기업은 전년 대비 32.6%, 중소기업대출은 11.6%를 증가시킨 덕분이다. 규모 면에서 2위를 차지한 하나은행은 1위인 국민은행과의 격차를 2022년 24조7128억원에서 1년 새 17조2162억원까지 빠른 속도로 좁히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시장경쟁력 있는 제품은 물론, 영업 현장에서도 정밀한 타깃 리스트를 제공한다"라며 "신규 기업 대출 유치 예산지원 이벤트와 같은 영업현장 지원 등으로 기업금융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대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기업 부문에서는 우리은행이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 가장 높은 비율로 기업대출 규모가 늘었다. 우리은행의 대기업대출 규모는 4대 은행 중 가장 적지만 2022년 18조2728억원에서 지난해 24조9978억원으로 36.8% 늘렸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주채권은행으로서 보유한 정보력 등을 기반으로 대출 확대에 대한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2022년 우리은행은 주채무계열 38개 계열사 중 11곳의 주채권은행으로 선정돼 시중은행 중 가장 많다.
우리은행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 금융지원 등으로 기업금융 규모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기업금융 부문의 특화채널을 구축하고 유망 중견기업을 선정해 기업금융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등 기업금융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lisheng1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