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존심 구긴 한국토지신탁…정상 복귀전 시동
2022년 별도기준 영업수익 1882억원…코람코에 밀려
시장지배력 여전히 높아…하반기 '대어급' 수주 가능성
공개 2023-05-29 06:00:00
 
[IB토마토 노제욱 기자] 지난해부터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토지신탁(034830)이 정상 복귀전에 나선다. 하반기 부동산 경기 회복 기대감 속에 정비사업 시장에 소위 '대어급' 단지들이 나올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수주 물량 회복과 함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토지신탁 사옥. (사진=한국토지신탁)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토지신탁은 올해 1분기 영업수익 413억원, 영업이익 4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3%, 67.4%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210억원에서 13억원으로 93.7% 대폭 감소했다.
 
전년도 실적 부진이 올해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연간 한국토지신탁은 영업수익 2129억원, 영업이익 533억원을 냈는데, 직전 연도 대비 각각 5.6%, 40.4% 감소한 것이었다. 당기순이익도 243억원에 그쳐, 지난 2021년(1400억원)에 비해 82.6% 줄어들었다.
 
업황 변화 따라 코람코에 영업수익 1위 자리 내줘
 
실적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매출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지난해 별도기준 영업수익 1972억원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첫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토지신탁(1882억원)이 2위로 밀려난 것이다. 매출뿐만 아니라 자본총계, 브랜드 평판 지수 등 여러 지표에서 줄곧 업계 1위를 지켜 왔던 한국토지신탁이 자존심을 구긴 것이다.
 
지난 2018년 20.9%를 기록했던 한국토지신탁의 영업수익 기준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0.8%까지 하락했다. 같은 기간 개발신탁 수익 기준 시장점유율 역시 24.4%에서 7.8%로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한국토지신탁의 수주 실적이 감소한 것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수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업계 내 시장지배력이 약화됐고, 이익창출력 또한 저하된 것이다.
 
 
한국토지신탁은 올해 1분기 기준 수주잔고에서 차입형 도시정비와 차입형 토지신탁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48%, 31.8%에 달할 정도로 해당 부문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시장 상황이 책임준공형 중심으로 변경된 점에 타격을 받았다.
 
신탁사업은 차입형, 관리형, 책임준공형 등으로 분류된다. '차입형'은 신탁사가 금융기관이나 시공사로부터 직접 사업비를 조달하고, '책임준공형'은 위탁자(토지 소유자)가 사업 비용을 부담하되 신탁사가 준공 과정의 위험을 부담 및 관리한다. 그중 최근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신탁 방식은 책임준공형이다.
 
차입형은 자금조달 및 분양실적과 연관된 만큼 쉽게 말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사업의 신탁 수수료는 매출액의 4~5% 이내다. 반면 책임준공형은 사업을 정상적으로 마무리만 한다면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입형에 비해 리스크가 덜하다. 대신 신탁 수수료는 매출액의 2% 수준으로 비교적 낮다.
 
신탁업계에 따르면 최근 4~5년 전부터 책임준공형 상품이 등장했고, 수수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신탁사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챙겨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정비사업을 제외하고 토지신탁의 사업의 경우에는 책임준공형을 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개발사업을 원하는 토지주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업의 리스크를 낮추는 방향을 택하기 원하는데,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방식을 통해 낮은 수수료로 사업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신탁이 수주 비중을 높인 도시정비 부문의 사업들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매출인식 시점이 지연되며 수익창출력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도 실적 부진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고금리,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을 겪는 조합도 많고, 부동산 시세 하락에 따라 일부 조합들이 분양일정을 연기함에 따라 정비사업들의 일정이 지연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진행은 조합원들의 동의가 전제되는 것인데, 최근 악화된 건설 경기를 고려하면 불어난 사업비에 동의하는 조합원들이 많지 않아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시장지배력 견고…대규모 단지 수주 '유리'
 
그러나 신탁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한국토지신탁 등을 비롯해 주요 신탁사들이 실적 개선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리 인하 움직임이 점차 나타나고 있고, 원자재 가격 상승세도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어 전체적인 건설 경기가 상반기보다는 나아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기에다 서울시 조례 개정안에 따라오는 7월부터 시공사 선정에 나설 수 있는 서울시 내 대어급 단지들이 줄줄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신탁사들의 수주 물량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신탁사 도시정비사업팀 소속 관계자는 "이른바 '둔촌주공 사태'로 인해 수수료를 지급하더라도 분담금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을 택하자는 분위기가 서울 주요 단지의 조합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소위 말하는 '대어급' 단지들이 신탁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업계에서 시장지배력이 높은 한국토지신탁 등의 수주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토지신탁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선별 수주를 하는 과정에서 수치상으로 실적이 하락한 측면이 있다"라면서 "올해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전략을 수정해 나가면서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노제욱 기자 jewookis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