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잃고 ESG 고치는 현대중공업···ESG 평가 우려 확대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12곳에 인권경영위 설치하기로
9일 경주 공장서 폭발 사고···올해만 세 번째
산업재해 발생, ESG 등급 하향 사유
공개 2022-06-03 06:0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현대중공업(329180) 공장에서 사고가 잇따르면서 현대중공업의 ESG 등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ESG 위원회를 구성하며 공을 들여왔지만, 업계에서는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던 만큼 ‘사회(S)’ 부문 등에서 ‘B’등급 이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HD현대(267250))은 지난 26일 각 계열사에 인권경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6일 이미 인권경영위원회를 신설해 인권경영을 선언했고,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009540)도 인권경영선언을 채택했다. 올해 안으로 그룹 주요 계열사 10곳도 동참할 계획이다. 인권경영위원회는 각 사의 ESG최고책임자를 위원장으로 선임해 인권영향평가와 인권 교육, 인권침해 구제 등을 전담한다. 앞으로 정기적인 인권영향평가를 통해 인권경영보고서를 발간할 방침이다. 주요 인권 문제를 관리·감독해 중대 사항을 이사회 내 ESG위원회에 보고하는 것도 인권경영위원회의 역할이다.
 
인권경영선언에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인권 존중 △유엔(UN) 세계인권선언 등 국제인권규범에 대한 지지 △인권침해 예방과 구제를 위한 노력 △인권 거버넌스 체계 구성 △인권경영 실천규정 제정 △인권영향평가 실시 등 인권경영에 대한 그룹의 의지와 계획이 담겼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바로 이달 초 사고가 일어난 후에 취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인권경영 로드맵을 수립하고 인권 보호 규범을 명문화하는 등 인권경영을 추진해왔다는 것이 현대중공업그룹의 설명이지만, 공장에서의 인명피해 사고는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경주공장 질소탱크 폭발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경주소방서)
 
지난 9일 경북 경주시 현대중공업 해양배관공장에서 4.9t 액화질소탱크가 폭발해 공장 인근에 있는 자동차부품제조회사의 공장 건물이 일부 무너지면서 해당 회사 직원 3명이 다쳤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로 일어난 사고다. 4월2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판넬2공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50대 노동자가 인화성 가스로 철판을 절단하는 작업 중 가스 폭발로 날아온 공구에 맞아 숨졌다.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 측은 “지난 1월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지 68일 만에 노동자 1명이 또 재해를 당했다”라며 “폭발 사고가 빈번한데도 시정조치가 안 된 것이 원인이고, 전체 작업중지명령을 내려줄 것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하고 사측을 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는 이에 더해 “타 조선3사(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노무관리가 미흡하고 현재까지 473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음에도 단 한 명이라도 사업주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재직기간만 채우다 나가려는 식의 태도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사고 작업장을 대상으로 작업중지명령을 내렸고, 지난달 26일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와 협력업체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중재대해법 시행 3일 전이었던 지난 1월24일에는 현대중공업 2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크레인과 공장 내 철제 기둥 사이에 가슴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4월 ESG위원회 설치한 후 1년 만에 두 건의 사망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인권경영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 측의 주장대로 국내 조선 3사로 꼽히는 삼성중공업(010140)은 올해 들어 인명피해가 발생한 적이 없다. 대우조선해양(042660)에서는 한 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지난 3월 타워크레인 보수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근로자 한 명이 위에서 떨어진 자재에 맞아 사망했다. 고용노동부 부산노동청은 해당 사고 조사를 위해 거제 대우조선해양 본사와 협력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중대재해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이를 소명할 계획"이라며 "‘안전 최우선’을 경영방침의 제1의 원칙으로 두고 현장안전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해 ‘안전경영위원회’와 ‘안전-생산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안전에 대한 빠른 의사결정을 실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명 사고가 생겼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경영 측면에서 우려가 되는 점은 회사의 신뢰도와 ESG 등급 하락이다. 지난해 상장한 현대중공업은 원래대로라면 올해는 ESG 등급 책정을 피할 수 있었다. 기업평가기관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전년도 상장한 기업에 대해서는 유예 기간을 부여해 당해 평가하지 않기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측이 상장 이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사전 평가를 의뢰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측은 “현대중공업·SK바이오사이언스·DL이앤씨·LX홀딩스가 사전 평가를 요청해 유예 기간 없이 평가 대상에 편입시켰다”라고 밝혔다.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신규 상장 기업의 경우 해당 기업의 요청이 있으면 1년이 지나지 않았더라도 바로 평가 대상이 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와 기업 피드백은 오는 9월 초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현재 매 분기 초에 ESG 위원회를 열어 기업의 등급을 결정·발표하는 점을 고려하면 오는 10월 초에는 현대중공업의 ESG 등급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현대중공업도 사회 부문 등에서 A등급 이상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두 개 분기 연속으로 산업재해로 인한 인명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의 경우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의 사회적책임(S) 부문 등급이 반복적인 산업재해 발생으로 A+에서 A로 강등됐고, 현대제철(004020)도 같은 이유로 사회 부문 등급이 A에서 B+로 하향됐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는 사회책임 부문 등급 조정 이슈에 해당한다”라며 “지속적인 사망사고 발생은 생산성 저해, 경영활동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삼성중공업의 사회 부문 ESG 등급은 A, 대우조선해양의 등급은 A+다. 현대중공업이 A등급 이상을 받지 못하면 첫 등급부터 아쉬운 성적표를 받는 것에 더해 조선 3사 중 유일한 사회 부문 B등급대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지난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도 관심이다. 1월24일에 있었던 사고는 시행 전이어서 적용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4월에 벌어진 사고의 경우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중대산업재해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중대시민재해로 나눌 수 있는데,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인 사업장에 우선 적용된다. 사고가 난 울산조선소는 원청과 하청을 포함해 3만명이 넘는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이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중대산업재해의 범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등이다. 
 
이달 초 경주에서 발생한 사고는 피해자가 현대중공업에 속한 근로자가 아니어서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될 수 있다. 다만 중재시민재해의 적용 범위가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발생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 등이어서 3명이 다친 경주 공장 사고는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의 ESG 기조는 친환경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있다”라며 “경주 공장 사고를 계기로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매출의 2%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여 현장 안전수준 유지 및 개선에 투자하고 있고, 특히 안전사고의 근원적 예방을 위해 '안전시설물 개선 TF'를 발족해 현장 안전시설물 개선에 힘쓰고 있다"라며 "ESG 중 S(사회) 부문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다양한 부분에서 노력을 기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