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적자' 두산퓨얼셀, 수소법 통과에도 불안한 까닭
두산퓨얼셀, 수주 부진에 1분기 적자전환
연말 에너지 정책 확정 전까지는 변동성 클 듯
공개 2022-05-13 08:50:00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수소법 개정을 앞두고 관련 기업들에 대한 기대가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소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청정수소의 범위·의무구매 비율 등에 따라 유명무실한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 분기 수주 지연 등에 적자를 본 두산퓨얼셀(336260)은 수소법의 세부 시행령이 정해질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다.
 
두산퓨얼셀 기재정정 공시 발췌.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퓨얼셀은 지난 4일 두 건의 기재정정 공시를 올렸다. 두 건 모두 계약 기간 변경에 대한 공시로,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계약과 장기유지보수계약(LTSA) 기간이 미뤄졌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연료전지 발전소에 약 20㎿급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하는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계약’ 건의 경우 지난 9일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종료일이 올해 10월11일로 변경됐다. 장기유지보수계약(LTSA)은 공급한 연료전지 시스템에 대한 유지보수를 위한 계약이기에 일반적으로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계약 종료와 함께 계약 기간이 시작된다. 이 건 역시 계약 기간 시작일이 지난 5월9일에서 10월11일로 미뤄졌다. 
 
두산퓨얼셀은 계약 기간 변경·공시 유보 사유에 대해 ‘경영상 비밀 유지’라고 명시했다. 계약 기간이 미뤄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 수소 정책의 불확실성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이른바 수소법이 통과됐지만, 구체적 시행령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산퓨얼셀의 공급 대상인 발전소 측이 정부의 정책 구체화에 맞춰 사업을 재정비한 후 공급계약을 종료하려는 의도로 계약 기간을 미룬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번에 계약 기간이 변경된 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계약의 규모는 800억원대, 장기유지보수계약의 계약금액은 900억원대로 각각 두산퓨얼셀 2021년 총매출의 21%·23.6%가량이다. 거의 분기 매출에 해당하는 규모의 계약이 미뤄지면서 두산퓨얼셀의 2분기 실적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두산퓨얼셀은 이미 1분기에 수주 지연으로 적자를 냈다. 별도기준으로 매출액은 28.8%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86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이익도 적자로 돌아서 –29억원을 기록했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앞두고 연료전지 발주가 감소한 것이 수주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수소법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지난해에도 기대감보다 큰 불확실성에 두산퓨얼셀의 매출액·영업이익·당기순이익이 모두 줄었다. 특히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30% 이상 감소했다. 최재호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연구위원은 “발전용 연료전지 산업은 정부 에너지정책 변화에 따라 신규 발주가 급격히 감소하거나 신기술 개발 등으로 사업경쟁력이 크게 변동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수소법 통과로 두산퓨얼셀 등 관련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보지만, 일각에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최근 통과된 수소법에 담긴 ‘청정수소’의 범위에 그린·블루수소 외에 그레이수소 등 다른 수소는 포함되지 않았다. 청정수소란 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를 말하는데, 그린수소는 물을 분해하는 방식으로 만든 수소이고 블루수소는 천연가스로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기술로 제거한 수소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연료전지발전용 수소는 천연가스 개질(改質) 방식으로 만들어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그레이수소’다. 현재 국내에서 실증사업 등을 제외하고 생산되는 수소는 그레이수소뿐이다.
 
산업부 측은 ‘천연가스 개질수소의 경우 현재 설계하고 있는 청정수소인증제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을 충족하면 청정수소로 인정되겠지만 만약 범위를 벗어난다면 빠지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청정수소의 범위에서 그레이수소 등이 빠지면, 그린수소 양산 예상 시점인 2025년까지는 두산퓨얼셀 등 발전 관련 기업에 유명무실한 수소법이 될 수도 있다. 그레이수소 활용 발전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지 않고, 관련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연료전지의 수요도 줄어 두산퓨얼셀의 실적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청정수소에 그레이수소가 포함된다고 해도 의무발전량이 문제다. 이번 수소법 통과로 국내에도 청정수소발전 전용시장이 도입될 예정인데, 수소발전 전용시장은 각 발전사가 정부에서 정하는 연간 국내 전체 수소 발전량 안에서 경쟁 입찰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부가 정하는 연간 수소 발전량이 크지 않으면 시장 활성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청정수소 원전을 중심으로 에너지기본계획을 짜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수소 발전량을 어느 정도로 책정할지도 두산퓨얼셀의 실적 개선을 위해 해소돼야 하는 불확실성 중 하나다.
 
정부는 법안 시행 후 연구용역을 거쳐 연말쯤 구체적인 청정수소의 범위를 정할 방침이다. 새로운 에너지기본계획인 ‘10차 전력수급계획’과 함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연말까지는 두산퓨얼셀을 비롯한 연료전지 기업들이 정책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정형락 하이엑시엄 사장, 존 캠벨 발라드 최고사업책임자, 제후석 두산퓨얼셀 부사장이(왼쪽부터) 엄무협약 이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두산퓨얼셀
 
두산퓨얼셀도 이점을 인지한 듯 사업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발라드파워시스템즈·하이엑시엄과 모빌리티용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개발·수소버스 보급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발라드파워시스템즈(Ballard Power Systems, 발라드)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EMFC Polymer Electrolyte Membrane Fuel Cell) 사업을 하는 캐나다 기업으로, 수소모빌리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하이엑시엄(HyAxiom)은 ㈜두산의 자회사로, 인산형 연료전지(PAFC Phosphoric Acid Fuel Cell) 분야에 강점이 있다.  
 
이번 협약으로 3사는 △모빌리티용 수소연료전지(PEMFC) 시스템 개발과 양산 △수소버스 판매 △수소·전기 충전소 공급 등을 위해 협력할 방침이다. 시범적으로 오는 2023년 국내 수소버스 사업을 진행하며, 2024년에는 하이엑시엄이 개발한 모빌리티용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버스를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두산퓨얼셀은 쉘(Shell)·한국조선해양(009540)(KSOE)과 손잡고 친환경 선박용 연료전지 개발·실증 사업도 진행 중이다. 3사는 올해 2월 ‘선박용 연료전지 실증 협력의향서(LOI, Letter Of Intent)’를 체결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두산퓨얼셀은 2024년까지 선박용 연료전지 시스템 개발과 선급 인증을 완료하고, 2025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폐기 정책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두산에너빌리티(034020)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발전용 연료전지에 의존하기보다는 미리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혀 다양한 수익원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현재 매출의 대부분이 발전용 연료전지 부문에서 발생하는 만큼,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한 실적 변동성은 당분간 줄어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학계 관계자는 “수소 산업은 이해관계자가 많고, 시행령에 따라 산업별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어 정부도 구체적 시행령 마련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전까지 업계의 불확실성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