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에 공들이는 하이트진로…성과는 '두고 볼 일'
법인형 엔젤투자자…초기 스타트업에 투자
식품기업부터 브랜드개발사 등 다양한 기업에 '배팅'
지난해 기준 피투자사 대부분 순손실···성과는 시간 필요
공개 2022-03-30 08:50:00
 
[IB토마토 변세영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주류 가격 인상 효과로 실적 낙관론이 쏟아지고 있는 하이트진로(000080)가 지분투자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주류회사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 속에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2년 새 1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발굴하며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피투자기업이 모두 적자인데다 하이트진로의 본업인 주류업과도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가시적인 지분투자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의 1분기 연결 매출액은 5841억원, 영업이익은 561억원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2%, 6% 증가한 수치다. 연간으로 봐도 ‘V자’ 반등이 가시화되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하이트진로의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1%, 16.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이트진로는 코로나19 외부활동 제한으로 음식점 등 채널 매출에 직격탄을 입어왔는데, 올해 들어 거리두기 완화 움직임이 커지자 주가는 지난 1월 저점 2만7900원 대비 30% 이상 뛰어올랐다. 여기에 하이트진로가 최근 가격 인상 정책을 발표하면서 수익성 향상 기대감까지 추가됐다. 이들은 지난달 참이슬(후레쉬·오리지널)과 진로의 공장 출고가격을 7.9% 인상한 데 이어 이달에는 테라와 하이트 등 주요 맥주 출고가도 6년 만에 평균 7.7% 인상했다.
 
하이트진로 업황에 핑크빛 기대감이 나오는 가운데, 이들이 신규 먹거리로 시도한 ‘지분투자’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이트진로는 법인형 엔젤투자자다. 국내 영리기업이 법인형 엔젤투자자로 등극한 케이스는 하이트진로가 최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2018년부터 더벤처스와 함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다양한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더벤처스는 하이트진로가 2018년 9억원가량을 투자해 지분 2%를 인수한 전문투자사다.
 
 
  
엔젤투자자는 스타트업 극초기 단계에 개인 단위로 자금을 투자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VC보다도 작은 개념이다. 실제 하이트진로가 개별 기업에 투자한 금액도 각 5억원 내외다. 엔젤투자 이후 스타트업이 성장해 규모가 커지면 시드(Seed)부터 시리즈 A, B 등으로 투자 단계가 넘어간다.
 
지금까지 하이트진로가 투자·발굴한 기업은 약 15개 내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투자가 확 늘었다. 2020년 4월 맛집메뉴를 배송해주는 스타트업 아빠컴퍼니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단순 투자한 기업만 11개, 총투자금액만 30억원이 넘는다. 코로나19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2% 감소하는 등 본업이 정체하자 미래를 이끌 신성장동력이 필요해진 것도 하나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하이트진로는 그룹 차원에서 서초 사옥에 공유오피스를 만들고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피투자기업을 살펴보면 식품에서부터 소프트웨어 등 업종이 다양하다. 식품판매 플랫폼 업을 영위하는 식탁이있는삶, 수산물 온라인 중개 플랫폼 푸디슨, 스마트팜 솔루션 기업 퍼밋 등에 투자했다. 이 중에서 ‘식탁이있는삶’에는 최초 2억원을 투자한 뒤 3억원 더 재투자했고, 올해 2월에는 퍼밋에 후속 투자를 단행했다.
 
본업인 주류업과 다소 관련이 없는 업황에도 활발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 퀴즈 서비스 운영사 데브헤드, 물류플랫폼 스페이스리버, 운동플랫폼 스톤아이, 브랜드개발사 슈퍼블릭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기업 발굴에 매진하는 중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투자기업 업종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사업 분야를 스터디하고 있다”라면서 “플랫폼이나 B2B채널 등 여러 산업 성장성을 판단해 (우리와)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고 있지만, 당장 직접적인 사업과 연결돼 어떤 결과물을 내려는 투자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가 투자한 식자재 중개 플랫폼 엑스바엑스. 사진=하이트진로
 
다만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가 새로운 먹거리로 낙점한 벤처투자 사업이 단기간에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들 말을 빌리면 스타트업 자체가 업종에 따라 성장 궤도에 오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천차만별이고, 이 과정에서 사업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기업도 수두룩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실제로 하이트진로가 2년간 투자한 스타트업 11개 중 지난해 퍼밋을 제외한 모든 기업이 순손실을 내며 수익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하이트진로가 단순투자로 출자한 아빠컴퍼니는 지난해 4억4000만원, 옴니아트 2억원, 슈퍼블릭 3억원, 재투자를 단행한 ‘식탁이있는삶’은 45억원의 적자를 봤다. 물론 아직 하이트진로가 단순투자 여파로 지분법 손실을 인식한 내용은 없지만, 향후 피투자기업들이 적자를 확대하면 투자 손실이 발생해 당기순이익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투자금액 자체가 적기도 해서 지금 당장 피투자기업 손실이 하이트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성을 믿고 지원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변세영 기자 seyo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