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SK텔레콤(017670)(SKT)이 인공지능(AI)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AI반도체 부문을 계열사로 확장해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팹리스)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AI반도체 분야가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업계의 이목은 새로 설립될 사피온 코리아(SAPEON Korea, 가칭)의 향방에 집중되고 있다.
22일 SK텔레콤은 공시를 통해 신설 예정 기업인 사피온 코리아 AI반도체 사업 전체를 양도한다고 밝혔다. 앙도 예정인 AI반도체 사업의 규모는 311억원 수준이며, 정식 양도 일자는 오는 1월4일이다. 구체적인 사업 방향과 조직 구성 등은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 2022’에서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와 함께 개발한 사피온 X220. 사진/SK텔레콤
SKT는 양도 목적에 대해 ‘AI반도체 기술의 사업화·경영효율화’라고 설명했다. AI반도체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다. AI반도체란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가 결합한 형태로,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인공지능(AI)에 적합한 전용 반도체를 말한다. AI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70억달러에서 2030년에는 1179억달러, 우리돈 약 130조원 규모로 연평균 26.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T가 AI반도체 사업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다.
통신기업인 SKT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생소할 수는 있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SKT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연구·개발 전문 조직인 테크(T3K)를 통해 AI반도체 사업을 추진해왔다. 김윤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총괄하고, 이종민 T3K 이노베이션 담당과 류수정 AI 액셀러레이터 담당이 개발을 수행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약 4년간 이루어진 연구의 결실로 데이터센터용 AI반도체 ‘사피온 X220’을 개발했다. SK사피온 X220은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연산 속도가 1.5배 빠르면서도 전력 사용량은 80%에 불과하다. 가격도 시중 반도체의 절반 수준이다. SKT는 지난 6월부터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기업 NHN과 함께 AI반도체 사피온에 대한 기술 실증을 진행 중이며, 내년에는 학습 능력을 추가한 X330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제 업계의 이목은 SKT의 신설 예정 자회사 사피온 코리아가 어떤 형태로 설립되는가에 쏠리고 있다. 먼저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수행하는 종합 회사(IDM)가 되기 위해서는 첨단 제품인 AI반도체를 생산할 정도의 기술력과 설비가 필요한데, 현재 SK하이닉스조차 AI반도체 생산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TSMC의 12인치 웨이퍼. 사진/TSMC
파운드리는 사용하는 웨이퍼(반도체 원판) 지름에 따라 300mm(12인치)와 200mm(8인치)로 나뉘는데, 이 중 12인치가 최신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에 적용된다. 첨단 시스템반도체인 AI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12인치용 장비와 기술이 필요하다. 반면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는 아직 8인치에 집중돼있다. 첨단 제품에 들어가지 않을 뿐 대부분의 장치에 활용되는 반도체가 8인치 시스템반도체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급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반도체도 8인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시스템반도체 전문 자회사 ‘SK하이닉스 시스템IC’ 뿐만 아니라 인수 진행 중인 ‘키파운드리’ 역시 8인치 전문기업이다. 실제로 SKT는 사피온의 생산을 SK하이닉스가 아닌 대만의 TSMC에 맡겼다. 따라서 사피온 코리아가 종합 회사로 설립되기 위해서는 TSMC나 삼성전자와의 합작 등이 불가피한데, 이는 가능성이 낮은 얘기다.
하지만 팹리스 회사로 설립된다고 해도 여전히 합작회사로 세워질 가능성은 존재한다. 지난해 출시한 사피온 X220의 개발을 SK하이닉스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학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앞으로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설계 부문에서부터 고도화를 진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은 지난 2017년 분사한 자회사 SK하이닉스 시스템IC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매출은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 총매출의 2% 불과하다. SKT와의 합작으로 현재 미흡한 시스템반도체 부문의 강화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 외에 합작을 추진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히는 기업은 미국의 반도체 설계자산(IP) 회사 아테리스(Arteris)다.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현재 차세대 AI반도체 개발에 아테리스의 IP를 활용하고 있다. 아테리스의 플렉스NoC 인터커넥트(FlexNoC interconnect) IP는 첨단 반도체의 설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전력 소비를 줄이고 성능은 높인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테리스와 합작할 경우, 빠른 제품개발로 현재 엔비디아·구글 등이 선도하고 있는 AI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학계 관계자는 “많은 팹리스 기업들이 아테리스 같은 기업의 IP를 활용하고 있지만, SKT 측이 본격적으로 AI반도체 사업에 나서면서 다양한 기업과의 협력 의사를 밝힌 만큼 합작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설 AI반도체 자회사에서도 기존 사피온 개발에 공을 세운 이종민 T3K 이노베이션 담당과 류수정 AI 액셀러레이터 담당 등이 중책을 맡을 것은 분명하다”라며 “SKT가 AI반도체 사업을 얼마나 공격적으로 키워낼지 주목된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