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 가석방? 사실상 '사면'이 필요한 이유
인텔 등 반도체 경쟁사들 투자 나서며 경쟁 가속화
미국 출장 등 현장경영 위해선 사면이 더 적절
공개 2021-07-29 10:00:00
[IB토마토 김창권 기자]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고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 논의가 본격화한 가운데 현실화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이 수감된 이후 삼성전자는 올해 초 미국에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 외에 별도의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선 가석방이 아닌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처/뉴시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전국 교정시설로부터 8·15 광복절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자 명단을 받았다. 다음 달 초 열리는 가석방심사위원회를 거쳐 이들 가운데 최종 가석방 대상자가 선정된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입법예고를 통해 가석방 형기 요건을 80% 이상 복역에서 60% 이상으로 완화해 이달부터 적용하기로 했는데, 이 부회장이 가석방 요건을 충족하게 되면서 심사 대상자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바 있다. 이전에 약 1년간 구속된 기간을 제외하면 남은 형기는 약 1년 6개월로, 오는 8월이 되면 가석방 대상인 형기의 60%를 넘기게 된다.
 
'총수 부재'로 투자 멈춘 삼성…경쟁력 강화하기 위해 투자 시기 중요
 
이 부회장이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삼성전자의 투자 결정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170억달러(약 19조3000억원) 규모의 신규 파운드리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투자 발표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부지 협상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에 이어 반도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5나노 이하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의 신규 파운드리 증축을 위해 텍사스주, 뉴욕주, 애리조나주 등을 놓고 세재 혜택 등이 좋은 곳을 선택하기 위해 막바지 인센티브 협상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신규 투자와 관련해 고심하고 있는 사이 반도체 경쟁사들은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 출처/뉴시스
 
업계에 따르면 대만 TSMC는 올해 280억달러, 2024년까지 총 1280억달러를 파운드리 설비 투자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360억달러 규모의 2나노급 미국 애리조나주 신공장은 작년 말 착공을 시작했다.
 
여기에 시스템반도체 강자인 인텔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히며 TSMC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파운드리 분야에 가세해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를 투자해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여기에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확대를 위해 글로벌파운드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해외 언론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미국 파운드리 투자와 기존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와 관련한 투자 계획 외에 별도의 인수·합병(M&A)과 관련해서는 잠잠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마지막으로 추진한 대형 M&A는 2016년 11월 80억달러에 인수한 미국 차량용 전자장비 기업 하만인터내셔널이 끝이다.
 
삼성전자의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유동자산은 209조1553억원, 이중 현금성 자산만 41조395억원으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유동자산은 198조2155억원, 2019년 181조3852억원으로 매년 10조원 이상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유동자산은 현금이나 예금, 유가증권, 상품 등을 포함해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즉 삼성전자가 1년 이내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가용 자산이 200조원에 이르지만,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규 M&A가 없다는 점은 우려되고 있다.
 
현재는 수익성이 좋다고 해도 투자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발돋움인 만큼 경쟁사들과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반도체 업계는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000660)도 취약 부분으로 꼽히는 낸드플래시 사업 강화를 위해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분야 경쟁사들과의 투자 경쟁은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 요소로, 경쟁사들이 투자를 확장할수록 우리 기업들도 더 많이 투자하고 빨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가석방으로 나온다고 해도 문제…경영 참여에 제약
 
이 부회장이 8월에 가석방되더라도 취업제한을 비롯해 실제 경영 참여에 있어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게 재계의 의견이다. 가석방의 경우 형기 종료일인 내년 7월까지 보호감찰 대상으로서 법무부 감찰관이 상시적으로 이 부회장의 동선 파악이나 일정 등을 수시로 확인하는 만큼 경영활동에 있어서 일부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투자를 위해 이 부회장이 출장에 나서기 위해서는 감찰관의 허가가 필요하고 동선, 일정 등을 세밀하게 보고해야 하는데 업무상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이 부회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도 기소돼 재판 중이어서 유죄가 선고될 경우 가석방이 무효가 될 수 있다. 형법에 따라 가석방 기간 중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가석방 처분은 무효가 된다.
 
반면 사면의 경우 남은 형의 집행을 면제해 줘 구금상태에서 임시로 풀려나는 가석방과 달리 자유롭게 경영활동에 나설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을 꾸준히 건의해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이 청와대에 특별 사면을 요구했고, 재계를 대표하는 4대 그룹 총수들도 지난달 2일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에서 이를 건의하기도 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의 전제 조건 중 하나로 국민적 공감대를 언급한 만큼 사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앞서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23일 전국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이 부회장 광복절 가석방 찬반을 조사한 결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석방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66.6%로 나타났다.
 
재계 관계자는 “M&A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경영판단은 최고 결정권자가 아닌 이상 결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경쟁사들의 투자가 가속화될수록 우리 역시 대응에 나서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