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작업이 7부 능선을 넘은
SK하이닉스(000660)에 미·중 갈등이 불안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첨예한 대립이 반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중국이 자칫 몽니(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를 부려 국내 반도체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텔 낸드 사업부를 인수한 SK하이닉스가 반독점(기업결합) 심사에서 총 8개국 중 7개국(미국, 유럽연합, 한국, 대만, 브라질, 영국, 싱가포르)의 승인을 받아 마지막으로 남은 중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SK하이닉스에게 중요한 수출국 가운데 하나지만, 최근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해 중국이 인수합병(M&A) 심사를 지연시키거나 훼방을 놓을 수 있다는 의견도 일부 제기된다.
출처/SK하이닉스
이미 미국은 중국 때리기로 대표되는 반도체 공급 차단을 강조하며, 자국 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중국 내 투자를 사실상 차단하며 압박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에겐 중국 공장 증설 계획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중국 내 공장 증설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도울 것으로 우려된다”라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은 네덜란드 ASML이 만든 EUV(극자외선)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수출 허가를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핵심 제조장비로 꼽히는 EUV 장비는 실리콘 웨이퍼에 5㎚ 이하의 미세한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현재 유일한 반도체 노광장비다.
다만 미국의 압박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견제로 인해 국내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데 일부 제한되거나, 중국 사업장 내 장비 반입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005930)는 중국 시안 1공장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고 최근 2공장도 양산 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장쑤성 우시 공장에서 D램을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이 강화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 인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클라우드나 PC사용이 늘면서 낸드플래쉬 역시 서버용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라며 “SK하이닉스가 부족했던 낸드 사업에서 인텔 인수에 의한 시너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빠른 승인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은 미국 기업의 인수합병을 고의로 지연하며 무산시킨 사례가 있다. 지난 2018년 미국 퀄컴이 세계 2위 차량용 반도체기업 NXP를 인수하려 했으나 중국의 반독점 심사를 담당하는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의 승인 지연으로 무산된 바 있다. 계약 무산으로 인해 퀄컴은 NXP에 위약금 20억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에도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가 일본 반도체업체 고쿠사이일렉트릭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의 승인 심사 지연 등으로 올해 3월 인수가 무산됐다.
심사가 지연되는 사이 고쿠사이일렉트릭의 주가가 상승하며, 인수대금이 22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늘어나자 AMAT는 위약금 1750억원을 내고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뉴시스
특히 SK하이닉스의 매출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은 중국으로 올해 1분기 매출액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총 8조4941억원 가운데, 중국이 3조2347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8%에 달해 3조1971억원의 매출을 올린 미국보다 많았다.
그나마 전분기와 비교하면 3조1707억원을 기록한 중국 매출의 증가폭은 줄어들었고, 미국은 2조5262억원에서 올해 1분기 26.5% 성장하는 등 수출 다변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자칫 중국 내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의 인수대금 90억달러(한화 약 10조3000억원) 지급에도 차질에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와 관련해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인수합병 심사가 빨리 진행되서 낸드플래쉬 생산에 나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연된다고 해서 그렇게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미 인수에 나설 때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진행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을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일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당장 미·중 무역갈등에 의한 중단기적인 영향은 없는 것으로 안다”라며 “반도체 분야의 불확실성은 항상 상존해있는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