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적자' SK이노 신용등급 간신히 유지…'자금 조달 구체화'
S&P, 지난달 SK이노 신용도 하향 조치
정유 계열사는 신용등급 하락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SK IET IPO 구체화…등급 하락 방어
공개 2020-12-23 10:3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올해 2조 2000억원 이상 적자를 낸 SK이노베이션(096770)의 신용등급이 간신히 유지됐다. 지난달 외국계 신용평가사와는 다른 결과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의 정유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은 한 단계 떨어졌다. 상이한 결과가 나온 까닭은 지분 매각, 기업공개(IPO) 등 자금조달 계획이 구체화된 점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21일 한국기업평가는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SK루브리컨츠 등의 수시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은 'AA+/부정적'으로 유지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의 계열사들은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등급전망이 하향됐다. SK에너지의 신용등급은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SK인천석유화학의 신용등급은 'A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각각 한 등급씩 떨어졌다. SK루브리컨츠의 신용등급은 AA로 유지됐지만 등급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SK이노베이션은 지배 구조 상 SK(034730)그룹의 중간 지주사 형태다. 3분기 연결 기준 누적 매출액 26조 7818억원 중 별도 기준 매출액이 3조5053억원인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즉, 계열사의 수익성이 SK이노베이션의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SK이노는 2017년 이후 매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반면 차입금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출처/한국기업평가
 
SK이노베이션의 정유 계열사인 SK에너지는 연결 기준 올 3분기 매출액 15조 7434억원, 영업손실 1조7434억원을 냈다. 정유와 화학을 담당하는 SK인천석유화학 역시 매출액(별도 기준) 3조3575억원, 영업손실 6066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악의 시기를 보낸 두 계열사에서 발행한 매출이 SK이노베이션 매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그룹 내 비중이 높다.  
 
또한 배터리 사업부는 올해 흑자 전환한 LG화학(051910)과 달리 적자를 내고 있다. 최근 7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며 올해 영업손실률이 줄었지만 아직까지 20~40% 사이의 손실률을 기록 중이다. 배터리 100원을 팔 때마다 120~140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손실이 2조원을 넘은 탓에 신용평가사에서 제시한 등급하향 기준(트리거)는 의미가 퇴색됐다. 수익으로 금융비용을 커버 가능한지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를 적용하기 어렵다. 신용평가사들은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플러스임을 전제로 평가한다. 하지만 전례 없는 손실로 인해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S-Oil) 모두 커버리지 지표는 모두 최하 등급일 수밖에 없다. 
 
내년 전망도 어둡다. 송수범 한기평 연구원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가시화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충분한 백신 확보와 접종, 이동 그리고 소비 심리 회복으로 인한 뚜렷한 석유제품 수요 증가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뚜렷한 업황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SK이노의 차입금 규모. 출처/한국기업평가
 
또한 SK이노베이션은 다른 정유사보다 투자성향이 공격적이다. 올해 역시 배터리, 탈황 설비(VRDS) 등에 투자하며 자본적지출(Capex)로 2조 7900억원을 썼다. 배터리 사업의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도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아울러 예정된 매각 대금 유입은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매각한 페루 88·56 광구의 1조원 규모의 대금 유입이 늦춰지고 있다. 신평사는 회사의 채권 상환 능력을 평가하기에 투자로 인한 현금유출, 매각 대금 지연 등은 등급평가 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계 신용평가사인 S&P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며 추가 등급 하락 가능성까지 제시한 것이다. 현재 등급에서 떨어질 경우, 투기등급이 된다. S&P는 "수익성 압박과 배터리 관련 투자로 차입금 규모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S&P와 달리 SK이노베이션의 국내신용평가 등급은 최고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은 AA+인데, AA+는 금융사·이통사를 제외하면 국내 기업 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등급이 높은 만큼 낮은 등급보다 사업, 수익, 재무 등 다방면에서 등급 요건은 까다롭다. 
 
대내외적 악재, 최악의 커버리지 지표, 전례 없는 적자, 부정적인 내년 산업 전망 등 좋지 않은 요인들이 쌓여있음에도 한국기업평가는 신용등급을 내리지 않았다. SK루브리컨츠의 지분 매각과 SK IET의 기업공개(IPO)가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우선 SK루브리컨츠 소수 지분 매각으로 SK이노베이션에 2조 이상의 현금 유입이 기대된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의 지분 매각은 예비입찰에서 5곳 이상이 참여하며 흥행에 성공해 '3수' 끝에 자금 유입이 임박했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SK IET 상장으로도 조 단위의 자금 유입이 예상된다. 지난 9월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전체 주식의 10%에 상당하는 주식을 발행했는데 유입자금은 약 3000억원이었다. 역산하면 SK IET의 기업가치는 최소 3조원인 셈이다. 투자업계에서는 IPO 시 기업가치로 4조~5조원을 예상하고 있다. SK IET의 신주 발행 규모에 따라 조 단위의 현금 유입도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미래에셋대우, JP모건 등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해 구체적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 
 
요약하면 3조원 이상의 자금 유입 계획이 구체화된 셈이다. 이번 4분기 추가 손실을 고려한 2020년 SK이노베이션의 예상 영업손실 수준이 2조 5000억원(유안타 증권 보고서 기준 4분기 예상 적자 2195억원 포함)이다. 종합해보면 유입 자금이 영업손실을 웃돌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기업이 지출할 금액은 이자비용, 만기 상환 비용, 자본적 지출, 세금 등 4가지다"면서 "4가지 지출보다 유입된 금액이 클 경우, 단기적으로 디폴트 리스크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기평도 매 분기 SK이노베이션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계획을 밝혔다. 한기평은 "지분 매각과 기업공개를 통해 현금이 들어온다면 재무 안정성의 개선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면서 "이 같은 가능성이 등급 평가에 영향을 미쳤으며 진척 상황에 대해 매 분기 SK이노베이션의 상황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