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에이루트(096690)의 계열사 지오닉스와
비케이탑스(030790) 사이의 에이스우진 지분에 관한 계약이 해지됐다. 에이루트의 전환사채(CB)의 재매각이 실패한 탓이다. 중도금 납입 없이 1년 넘게 끌어오던 양도 계약이 깨졌지만, 비케이탑스는 오히려 손해배상 조항을 변경해 지오닉스의 책임을 면하게 해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사이 에이스우진의 흑자 효과로 에이루트는 상장폐지 위기를 모면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배임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지난 6일 에이루트는 자회사 지오닉스가 비케이탑스로부터 450억원에 에이스우진 지분을 양수하는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해당 계약은 지오닉스와 비케이탑스 사이에 2019년 9월5일 체결한 것이다. 또한 1년 이상 끌어온 계약이 해지되면서 양사는 손해배상 조항을 변경했다. 양 사는 계약 해지에 따른 배상금 조항을 없애고, 비케이탑스가 당초 계약금으로 수령한 45억원을 지오닉스에 반환하는 것으로 종결지었다.
즉, 비케이탑스는 1년 이상 끌어온 계약이 해지됐음에도 이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1년 이상 중도금도 받지 않은 상태로 계약이 불안정한 상태였음에도 추가적인 보상 요구는 없고 되레 손해배상 조항을 없앤 것이다.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는 "M&A 계약 시 중도금을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계약 변경 과정에서 불리해지는 쪽이 손해배상을 강화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해배상조항이 없더라도 손해를 배상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있는 조항을 없애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불안정한 계약이 1년간 유지된 이유는?
'거래'는 한쪽이 싸게 살 경우, 필연적으로 한쪽은 싸게 팔게 된다. 즉, 양 당사자 간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족과 같이 특수관계인 사이에서 거래하는 경우다. 이 경우, 경제적 합리성에 벗어난 거래를 하기도 한다. 세법은 이 같은 부당행위를 부인하는 규정을 둬 제재를 가한다.
양 사는 거래 당시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 김광재 전 우진기전 회장이 양 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근거는 임원진 구성이다. 비케이탑스는 당시 사내이사로 김광재 전 회장을 선임한 상태였다. 하지만 에이루트(당시 제이스테판)의 최대주주는 '포르투나제1호사모투자합자회사(이하 포르투나)'다. 이 당시부터 에이루트의 경영진에는 '우진기전' 임원 경력이 있는 자가 있었다. 두 임원이 있을 당시인 2019년 9월 양 사는 '블록딜'계약을 체결했다.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두 번째 근거는 지오닉스의 회사채 발행 규모다. 지오닉스 회사채는 원금 530억원과 3년 치 이자 193억원을 포함해 723억원의 현금흐름을 발생시킨다. 반면 지오닉스는 2019년 반기 말 기준 총자산 117억원, 매출액 54억원(연 환산 108억원), 영업이익 15억원(연 환산 30억원)이다. 지오닉스가 발행한 723억원은 총자산·매출액의 6~7배, 영업이익의 24배에 해당한다. 만약 지오닉스가 현금을 전부 유출할 경우, 총자산과 20년 치의 영업이익을 강제집행해야 회사채 대금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원리금 일시 상환 사채로서 쿠폰(기간에 따라 '지급'하는 이자)이 없다. 달리 말하면 3년 치 이자 193억원을 합친 723억원을 지오닉스가 한 번에 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판단해야 회사채를 인수할 수 있다. 이 회사채를 김광재 전 회장이 인수한다.
세 번째 근거는 에이루트가 발행한 7회 전환사채(CB)를 인수한 우진에스아이의 최대출자자가 김 전 회장이라는 것이다. 우진에스아이(이하 우진 SI)는 우진에프아이(이하 우진 FI)와 함께 에이루트의 전환사채 530억원을 인수한 곳이다.
마지막 근거는 회사채의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았고, 이 회사채는 우진SI가 보유한 CB와 상계되는 용도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담보 여력에 의문이 있는 회사채를 바탕으로 '우진 SI·FI↔김광재 전 회장↔에이루트·지오닉스↔우진 SI·FI'사이에서 삼각 거래를 했지만, 세 주체 사이에서 신뢰를 잃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배임 가능성은?
배임 여지가 있는 곳은 비케이탑스다. 이번 계약을 재구성해본다면 지오닉스는 45억원의 계약금을 1년간 무이자로 사용했으며, 배상금 조항이 해제됐기에 이득을 봤다. 통상적인 거래였다면 한쪽에는 손해가 예상된다.
또한 비케이탑스의 계약 변경 근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케이탑스는 계약을 변경하며 '코로나 사태와 하나금융투자에 의한 에이스우진의 우진기전 주식 전질권 행사 등'을 들었다. 두 조건은 이미 달성한 상태였다. 2020년 9월, 코로나 사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창궐한 상태였다. 또한 하나금융투자는 우진기전 주식의 전질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법원은 에이스우진의 주주 지오닉스가 에이스우진 주주로서의 권리 보전(전질권의 기초가 된 채권자로서의 권리)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대립했다면 두 조건이 달성된 시점에 계약을 변경했거나 소송과 같은 적극적인 행동이 예상된다. 계약 대상인 에이스우진의 주식은 450억원의 가치가 있다. 이는 3분기 말 연결 기준 비케이탑스의 총자산의 47.2%에 상당한다. 또한 손해배상금은 45억원으로 비케이탑스의 상반기 매출액 36억원을 웃돈다. 비케이탑스는 감자를 하지 않았다면 결손금이 1113억원으로 부분 자본잠식에 빠진 회사이며 올해 누적 당기순손실은 154억원에 이른다.
이 같이 절실한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문제로 양사가 한 달 이상 지루한 공방전을 벌였다면 비케이탑스는 권리 보호를 위해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법률전문가들은 비케이탑스의 이사진이 비케이탑스(회사)에 배임을 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M&A법률 전문가는 "가능성이 상당하다"면서 "자기 회사(비케이탑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서 계약이 연기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돈(중도금)을 요구하거나, 추가적인 담보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차례의 계약 변경 과정에서 비케이탑스는 중도금을 요구하지도, 추가적임 담보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와 관련 비케이탑스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지난 10월19일 지오닉스와 계약내용 일부 변경 합의 중 손해배상 변경은 당사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닌 코로나 사태 등 대외환경의 변화 등으로 상호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법적으로나 상거래 관행, 신의칙상 부당하다는 판단하에 지오닉스와의 합의에 따라 적법하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손해배상 관련 규정을 삭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비단 당사가 일방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계약금 몰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지오닉스 역시 손해배상청구권(계약금 2배 배상)을 포기하는 것으로 상호 공정한 계약 변경이고, 중도금 및 추가 담보를 요구할 권한도 없는 것으로 배임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