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박기범 기자]
두산인프라코어(042670) 인수·합병(M&A)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두산그룹이 현재 진행 중인 두산인프라코어 소송 관련 우발 채무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그간 M&A의 최대 화두였던 중국법인(Doosan Infracore China Co.,Ltd 이하 'DICC') 소송은 더 이상 쟁점이 아니다. 그 자리에는 중국발 수혜 기대감이 대신하고 있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을 주간하는 크레디트스위스(CS)는 이날 예정됐던 예비입찰을 28일로 늦췄다. 두산그룹이 입장을 바꾸면서 잠재매수자들이 기업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한 추가시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DICC와 관련해 IMM PE·하나금융투자 PE·미래에셋자산운용 PE 등 재무적투자자(FI)들과 주식매매대금 지급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아 있으며, 법원은 1심에서 두산의 손을, 2심에서는 FI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이후 진행되는 잔여대금 지급 청구 소송은 현재 1심 판결 중이다.
만약 패소할 경우, 인프라코어는 최대 8000억원 수준의 자금 소요가 예상된다. 이는 인프라코어의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영업력 대비 과중한 차입구조를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아 원매자들은 인프라코어 인수를 주저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보통의 M&A는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매도자가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매각가의 5~10% 범위에서 보장을 한다"면서 "이번 인프라코어 딜은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두산이 보장해 주겠다고 하니까 매력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송 이슈가 해결되자 인프라코어는 2가지 측면에서 원매자에게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첫 번째는 중국발 수혜다. 지난 3월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판 뉴딜인 신인프라건설(新基建, 신기건)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고속·도시철도 연장 △신에너지 △특고압 설비 확충 △5G △전기차 충전소 △스마트 공장 확대 등 전통적인 인프라부터 새로운 인프라까지 다방면에 걸쳐 투자가 진행될 예정이다. 투자 규모는 총 5900조원(34조 위안)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19년 중국 GDP의 34% 수준이다.
출처/산업연구원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시장의 점유율을 키우고 있다. 중국공정기계협회(CCMA)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해외기업(MNC)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의 점유율은 2015년 12.9%에서 올 상반기 23.0%로 꾸준히 늘고 있다. 또한 지난 상반기 별도 기준 1조 425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4% 줄었지만, Heavy(중대형건설기계) 사업 부문의 중국 매출은 527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7% 증가했다.
이자연 산업연구원(KIET) 연구원은 "코로나19는 소비-투자-수출로 이어지는 중국 경제의 성장 축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면서 "성장 위기 탈피를 위해 중국 정부가 꺼내든 정책이 바로 신(新)인프라건설"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두산인프라코어의 부실한 재무구조는 역설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별도 기준으로 2017년 이후 매년 1000억~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차입금이 약 3조 5000억원에 이르는 터라 매년 1200억원씩 순이자비용이 발생했다. 재무구조 개선에 자신 있는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인수 후 통합 과정에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IB업계 관계자는 "소송 리스크가 사라진 이후 인프라코어의 중국 매출이 부각되고 있다"면서 "중국 시장에 대해 본인 만의 인사이트가 있거나 네트워크가 있는 곳이라면 인프라코어 딜에 들어갈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8~10배에 이르는 거래 멀티플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 시장만 있다면 그 정도는 줄 수 없지만, 중국 시장은 이머징 마켓으로 분류되다 보니 성장 기대감이 반영된 가격으로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인수 의사를 확실히 밝힌 곳은 없다.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등 대형 사모펀드가 인수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또한 인수 의사를 부인한
현대중공업지주(267250)도 재차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서 약한 현대중공업이 인프라코어를 인수한다면 중국 진출에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대오일뱅크의 부진으로 현금 사정은 좋지 않지만 만약 현대중공업이 인수 의사를 밝힌다면 인수 금융 방식으로든 지분 투자 방식으로든 투자자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