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위기 '제주항공-이스타 M&A'…'코로나=불가항력' 쟁점화
코로나19사태, 불가항력 인정 여부 관심
"제주항공에 인수 이행 강제 어렵다"
공개 2020-07-09 09:3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제주항공(089590)과 이스타항공의 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며 인수·합병(M&A) 작업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제주항공에 인수를 촉구하기 위해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중재에 나섰고 이상직 의원은 지분 헌납을 발표했다. 하지만 파국의 원인인 코로나19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스타항공 인수전은 계약 파기와 그에 따른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코로나19와 같이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전염병 피해를 불가항력 조항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갑론을박이 한창인 가운데 국내 M&A 관련 변호사들은 이스타항공 인수전도 법정에서 코로나19가 ‘중대한 변화’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스타항공 직원 고용을 위한 마지막 카드인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계약 이행을 강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6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최종구 이스타항공 사장과 이석주 AK홀딩스(006840) 대표이사 사이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관련 통화를 공개했다. 녹음 파일에서 최 사장은 "알다시피 셧다운이란 게 항공사 고유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어쨌든 조금이라도 영업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석주 AK홀딩스 대표이사는 "셧다운을 하고 희망퇴직하고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하지 않냐"라며 "(협력업체에) 제주항공이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니 협조해 달라는 레터 보냈다"라고 답했다. 
 
해당 통화는 지난 3월20일 경 이뤄졌다. 당시 애경그룹과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가 상당했다고 보여진다. 또한 당시 제주항공의 대표이사였던 이 대표는 인수를 위해 이스타항공 거래처에 제주항공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3개월 뒤 애경그룹의 태도는 돌변했다. 사실상 인수계약의 해지로 노선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타항공 임직원과 정부는 애경그룹과 제주항공에 인수 계약 이행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상직 의원 일가가 매각대금 410억원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초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과 이상직 의원을 차례로 만나 M&A 성사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에는 이스타항공 노조가 녹취록까지 공개했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이 의원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나머지 행보에 대해선 아직 공식적인 대답이 없다. M&A를 자문하는 변호사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상황"이라면서 "사실상 법적인 절차만 남은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앞으로 양쪽은 책임소재를 가리는 소송전에 돌입하고, 이스타항공은 법정관리  혹은 청산의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M&A 변호사들은 법정 다툼으로 전환될 경우, '불가항력'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가항력 조항은 천재지변과 전쟁 등 양 당사자의 귀책으로 돌릴 수 없는 우연하고 통제 불가능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한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로 규정되며, M&A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에는 보통 MAC(Material Adverse Change)이라 불리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이는 계약부터 딜 클로징 사이에 '중대한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법에서 즐겨 사용되는 불가항력은 계약서상의 '중대한 변화'와 유사한 의미다. 
 
그는 "M&A 소송 때 늘 언급되는 '실사 때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와 같은 다툼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면서 "사소한 다툼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고 결국 불가항력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판례는 불가항력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는 편이라고 변호사들은 전했다. 다른 M&A 담당 변호사는 "대법원은 IMF, 2000년대 초반 카드사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을 불가항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면서 "불가항력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스타항공 직원의 고용 보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많다. 우선, 계약당사자인 이스타홀딩스가 계약의 강제 이행에 청구하는 소를 제기해야 하고, 법원이 이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코로나19로 항공사가 초토화된 것은 전국민이 다 알고 있다"면서 "이스타항공을 인수할 경우 모회사인 애경그룹 위기에 처할 수 있다보니 법원도 이행을 강제하는 판결을 내기 부담스러울 것"으로 관측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