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막전막후'
인수 관심 없던 빙그레, 인수로 방향 선회
빙그레 제안 거절한 해태, 원매자 줄자 빙그레에 매각 역제안
공개 2020-04-06 09:30:00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빙그레(005180)해태제과식품(101530)의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깜짝 인수했다. 사실상 빙그레 말고는 대안이 없었던 이번 인수전이었지만, 빙그레와 해태제과 수뇌부에선 치열한 내부 고민이 있었다. 
 
지난달 31일 빙그레는 해태제과식품이 보유한 해태아이스크림의 지분 100%를 14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해태제과는 지난해 10월 물적분할 이후 삼일PwC를 매각자문사로 선정해 지분 투자부터 매각까지 다각도로 검토했다. 
 
인수전 초반부터 빙그레는 주목받았다. 빙그레는 통상 30% 전후로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차입금의존도가 1.3%에 불과하고 약 27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인수할 경우 단숨에 롯데(롯데제과(280360)·롯데푸드(002270))와 업계 1위를 두고 경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렇기에 인수전 초반 4대 회계법인의 A파트너 회계사가 빙그레를 찾아가 해태아이스크림의 인수제안을 했다. A 회계사는 기획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제적으로 제안해, 자문업계 내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전 세계 소득 수준과 단백질(프로틴) 소비량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해태아이스크림의 가치 증대 방향을 설계했다. 
 
A회계사는 "해태제과가 턴어라운드 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장으로 진입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시장 진입을 위한 아이디어를 냈지만, 안타깝게도 빙그레는 인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종류의 메로나. 출처/뉴스통
 
빙그레는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사업부 인수전 초반부터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기존 아이스크림 사업부에 대한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빙그레는 메시가 뽑은 '최고의 재능' 25인에 뽑힌 손흥민과 국민MC 유재석을 앞세운 '슈퍼콘', 국내 최초로 원유를 사용한 '투게더', 브라질의 국민 아이스크림 '메로나' 등 메가히트 라인업이 즐비하다. 지난해 역시 매출액 3608억원을 내며 전체 매출의 42.09%를 아이스크림 사업부에서 낼 만큼 빙그레 내에서 주요 사업부서다.  
 
하지만 빙그레는 해태제과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마케팅 확대, 영업 전략 수정 등을 통해 사업 시너지를 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빙그레는 다른 4대 회계법인의 B회계사를 찾아간다. B회계사는 대형딜 주관사 지위(멘데이트) 획득, 숨겨진 가치 포착 등 다방 면에서 상당한 역량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B회계사는 "다른 곳이 인수하면 사업 시너지가 나기 어렵지만 빙그레가 인수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라면서 "해태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빙그레의 가치도 함께 오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해태제과는 빙그레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그 당시 남양유업과 같은 다크호스도 있었기에 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상황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아이스크림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직판장에서는 메로나를 400원, 월드콘을 650원에 판매했다. 출처/토마토TV
 
다만, 해태제과의 생각처럼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는 아이스크림 제조 시장만의 독특한 문화도 한몫했다. 빙그레, 롯데푸드, 해태제과 등 국내 아이스크림 제조사들의 저가 납품 경쟁이 15년 이상 지속됐다. '미끼' 상품이라는 명목 아래 낮은 단가가 정당화되기도 했다. 
 
또한 1개를 팔면 10원이 남는 소위 '삥시장'까지 형성돼있을 정도로 유통망이 복잡해 아이스크림 제조사가 협상력을 갖기가 쉽지 않다.  
 
아이스크림 유통 관계자는 "삥시장은 전문업자가 아니면 왜 생겼는지, 왜 만들어졌는지 자체를 모를 것"이라면서 "교차판매 금지, 아이스크림 제조사의 냉장고 지원, 다양한 주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여름에 100개, 200개씩 대량 주문하는 경우도 많다"라면서 "예를 들어, 갑작스레 초등학교 같은 곳에서 행사가 열려 마트에 대량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 이를 맞춰주기 위해 아이스크림 도매상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도매상들은 삥시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초등학교에 배달한다"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아이스크림 시장 환경은 사모펀드(PEF)와 같은 재무적투자자(FI)가 신규로 시장을 진입할 때 장벽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결국, 빙그레의 제안을 거절했던 해태제과는 빙그레에 역제안을 하기 이르렀다. 
 
제안 이후 계약서 서명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계약서 안에는 인수와 매각 의지 문구들이 눈에 띈다. 일례로, 해태제과와 빙그레는 현재 계약서에 서명은 했지만, 공장 실사는 진행 중이다.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공장 중 대구에 소재한 곳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계약금을 변경할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업계 상황을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안다"라면서 "실사를 하지 않았지만 딜이 깨질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빙그레는 아이스크림 회사 중 해외 진출을 많이 하는 회사다"라면서 "해태제과의 좋은 제품과 시너지가 결합되면 좋은 결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