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의 운영방식)③독과점 막을 방안이 없다…플랫폼법 '백지화'
사후 추정 방식으로 지배적 플랫폼 지정 시 즉각적 피해 규제 어려워
매출 기준과 점유율 요건 높아 네이버·카카오 외 기업 적용 불가능
유럽연합·일본, 2020년부터 게이트키퍼·특정 디지털 플랫폼 지정
공개 2024-09-20 06:00:00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50을 넘어서는 기업을 공정거래법에서는 독과점업체(시장지배적사업자)라고 정의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지배적사업자가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부당하게 결정·유지 또는 변경할 때에 시정 조치를 내릴 수 있다. 고금리 기조와 소비침체로 인해 자영업자의 대출연체는 15조원을 돌파했다. 전례 없이 늘어난 폐업률은 자영업자의 시름을 방증한다. 이 가운데 시장지배사업자인 배달의민족이 수수료를 인상하면서 자영업자의 부담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에서는 어떻게 배민이 시장지배사업자의 위치에 올라섰고, 이번 수수료 인상 배경에는 무엇이 있으며, 향후 정부와 업계에 어떤 대응방안이 필요할지 점검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예진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을 백지화하면서 배달의민족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남용행위를 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없게 됐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단순 개정을 통해 이를 규제키로 했으나, 일각에서는 기존에 추진하던 방안 보다 실효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지배적 플랫폼 지정을 사전이 아닌 사후 추정 방식으로 변경하고 매출 기준과 점유율 요건을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하면서 배민과 쿠팡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이 규제를 피해 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민 라이더스 오토바이 (사진=연합뉴스)
 
시장지배적 온라인플랫폼 남용행위 막을 법안 '부재'
 
1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플랫폼 공정경쟁촉진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당초 밝힌 사전 지정 방식이 아닌 '사후 추정 방식'을 통해 지배적 플랫폼을 특정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플랫폼 공룡'을 막을 플랫폼 규제 법제화가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보다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부터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거래 관계의 투명성과 공정성를을 제고해 우위적 관계의 갑질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부처 간 갈등과 국회 논의 과정에서 폐기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으로 재추진 됐다가 산업계 반발 속에서 무기한 연기됐다.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은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플랫폼들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하고,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최혜대우 요구 4대 반칙행위를 신속하게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클 경우 시정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임시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위반 시 과징금 상향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공정위가 최근 사전지정제도 대안으로 내놓은 '사후 추정'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매출 기준과 점유율 요건이 설정되면서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들은 규제를 피해 갈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상 독과점 체제로 인한 폐해를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셈이다.
 
사후 추정 방식은 실태조사를 통해 매출액과 점유율 등을 파악한 뒤, 법 위반 행위가 발생하면 지배적 플랫폼에 해당하는지 판단해 처벌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외국에 기반을 둔 기업의 경우 지배적 플랫폼에 해당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료 제시 등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소송 과정이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반칙행위로 인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을 즉각적으로 구제할 방안이 없다.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사후 추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네이버나 카카오 정도로, 이를 제외한 다른 기업은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재 정부에서는 플랫폼법을 단독으로 제정하지 않고 대뮤모유통업법과 공정위법의 하위 규정으로 만든다는 계획인데 이 경우 플랫폼법의 효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5일 오전 소통관에서 열린 온라인플랫폼 발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일본, 2020년부터 '지배적 사업자' 규정 
 
이미 2020년에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은 온라인 플랫폼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한 관련 입법을 완료한 상태다. 유럽과 일본은 해당 기업의 시장 영향력과 매출, 규모 등을 기준으로 게이트키퍼, 특정 디지털 플랫폼이란 이름으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EU는 재정적 부담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보복 우려, 이용약관 상의 불리한 관할권 규정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별적인 분쟁해결에 나서기 어려운 이용자들이 보다 원활하게 자신의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단체소송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게이트 키퍼가 의무사항 등을 위반할 경우 직전연도 전체 매출액의 1%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게이트기퍼의 의무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일평균 매출액의 5% 한도 내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특정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는 매해 △특정 디지털 플랫폼의 사업개요 △입점업체가 제기한 특정 디지털 플랫폼에 관한 불만과 그 사항에 관한 분쟁 해결 상황 △입점업체에 대한 제공 조건 의무공개 항목의 공개 상황 △자율적인 절차 및 체제 정비에 관련된 조치에 관한 사항 등을 평가한 자기평가 기재 보고서를 경제산업대신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경제산업대신은 위의 평가항목 중 '특정 디지털 플랫폼의 사업개요'를 제외한 3개 항목에 관해 총무대신과 협의를 한 후, 특정 디지털 플랫폼 운영 상황을 평가해 그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
 
최은진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보는 보고서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 산업분야에 과도한 규제를 가해 산업의 발전이 위축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라면서도 "거대한 디지털 경제 생태계 내에서 온라인 플랫폼 중개서비스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다른 플랫폼에 의존한 경제주체들에 대한 피해가 방지될 수 있는 법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예진 기자 lucky@etomato.com
 

박예진 쉽게 읽히는 기사를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