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만난 배터리)①비효율적 인프라·전기차 포비아가 불러온 '캐즘'
소비자 56.2%, 전기차 충전 때문에 구매 망설여
전기차 충전소, 전기차 2대당 하나 꼴…다만 "정작 필요한 곳에 없어"
중국산 배터리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일한' 평가
화재 위험 최소화하고 성능 높이는 기술 발전 필요
공개 2024-08-22 06:00:00
전방산업인 전기차가 캐즘(수요 둔화)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자 배터리업계도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 잦은 전기차 화재로 인해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까지 커지면서 캐즘이 더욱 심화되는 모양새다. 이에 <IB토마토>는 배터리업계의 업황 악화 원인과 대응전략을 면밀히 분석해 향후 배터리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되면서 초래된 이차전지 등 배터리 캐즘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전기차 충전소 등 인프라가 부족한 점, 중국산 배터리 화재 사고로 인해 배터리 수요가 둔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소는 이미 전국 곳곳에 충분히 설치돼 있고, 다만 필요한 지역에 충전소가 충분하지 못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산 뿐만 아니라 국내 업체도 현재 배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한계를 혁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자동차들이 전기차 화재로 인해 모두 타버렸다.(사진=연합뉴스)
 
충전 시설 OECD 중 가장 많지만…필요한 곳에는 '부족'
 
20일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전기차 충전소는 20만개소를 넘어섰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전기차 2대당 충전기는 한대 꼴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기차 이용자들은 충전소가 부족하며 구매 당시에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한국환경공단이 실시한 ‘전기차 및 충전인프라 보급 확대를 위한 사용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기차 이용자 중 구매 당시 차량 충전을 걱정했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56.2%로 절반을 넘었다. 전기차를 이용하고 있는 지금도 충전을 걱정한다는 응답은 27%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가장 불편한 것은 충전 문제라는 응답이 29%로 가장 많았다.
 
충전을 걱정하는 이유는 충전시설 부족 38.6%, 충전 질서 부족 21.2%, 기기 고장 14.3%, 충전 속도 9.2%, 충전 비용 8.7%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공용 충전시설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무려 44.9%에 달했다. 실제로 충전소 부족으로 인해 불편을 경험했다는 이용자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8%로 조사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충전시설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전기차 이용자가 많은 지역에 충전소가 충분하지 못해 생기는 불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민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사무총장은 “전기차 산업을 초기에 대두됐던 선결 과제가 충전 인프라 확충이었다. 이에 따라 전기차 충전소는 전국 여러 곳에 만들어놨지만 정작 전기차 이용자들이 많은 곳에는 충전소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재 전기차 이용자 분포에 따라 이용자가 많은 지역에 충전소를 확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때 배터리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배터리의 성능과 안전성, 수명 등에 대한 정보가 시장에서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고 있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서야 현대차와 기아가 정부 권고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며 소비자 신뢰 제고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이민하 사무총장은 “전기차 이용자로서 내 차에 어떤 배터리가 탑재됐는지 알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기업의 노하우가 축적된 기술 정보를 상세하게 밝힐 순 없겠지만, 배터리 안전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안전사고 공포…기술 혁신·인증제 도입돼야
 
여기에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는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인천 청라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 불이 나 주변에 있는 차량까지 전부 태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특히 중국산 배터리는 대규모 생산과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두고 있어 품질 관리와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산이라고 무조건 질이 떨어지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국산 배터리라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산이 많이 보급된 만큼 사고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 배터리도 화재가 발생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산 배터리는 많은 차량에 탑재된 만큼 전체 배터리 시장에서 안전사고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국내 배터리 또한 이에 못지않은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아직도 화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11월 삼성SDI 공장에서 배터리 열폭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전지 생산 라인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공장의 생산과 운영에 일정 부분 차질을 빚었다. 2021년에는 4월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 공장에서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다. 배터리 셀 결함으로 인한 화재로 추정되며 이 사고로 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대규모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당시 공장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21년에는 SK온 배터리 공장에서 불이 났다. 불은 전지 생산 라인에서부터 시작됐으며 일부 배터리 셀에서 열폭주가 일어나면서 화재가 확대됐다. 
 
지난 6월에는 경기도 화성의 아리셀 공장에서 배터리 화재가 발생하며 총 31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처럼 중국뿐만 아니라 국내 배터리 제조기업에서도 잦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위원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혁신을 앞당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항구 위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중국산은 저질이고 한국이나 일본산은 고품질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그만큼 기술개발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면서 “중국산이라고 억제할 경우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는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혁신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넘어서고 있으며, 대규모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과 공급망의 효율성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편이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배터리와 겨루기 위해서는 배터리 화재 위험을 최소화하고 성능을 높이는 기술적 발전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 개발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고도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은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에너지 밀도가 향상될 가능성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을 보장하기 위해 배터리 인증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배터리 인증제는 배터리의 생산 과정과 제품의 품질을 엄격하게 관리해 소비자들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이 같은 제도를 통해 배터리의 품질을 높이고, 불량 제품의 시장 유통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필수 교수는 “배터리 인증제는 배터리의 안전성과 관련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터리 관리와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권영지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