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혜선 기자] 기술이전(License Out, L/O)을 사업모델로 삼는
보로노이(310210)가 지난해 매출 0원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여기에 앞서 기술이전했던 파이프라인의 권리 반환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새로운 매출 동력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로노이는 넉넉한 유동성 자금을 활용해 VRN11, VRN07 등을 통한 매출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진=보로노이)
기술이전 계약 없어 지난해 매출 0원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보로노이의 지난해 매출은 0원으로 나타났다. 2022년 상장한 이래 처음으로 기술이전 계약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이 같은 외형 축소를 겪었다. 보로노이는 자체 개발한 파이프라인으로 임상 1~2상까지의 초기 임상개발에 집중하는 신약개발 기업이다. 전 세계 기술이전을 주요 사업 모델로 삼고 있어, 시판 시약 등 완제품이 아닌 기술이전을 통해 매출을 낸다.
보로노이가 상장한 이래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상장 직전연도인 2021년(148억원)과 상장해인 2022년(98억원)에는 각 해에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선급금 등을 통한 매출이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신규 기술이전 계약도 없었으며, 기존 계약의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수령 내역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로노이가 사용한 비용 전부가 고스란히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보로노이의 영업비용(313억원) 만큼 영업손실이 발생했고, 276억원의 영업비용을 사용한 직전연도(영업손실 179억원)보다 손실 폭이 악화됐다.
비용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다. 보로노이는 앞서 2021년 연구개발비로 194억원을 사용했다. 이후 2022년 228억원, 지난해 234억원 순으로 늘렸다. 통상 바이오 기업이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을 통해 비용을 늘리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되지만, 지난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손실 폭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보로노이 관계자는 연구개발비 확대 배경에 대한 <IB토마토>의 질문에 "지난해 하반기 VRN11 임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연구개발비용이 다소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두 차례 기술 반환…성장 동력은 VRN11·VRN07
연구개발 투자를 늘린 만큼 기술이전 성과를 내야하는 시점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로노이가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이 최근 기술 반환되면서 매출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보로노이가 2022년 메티스테라퓨틱스(Metis Therapeutics Inc.)로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 VNR14가 지난 4월26일 기술반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총 계약 금액은 6680억원(최대 4억8220만달러)이었으며, 당시 선급금과 유지보수 및 리서치 마일스톤으로 24억원(170만달러)을 수령 받았다.
VRN14는 고형암(폐암, 흑생종, 대장암 등) 치료를 위한 경구용 인산화효소 저해 물질이다. 당시 비임상 단계에서 메티스테라퓨틱스로 기술이전하며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과 품목허가 등에 따른 순매출액의 일정 비율의 별도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다행히 기존 선급금 등에 대한 반환 의무는 없지만, 매출 동력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쉽다는 평가다. 선급금 등 24억원을 제외한 계약 금액 전부가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 6556억원을 전부 놓친 셈이다.
보로노이는 기술 반환 공시를 통해 "메티스사의 경영 환경과 개발 전략 변경으로 권리가 반환됐다"라며 "그동안의 개발 데이터 검토 후 향후 개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로노이의 기술 반환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분기 보고서를 통해 VRN08의 기술 반환 사실을 공시했다. VRN08은 유방암 및 기타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신약으로, 지난 2021년 미국 피라미드바이오사이언스(Phyramid Biosciences, Inc.)에 기술이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기술 계약 해지 통보를 수령했다.
보로노이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파트너사의 반환 이유를 추정하기 쉽지 않으나, 시장에서는 전략 수정 때문으로 보고 있다"라며 "최근 미국 비상장 바이오회사들이 3~5년내 상업화(기술이전 또는 FDA 승인) 가능한 파이프라인 위주로 정리하는 추세이며, 보로노이가 기술이전했다가 반환된 VRN08, VRN14 모두 비임상 단계에서 기술이전한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보로노이는 넉넉한 유동성을 활용해 VRN11의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VRN07의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매출을 끌어낼 계획이다.
VRN11은 EGFR C797S 돌연변이를 타겟하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보로노이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에 상각후원가로 측정하는 유동 금융자산과 유동당기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을 포함한 유동성 자금은 603억원 수준으로, 연구개발비를 감당할 자금은 충분한 상태다.
또한, 보로노이는 2022년에 기술성장기업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만큼 매출과 관련된 기술특례상장 유예기간이 존재한다. 통상 최근 사업연도 연결 기준으로 30억원 미만의 매출액이 발생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그러나 기술성장기업부는 5년간 유예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로노이는 매출 반등을 이룰 시간이 존재한다.
이 기간 동안 보로노이가 유망하게 생각하는 파이프라인 VRN07로 매출 확대에 속도를 낼 수 있다. VRN07은 EGFR Exon20 INS 돌연변이를 타겟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지난 2020년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오릭에 기술이전했으며, 내년에 임상 1상 종료가 예정돼 있어 단계별 마일스톤 수령이 예상된다.
보로노이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오릭은 내년 임상 1상 종료와 2상 진행을 발표한 바 있어, 보로노이는 이후 단계별 마일스톤 수령이 가능하다"라며 "또한, 오릭에는 중화권(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판권을 제외한 글로벌 판권을 매각했기에 향후 VRN07의 중화권 판권 기술이전을 통해 매출 가능성도 높다"라고 말했다.
김혜선 기자 hsun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