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홍인택 기자] 2차전지 소재기업
천보(278280)가 올해 1분기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하며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실적 악화와 함께 2차전지 관련주에 대한 과열 우려가 제기되며 천보 주가는 4월 장중 고점 대비 40% 가까이 추락한데다 지난해 발행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는 전환가액과의 괴리율이 커지며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모양새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천보는 올해 1분기 매출이 47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50.15%, 영업이익은 16억원으로 90.92% 감소했다. 매출은 시장 기대치 대비 37.8%, 영업이익은 84.7% 낮게 나타나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천보는 2차전지 시장 성장성을 타고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 성장 폭도 함께 증가했고, 2027년까지 주요 제품과 신제품 공장 신·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2500억원의 CB와 500억원의 BW를 발행한 바 있다.
시장 성장성을 내다보고 시설투자에 나섰으나 실적이 악화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증권시장에서 2차전지주에 대한 경계심리가 확대되면서 주가도 하락해 천보뿐만 아니라 CB 및 BW 투자자들도 진퇴양난에 빠졌다.
천보 측은 신·증설 물량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에 기여하면 실적이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주가 관리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적 악화 원인은 '중국'과 '원재료 가격'
천보의 1분기 실적이 기대치보다 크게 하회한 이유는 중국 시장과 연관이 깊다. 업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천보의 지역별 매출 비중은 중국이 약 42%로 높다. 특히, 2차전지 소재 부문에서 중국 고객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천보의 주력 제품인 F전해질(LiFSI)과 P전해질(LiPO2F2)은 LFP 배터리에 적용할 경우 NCM(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배터리보다 높은 농도로 투입된다. 중국은 LFP 배터리를 기반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편이 천보에겐 유리한 셈이다.
그러나 올해 중국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지하면서 1월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고, 중국 수요처들의 재고조정이 발생하면서 발주량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전방 수요둔화 우려가 발생하자 P전해질의 원료인 육불화인산리튬(LiPF6) 가격이 급락하면서 P전해질 판매가격도 하향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LiPF6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조정뿐만 아니라 기존 재고의 원가 수준도 높아진 상황으로 이중고를 겪다 보니 매출이 감소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진수 신영증권 연구원 역시 "원재료 가격 급락으로 전체 전해질 판가가 20%가량 감소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역시 PC 및 TV 수요 부진으로 패널 생산업체들의 가동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관련 사업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전사 영업이익률은 3.5%로 전분기 대비 9.6%포인트 하락했다.
천보 주가 추이 (사진=한국거래소)
전환가액 31만8150원인데…실적 악화에 주가 더 떨어지면 '곤란'
천보는 지난해 2월 시설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사모 형태로 총 3000억원 규모의 CB와 BW를 발행했다. CB와 BW 모두 전환가액은 31만8150원으로 설정됐고, 리픽싱 조항은 없었다. 문제는 채권을 발행한 뒤 얼마 후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천보 주가는 중국 수요회복과 리오프닝 효과에 지난해 3분기 바닥을 찍고 지난 10일에는 장중 29만9500원까지 회복했으나, 27일 종가기준 19만4200원으로 떨어졌다.
천보가 발행한 CB는 아우름, 안다, 타임폴리오, 르네상스 등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대상자로 선정됐는데,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펀드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했다. BW는 NH투자증권과 브레인자산운용으로 이루어진 투자조합이 전액 부담했는데 천보의 실적 악화와 주가 하락을 반길리 없다는 지적이다.
천보는 지난해 4분기에 CB와 BW 관련 평가손실이 일회성 비용으로 약 130억원 발생했는데, 주가 낙폭이 크다 보니 풋옵션 가치가 상승한 탓으로 해석된다. CB는 특성상 주가가 상승하면 회계상 손실로 반영되지만, 주가 낙폭으로 인한 풋옵션 가치가 평가이익을 상회한 것으로 파악된다.
풋옵션은 장래 특정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데, 천보 CB와 BW의 1차 풋옵션 청구기간은 2024년 12월24일부터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조기상환해서 주식으로 전환한 뒤 수익을 내야 하는데 4% 금리를 받겠다고 계속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니 속이 탈 것"이라고 말했다. 천보의 CB와 BW는 표면이자가 0%이지만 유효이자 4.04%가 적용되고 있다.
천보의 2차전지 소재 증설 계획 (사진=천보)
실적은 2024년부터 개선 전망
증권가에서는 천보가 올해 말, 혹은 내년 초부터 유의미한 실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증설 과정에 있는 P전해질 1000톤과 VC(바닐렌카보네이트) 5000톤, FEC(플로로에틸렌카보네이트) 5000톤 가운데 일부는 현재 시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F전해질 9000톤 역시 4분기 혹은 내년 1분기 내에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올해 말 총 생산능력은 2만4900톤으로 전년에 비해 5배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P전해질의 경우 LiPF6 가격에 따라 수익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데, LIPF6를 사용하지 않는 공정을 새로 개발함에 따라 제조원가 30%의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분기 어닝쇼크의 주요 원인이었던 중국 매출 비중에 변화를 주고 지역별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할 예정이다. 주요 증권사들은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의식한 셀 제조업체들이 중국산 전해질 대신 천보 제품을 찾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한편, 35만원을 제시한 DB금융투자 정도를 제외하면 주요 증권사들이 제시한 천보의 목표가격은 CB와 BW 전환가액보다 모두 낮았다.
삼성증권(016360)은 25만원,
현대차증권(001500)은 24만원까지 목표가를 낮췄다. 중장기적 관점의 긍정적인 전망으로 매수 의견은 유지하고 있다.
천보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일부 공장은 완공돼 시생산을 진행하고 있고 일부는 하반기 완공 예정"이라면서 "빠르면 4분기, 혹은 내년 1분기부터 매출에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주가 부양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은 없다"라고 짧게 덧붙였다.
홍인택 기자 intae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