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안솔지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 점포폐쇄 요건 강화에 나서면서 시중은행들의 생산성 제고에 제동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금융 확대로 오프라인 점포 통·폐합에 나서면서 생산성 증대를 꾀했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될 상황에 직면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제5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회의를 통해 '은행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을 확정했다. 이번 내실화 방안에 따르면 점포폐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사전영향평가절차'와 '이용고객의 의견수렴' 절차가 강화될 방침이다. 사전영향평가와 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해 대체수단을 조정하고 영향평가를 재실시하거나 점포폐쇄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은행이 점포폐쇄시 자리를 메꿨던 무인자동화기기(ATM)의 경우 앞으로 대체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현금 입·출금 등 아주 기본적인 업무는 가능하나 예·적금 신규가입 등 은행이 창구업무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어서다. 고기능무인자동화기기(STM)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소비자 불편이 낮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며 안내직원을 두거나 사용법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 사전영향평가에 참여하는 평가자 중 외부전문가는 기존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하고, 외부전문가 2인 중 1인은 지역인사로 선임하게끔 요건을 강화했다. 사전영향평가항목에서 은행의 수익성 또는 성장가능성 관련 항목도 제외됐다. 소비자 불편 최소화를 가장 우선으로 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실효성이 크지 않은 '뒷북 행정'이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시중은행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점포 통·폐합을 상당 부분 진행해 온 터라 당분간은 대규모 점포폐쇄 계획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의 점포수는 2018년 3563개에서 2022년 2886개로 19% 감소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5년간 각 은행별 감소세를 보면 △신한은행 -17.7%(877→722개) △KB국민은행 -18.8%(1055→857개) △하나은행 21.22%(754→594개) △우리은행 -18.7%(877→713개)로 나타났다.
이처럼 5년간 지속적으로 약 700곳에 가까운 점포폐쇄가 이뤄지면서 4대 시중은행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신한은행은 점포 통·폐합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더 이상 대규모 점포폐쇄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나은행은 한 곳, 우리은행의 경우 올해 점포폐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국민은행도 올해 4월까지 66곳의 점포를 인근 점포와 통·폐합하기로 확정됐으며 추가적인 점포폐쇄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
점포폐쇄 요건이 강화되고 은행들이 점포폐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점포 생산성 제고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 말 기준 신한은행의 점포 1곳 당 예수금은 5620억원으로 전년(4540억원) 대비 23.8% 증가했고, 대출금은 전년(3486억원) 대비 21.3% 늘어난 4228억원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4대 시중은행 중 점포를 가장 많이 줄인 만큼 점포 생산성 증가세가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예수금과 대출금이 각각 19.0%, 16.4%으로 나타났고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역시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이처럼 시중은행들은 오프라인 점포 통·폐합을 통해 점포 생산성 지표를 크게 개선해왔다. 점포는 줄었지만 점포 당 예수금·대출금이 늘면서 생산성이 향상된 것이다. 점포 통·폐합을 통해 예수금과 대출금이 증가하며 생산성을 높여왔지만 당분간 점포 통·폐합이 요원해지면서 생산성 개선도 지지부진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 통화에 "시중은행들이 이미 주요 점포 통·폐합을 완료하고 추가 폐쇄 계획이 없는 상황인 만큼 정책 도입의 효용이 클 지는 의문"이라며 "앞으로 점포폐쇄를 계획할 때 유념하라는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IB토마토>와 통화에서 "시중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점포폐쇄에 대해 유의하게 되면 고객들이 은행 이용에 불편을 겪을 필요가 없기에 오히려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 도입만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점포폐쇄를 통해 생산성·수익성 지표 개선은 단기적인 효과"라며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을 도입한 것은 소비자의 불편이 가중돼 점포 이용이 감소했을 때 중장기적인 미래 수익 감소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솔지 기자 digeu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