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콜에서 고급화 전략만 강조…고가 중심 선출고 등 믹스개선 효과 언급그러나 전기차 시장 상황 정반대…테슬라 가격 할인 등 저가 시장 성장 예고2천만원대 전기차 출시 언급 등…현대차도 보급형 전기차 집중 모드
[IB토마토 이하영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기차 시장에서 저가 경쟁에 적극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는 그동안 고급화 전략으로 수익성을 높여왔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향후 전기차 시장에서 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해외 시장에서 저가 모델 출시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기아 EV6.(사진=기아)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의 지난해 매출액(잠정)은 각각 142조5275억원, 86조5590억원이다. 이는 2021년 말 대비 각각 21.2%와 23.9% 증가한 수치다. 동기간 영업이익은 각각 9조8198억원, 7조2331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말 대비 현대차는 47%, 기아는 42.8%의 영업이익 증가율을 보였다. 양사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실적 발표와 함께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인센티브(판매 장려금) 절감, 우호적인 환율 영향으로 매출이 상승하고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수익성이 뛰어난 고급차 위주 판매전략을 썼던 점도 유효하다는 평가다. 특히 현대차는 실제 연간 영업이익 증감사유로 믹스개선(3조730억원) 등을 언급했다.
믹스개선이란 고부가가치 차량 중심으로 판매 비중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가격 효과 또한 차량 가격 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믹스개선과 유사한 효과를 낸 것으로 판단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발생했고, 현대차그룹은 고가 모델을 중심으로 선출고 하는 방식의 믹스개선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양사 영업이익이 급증했다는 평가다. 현대차와 기아는 컨퍼런스콜에서 이러한 수익성 중심의 고부가가치 판매전략을 올해도 이어갈 방침임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저가 전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해외법인에서는 2000만원대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언급했으며, 가성비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대명사 CATL과 협력 확대도 저가 모델 생산 준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근 경쟁사들이 전기차 가격 할인 정책을 펴는 것도 양사만 고가 정책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저가 전략은 해외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타룬 가르그 현대차 인도법인 영업·마케팅·서비스 담당 이사는 지난해 6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는 인도에 프리미엄 전기차를 도입하는 데 주력하는 동시에 인도를 위한 소형 전기차 모델 개발에도 착수했다”라며 “가격을 낮게 책정하기 위해 부품 공급과 생산을 최대한 현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글로벌 자동차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현대차 유럽법인 마케팅 책임자인 크리스토프 호프만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인터뷰에서 호프만은 현대차가 “폭스바겐, 스코다, 쿠프라 등이 개발 중인 보급형 전기차와 경쟁하기 위한 신차를 선보일 계획으로 판매가격 목표는 2만 유로(약 268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호프만은 인터뷰 다음달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동사 유럽 콩그레스에서는 ‘아이오닉2’로 불릴 보급형 전기차의 디자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신차의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9월에는 양사가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3000만원대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2023년 출시 예정이란 소문이 자동차업계를 중심으로 돌았다. 코드명은 현대차 ‘OE’, 기아 ‘OV’로 알려졌다. 그달 방한한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우호인사 간담회에서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경영실적이 다소 정체된 상황이지만 중국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라는 믿음은 변함 없다”라며 “내년부터 중국 전용 전기차 모델을 투입해 본격적으로 중국 내 입지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현대차그룹이 CATL에서 공급 받는 삼원계(NCM,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올해부터 2배 늘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CATL의 대표 제품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도입도 곧 가능하다는 평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CATL 쩡위췬 CEO와 오래전부터 협업 확대를 논의해 왔으며 LFP 배터리가 국내 배터리3사의 삼원계 배터리보다 30% 정도 저렴해 가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22년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믹스개선 효과를 강조했다.(사진=현대차)
테슬라가 촉발한 가격할인 경쟁이 전기차 시장을 휩쓸고 있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테슬라는 지난해 말 중국 판매 1위를 BYD(비야디)에 내주고 수요부진에 공장가동까지 줄며 성장성 논란이 일자 최대 20% 가격할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미국 전기차 판매 2위 포드까지 테슬라를 의식해 머스탱 마하-E 가격을 최대 5900달러(약 724만원) 내리며 할인 경쟁에 합류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현지 생산 문제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테슬라는 가격 인하로 모델3(약 4만3990~5만3990달러)와 모델Y(약 5만2990~5만6990달러)가 포함됐다. IRA는 5만5000달러 이하 차량에 7500달러 보조금을 지급해 이를 감안하면 경쟁 모델이 더 저렴해진다. 그만큼 판매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가격할인 정책으로 지난 1월 생산량의 2배를 주문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이 고부가가치 전략 일방향으로 대응이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테슬라의 가격 인하 이전에도 완성차업계는 고객 이탈을 염려해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준비 중이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은 지난해 12% 수준으로 고급차를 탈 수 있는 고객 중 상당수가 이미 전기차를 구매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고급차 중심 전략이 통했지만 이제 보급형을 중심으로 한 전기차 판매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24년 이쿼녹스 EV(3만 달러)의 출시를 계획했으며, 2025년에는 폭스바겐의 2만 유로(약 2678만원) 상당 ID.라이프와 테슬라의 2만5000달러(약 3347만원) 상당 모델2가 선보일 예정이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대차는 원래 투트랙, 내연기관차도 투트랙이고 전기차도 그 흐름으로 간다”라며 “고부가가치 쪽으로 지향한다는 것은 일반 저가 모델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효율적인 운영으로 영업이익률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전략은) 언론플레이다. 내부적으로는 투트랙”이라며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들어 고급화 전략을 사용하는 반면 예를 들어 인도에서 우리나라에 없는 (저가형 모델) 아토스(현지명 상트로)를 팔며 규모를 키우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현대차는 전통적으로 (고급형과 저가형의)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세그먼트별로 고객층과 니즈를 위해 구성한 것”이라며 “현대차와 기아 모두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에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비롯해 수익성 및 고부가가치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답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