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이하영 기자] 잘나가던 쌍용자동차가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에 멈춰섰다. 이 때문에 쌍용차는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기 물량을 빠르게 소화하지 못하면 내년에도 흑자전환이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쌍용차(003620)는 지난달 28일과 이달 8~13일까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을 멈춰 세웠다. 영업일수 기준 총 5일간이다. 업계에서는 공장을 멈추는 동안 최소 3000대 이상의 생산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쌍용차 토레스.(사진=쌍용차)
쌍용차 생산차질이 더 눈에 띄는 이유는 국내외 자동차업계의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 완화 흐름 때문이다.
현대차(005380)그룹이나 르노코리아, 한국GM 등은 처음부터 대량 발주를 할뿐더러 부족한 경우 해외법인간에도 부품을 나눠 쓸 수 있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쌍용차는 생산 모델 자체가 적어 초기 발주 물량이 소량인데다 차량용 반도체를 나눠 쓸 그룹사도 없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추가 주문시 대량 발주 고객보다 돈이 덜 되는 소량 발주 고객이라 후순위가 된 측면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올해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토레스의 예상을 뛰어넘은 흥행으로 재고도 빨리 소진됐다.
실제 지난 7월 출시한 토레스는 11월까지 누적 판매 1만9510대를 기록하며 내수 실적을 견인했다. 토레스 출시 이후 쌍용차 내수판매는 △7월 6100대 △8월 6923대 △9월 7675대 △10월 7850대로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다만 11월 내수 판매량이 6421대로 줄자 쌍용차 관계자는 “부품 수급 제약으로 인해 전월 대비 감소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향후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최근 쌍용차 부품사 관계자가 차량용 반도체를 납품받기 위해 독일에 직접 찾아갔지만, 아직 답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결과가 좋다면 쌍용차는 넉넉한 수량의 차량용 반도체를 인도받아 토레스 생산에 나설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언제 또 공장을 멈춰 세워야 할지 알 수 없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제작을 위한 부품 발주는 6개월 선행해 진행된다. 토레스가 지난 7월에 출시된 것을 감안하면 법정관리 기간이었던 올초 부품 수량을 예상해 발주해야 했다는 답이 나온다. 쌍용차는 불과 지난달에서야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법정관리 중이던 올초에는 과감한 재정 지출이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차질에 내년으로 전망됐던 쌍용차 흑자전환 시점도 늦춰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쌍용차는 2015년 7월 선보인 티볼리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영업이익 280억원, 당기순이익 581억원으로 9년 만에 흑자전환 한 바 있다.
쌍용차는 올해 9월 기준 매출액 2조4037억원에 영업손실 1102억원, 당기순손실 52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1조7779억원)은 35.2% 증가하고, 영업손실(2379억원)과 당기순손실(2398억원)도 적자 폭을 줄였다. 영업손실 폭을 절반 이상으로 줄였다는 점에서 판매량 증가세를 이어간다면 티볼리때처럼 흑자전환이 기대됐다.
토레스는 현재 백오더(대기 물량)만 7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팔린 물량을 더하면 토레스 물량만 9만대에 달하는 셈이다. 쌍용차 판매대수가 올해 11월 기준 10만4866대인 것을 감안하면 86%에 해당하는 수치로 상당하다. 다만 생산차질이 지속된다면 예약 고객들이 다른 차로 갈아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자동차업계 중론이다.
경기침체로 테슬라마저 실적 저하가 예상되자 자동차업계 내년 전망까지 덩달아 어두워진 상태다. 그러나 중국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판매량 1위를 기록한 BYD(비야디)의 가성비 전략을 따른다면 쌍용차에도 아직 ‘한 방’이 남아있다는 평가다. 가성비가 강점인 쌍용차는 전기차에서도 해당 전략은 이어갈 방침이다.
비야디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해 가격 대비 월등한 성능을 자랑하는 가성비 전기차로 통한다. LFP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3사가 취급하는 NCMA 배터리보다 30%가량 저렴하다. 이 같은 비야디의 정책은 충성고객으로 연결됐다. 테슬라가 중국에서 가격을 내릴 때 비야디가 오히려 가격을 올린 것은 고객 신뢰에 기반한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쌍용차는 올해 2월 첫 전기차 코란도 이모션을 선보여 불과 3주 만에 초도물량 3500대를 완판한 바 있다. 코란도 이모션은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공급하는 리튬이온 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최장주행거리가 307km이다. 차량 외부에서 문 개폐가 가능하고 주행안전 보조시스템 딥 콘트롤이 적용됐다. 무엇보다 이 차의 장점은 저렴한 가격에 있다. 대당 3800만원에서 4300만원선으로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2000만원 후반대에 구입할 수 있다.
내년 하반기 쌍용차는 토레스 기반 전기차 SUV ‘U100’을 비야디와 협업해 출시할 예정이다. 비야디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를 조달받으면 코란도 이모션 전기차보다 더 저렴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침체기에 소비자는 가성비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쌍용차는 AS가 뛰어난 만큼 주행기능과 안전에 확신을 심어준다면 일반고객은 물론이고, 2030년까지 장·단기 렌터카와 공유차 등을 100% 전기차로 전환해야 하는 기업고객도 포섭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이것 또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원활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내연기관차 1대당 차량용 배터리가 300개가량 들어간다면 전기차 1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600개 이상의 관련 부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상반기부터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를 통한 수급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부품 부족 상황을 해소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의 품귀 현상 등) 악순환이 반복되면 어려움이 가중돼 더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며 “쌍용차가 차량용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하면 (매출 성장 지연으로) 흑자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 (KG그룹 인수 등) 지금까지는 수명연장 개념으로 보고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회사의 존망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