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황양택 기자]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 콜옵션 시점을 미룬 것에 대해 신용평가 업계서는 자본시장 접근성 측면에서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특히 해당 보험사가 조달구조에서 자본성증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더욱 주요하게 작용하는 모양새다. 새로운 제도에서 긍정적 요인이 있지만 자본관리에 대한 부담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일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11월 발행했던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예정이다. 해당 보험사는 지난 1일 싱가포르 거래소와 투자자에게 콜옵션 미행사를 통지했다. 조기상환 도래 이후에도 매 이자지급일마다 콜옵션 행사가 가능하긴 하지만 가능성은 낮게 평가된다.
앞서 흥국생명이 발행한 해외 신종자본증권은 만기일이 2048년 2월28일이다. 발행금액은 5억 달러(당시 한화로 5571억원 규모)였으며 발행금리는 4.475%였다. 콜옵션 행사 시점은 발행 이후 5년이 지나는 2022년 11월9일이다.
(사진=한국신용평가)
신종자본증권은 사실상 영구채 성격으로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고 이를 지속적으로 연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기상환 콜옵션이 부여되는 경우 발행사가 조기상환 여부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시장 관행적으로 최초 조기상환 도래 시점을 실질 만기로 여기고 있으며, 발행기업이 자본시장과의 관계를 고려해 조기상환을 시행하고 있었다. 대다수 투자자 역시 보통 조기상환을 전제로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한다.
흥국생명은 당초 콜옵션을 행사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 감독 규정에 따라 대체조달 요건에는 지급여력(RBC) 비율이 150% 이상인 경우에 한해 조기상환이 가능하다. 보험업계는 금리상승으로 인한 채권평가 손익 감소로 RBC비율이 줄곧 하락하고 있는데, 흥국생명은 올 상반기 기준 해당 비율이 157.8%까지 내려가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에 가까운 수준이다.
차환발행이나 유상증자 없이는 대체조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콜옵션 행사가 어려웠다는 것이 신용평가 업계의 분석이다. 요건에 의하면 증권 상환 전까지 자본성이 동일하거나 더 강한 자본조달로 대체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금리가 더욱 가파르게 오르면서 금리조건이 현저하게 불리한 것으로 인정됨에 따라 해당 보험사 측에서 고금리 차환발행에 의한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김선영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금리상승과 국내 채권시장의 경색 등 발행여건이나 신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도입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차환발행에 따른 실익이 적다고 판단할 수 있다”라면서 “킥스에서 순자산 증가 효과나 경과조치, 올해 종료되는 RBC비율 영향과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분석했다.
흥국생명은 현재 부채 듀레이션(투자자금의 평균 회수 기간을 의미)이 자산 듀레이션보다 길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채를 시가 평가하는 내년도 회계 제도에서 금리상승에 따른 영향으로 자산 감소보다 부채 감소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된다. 즉 내년도에는 현행 RBC비율 제도보다 자본비율 하락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진=흥국생명)
다만 흥국생명은 이번 콜옵션 미실행으로 자본시장 접근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특히 해당 보험사는 자본성증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만큼 자본시장 접근성이 중요한 요소였던 셈이다.
지난 2016년 말 산정기준 강화 영향으로 RBC비율이 부진했는데 2017년부터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사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본비율을 관리하고 있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흥국생명의 조달구조를 살펴보면 신종자본증권 비중이 1.9%(6013억원), 후순위사채가 0.6%(1999억원)으로 나타난다.
김선영 연구원은 “자본성증권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감안하면 자본시장 접근성 저하는 부정적이다”라면서 “새로운 제도 도입 영향의 공개 등을 통한 발행시장 신뢰도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존재해 자본비율 관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 역시 “이번 콜옵션 미행사로 자본시장 접근성이 낮아질 경우 추가 자본성증권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금리 부담이 과중해지는 등 자본관리 능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진단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이번 미행사 사태와 관련해 흥국생명의 일정과 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며 자금 상황과 해외채권 차환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채권발행 당사자 간의 약정대로 금리조건 등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에 문제가 없고 차후 시장 상황은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