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중국과 탈중국으로 양분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중국보다 미국에서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특히 이번 법안은 국내 완성차 업계에 긴장감과 동시에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기차 핵심 부품을 제조하는 국내 배터리 3사에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현황과 경영상황, 재무구조 등을 분석해 본다. (편집자 주)
[IB토마토 이하영 기자] SK온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순위가 6위에서 5위로 상승(SNE리서치 1~7월 기준)하며 기대감을 키우는 이면에는 외형 확장을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이 따라잡지 못해 ‘성장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내실을 갖추지 못하면 비용 상승과 시장점유율(MS) 하락 등 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수 있다는 이유다.
15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오는 2023년과 2025년 사이 글로벌 생산공장 5곳을 추가 가동할 예정이다. SK온은 현재 7곳을 가동중이다. 공장 가동률을 빠르게 늘려 9월 현재 60기가와트시(GWh)에 불과한 생산능력을 2025년 220GWh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다.
(사진=SK이노베이션)
이를 위해 SK온은 프리IPO로 2조원 규모의 투자금 유치를 준비 중이다. 이미 모회사
SK이노베이션(096770)에서 10조원이 넘는 지원금도 마련해 둔 상태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이외에도 해외 생산공장이 들어서는 국가나 해당 주(州) 등에 인센티브나 정책금융 등으로 상당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은 지난 7월 ‘그린 ECA 파이낸싱’을 통해 독일 무역보험기관인 오일러 헤르메스 등에 총 20억 달러(약 2조62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고 적극적인 합작사(JV) 설립 등으로 자금조달 다각화에 나선 바 있다.
SK온이 백방으로 뛰고 있는 투자금 조달이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해도 향후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능력이라는 자동차업계 분석도 적지 않다. 완성품 비율이 낮으면 추가 비용이 적지 않아서다. IB업계에서는 생산공장 증설 등으로 수년째 적자를 이어가는 SK온이 진정한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수율 확보가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수율 상승이 ‘진검승부’
자동차업계에서는 2000년대 이후 영역확장 뒤에 품질을 보증하지 못해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기업이 이미 둘이나 있다. 바로 일본 대표 자동차 기업 도요타와 파나소닉이다.
도요타는 렉서스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2009년 글로벌 1위 판매량을 자랑했지만, 가속페달 결함으로 1000만대 리콜 사태를 맞으며 휘청였다. 사태 원인으로는 급격한 해외 진출 과정 중 품질 관리 허점이 지목됐다.
파나소닉은 2011년 테슬라와 4년간 8만대분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하고 2014년부터 독점공급을 시작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 공급 첫해 수율이 20%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높지 않아 애를 먹었다. 설상가상, 테슬라가 요구하는 빠른 공급 시기를 맞추기 위해 무조건적인 생산에만 매달리다 2019년까지 관련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테슬라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파나소닉은 그야말로 남 좋은 일만 해준 셈이다.
SK온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글로벌 생산기지 5곳을 구축하고 공장 가동을 목표로 한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새로운 생산시설에서 전기차 배터리 수율을 80~90%까지 만드는 데까지 걸리는 데는 대개 2~3년이 소요된다. 사실 이마저도 짧은 수준에 속한다. 2011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업계 1위 CATL의 경우 전 세계 공장 평균 수율이 45~55% 정도로 알려졌다. 100개의 배터리를 만들면 겨우 절반 이상의 완제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만큼 인건비, 원부자재 등 비용 증가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CATL은 인구 14억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배경으로 안전한 판매망과 저렴한 소재수급이 가능해 위험부담이 적지만 SK온은 다르다. 빠른시간 내에 신공장 수율을 높일 방법을 찾지 못하면 파나소닉처럼 완성차 회사에 좋은 일만 해주고 뒤에서 눈물 흘리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사가 해외에 생산기지를 구축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수율향상으로 인한 원가 절감”이라며 “국내에서 시스템을 최적화한 후에 되도록 자동화 시스템으로 공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SK온의 수율 향상을 낙관하는 시선도 있다.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2019년부터 올해 말까지 SK온의 배터리 생산능력은 매년 150% 이상 증가세이나 내년은 조지아 제2공장 가동에도 불구하고, 증설의 속도 조절에 따른 초기 가동 비용이 지난 3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작년·올해 증설된 약 57GWh 증설분의 온기 가동으로 인한 물량 증가 및 수율·가동률 개선도 내년 배터리부문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예정”이라며 “작년 말 기준 SK온의 누적 수주는 1600GWh로 올해 말 생산능력의 20배 이상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모회사 신용도 위협하는 SK온 광폭 투자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최근 3년간 매출이 증가세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매출은 34조5499억→46조8429억→76조5142억원(예상)이다. 2년 전과 비교하면 올해 매출은 두배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의 매출 향상에는 SK온이 담당한 전기차 배터리, 소재 등이 성장한 덕이 크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2020년 2조원 상당이던 관련 매출은 지난해 3조47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69.9% 성장했다. 올해는 7조6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0.5% 성장할 예정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까지 영업이익률도 –7.00→3.74→8.03(예상)%로 상승세다.
그러나 매출 상승만큼 투자 비용이 상당한 것은 부담이다. SK온 생산공장 건설 및 가동 정상화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기업 신용도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신호용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 책임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이 2018년부터 본격 시작한 배터리 분야 투자는 사업다각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요소”라면서도 “올해 이후에도 배터리 관련 분야 투자 소요가 14조원 수준으로 예정되어 있는 점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배터리 부문(SK온)의 누적 영업적자 수준은 신용도 개선의 제약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에프엔가이드 분석결과에 따르면 SK온의 대규모 투자비용에도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부문의 견조한 매출로 부채비율과 당좌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부채비율은 200% 이상을 위험신호로 판단하는데, 최근 3년간 SK이노베이션의 대외 부채비율은 149.04→152.42→159.36(예상)%로 높지 않은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당좌비율도 96.85→78.67→93.89%로 100% 이하를 기록하고 있지만, 크게 낮은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단기채무 충당 비율을 따지는 당좌비율은 100% 이하이면 일반적으로 위험신호로 분류한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올 2분기 분석 자료에서 “정유의 서프라이즈에 힘입어 전사 실적이 크게 상향되었으며 크게 증가하는 단기 자본적 지출 부담을 덜 수 있었다”라며 “이제는 SK온이 매출액 급증과 함께 시장의 수익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차례”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가이던스에 따르면 상반기 배터리 매출 2조5500억원이 하반기 4조5000억원 이상으로 증가될 것”이라며 “매출의 증가, 원가 전가 협의 반영 등으로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될 경우 프리IPO 및 중장기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다시 주가에 반영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