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중국과 탈중국으로 양분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중국보다 미국에서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특히 이번 법안은 국내 완성차 업계에 긴장감과 동시에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기차 핵심 부품을 제조하는 국내 배터리 3사에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현황과 경영상황, 재무구조 등을 분석해 본다. (편집자 주)
[IB토마토 이하영 기자]
삼성SDI(006400)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향후 성장성에 의문 부호가 찍힌 업체다.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흑자전환했지만, 소극적인 경영이 향후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부진한 공장증설 등으로 고객사가 하나, 둘 떠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드는 추세다.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초기 점유율을 잃으면 향후 복구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SDI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다시 반등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SDI에 대한 업계 전망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상황이다. 13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7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판매 순위는 1위 CATL(34.7%), 2위
LG에너지솔루션(373220)(14.2%), 3위 BYD(비야디 12.6%), 4위 파나소닉(8.7%), 5위 SK온(6.6%), 6위 삼성SDI(5.1%) 순이다. 2020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5위를 수성하던 삼성SDI(5.8→4.5%)는 고객사를 빠르게 늘린 SK온(5.5→5.6%)에 자리를 내줬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그룹이 삼성SDI의 목표주가를 절반으로 낮추고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하향한 바 있다. 시티그룹은 삼성SDI에 매도 의견을 낸 이유로 배터리 점유율 축소와 미온적인 생산능력 확장,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를 손꼽았다.
여기에 삼성SDI가 지난 5월 스텔란티스와 미국 내 합작공장(1조6000억원 규모)을 세운다고 발표했지만, 반응이 뜨듯미지근했다. 배터리 생산 예정 시기는 2025년으로 미국의 IRA 수혜가 기대되지만, 삼성SDI 고객사 이탈 조짐이 심상치 않아 실제 공장 신설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삼성SDI)
시작은 BMW그룹이다. 5월 말 삼성SDI의 주요 고객사인 BMW가 2025년부터 원통형 전기차 배터리를 CATL에서 전량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매출 절반을 차지하는 폭스바겐도 2030년부터 자체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고객사들이 삼성SDI에 등을 돌린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삼성SDI는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부문의 흑자전환을 이루고도 앞길이 어둡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고객이 없다면 삼성SDI가 공들이는 전고체 배터리(양극과 음극 사이 전해질이 고체인 배터리로 안전성이 높다) 완성품이 나오기도 전에 회사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IRA 법안 통과는 중국 기업인 CATL을 배제하고 삼성SDI가 고객을 되찾아 올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우석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데이터분석본부전략실 선임연구원은 “IRA로 삼성SDI의 미국 전기차 시장 기회가 충분히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프로토 타입은 이미 되고 있으나 상용화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IRA 덕에 수주 상승 전망…고객사 유대 향상, 생산공장 증설 과제
전기차 배터리 모델은 크게 파우치형과 각형·원통형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삼성SDI의 주력 전기차 배터리는 원통형과 각형으로 최근 완성차시장에서 주목받는 모델이다. 글로벌 전기차 1위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고수하는 데다, 각형을 주로 쓰던 BMW와 각형·파우치형을 혼용하던 폭스바겐까지 올해 차기 모델로 원통형을 선택했다. 이는 완성차업계에서 전기차 가격의 절반 수준인 배터리 내재화 추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원통형은 이차전지 초기 모델로 에너지 용량이 작고 공간효율성이 떨어진다. 대신 규격이 표준화돼 있고 기술 축적으로 안전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완성차업계 입장에서는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파우치형이나 각형보다 원통형 개발이 문턱이 낮다. 게다가 가격과 안전성 측면에서도 합격점이니 금상첨화다.
고객사 변심에 K배터리사도 대응에 분주하다. 삼성SDI는 말레이시아에 원통형 배터리 2공장을 짓고 생산량 확대에 나섰다. 앞서 삼성SDI는 리비안과 원통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하는 등 ‘원통형 강자’로 알려진 만큼 점유율 회복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예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국내 오창 2공장에 5800억원 규모 원통형 배터리 신규 설비 구축에 나섰다.
무엇보다 국내 배터리사는 IRA로 중국 기업 CATL과 미국시장에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을 톡톡히 누릴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보다 중국 배터리 가격이 30% 정도 싸다. 또 CATL이 사용하는 LFP배터리가 국내 배터리사가 차용한 삼원계 배터리보다 화재에 강해 짧은 주행거리에도 최근 완성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CATL과 직접 경쟁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뜻이다.
IRA가 발효된 만큼 BMW나 폭스바겐도 미국시장에서는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인 한국(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나 일본(파나소닉)의 전기차 배터리를 사용해야 할 전망이다. 삼성SDI로서는 원통형을 팔며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할 시간을 벌었다.
전고체 배터리는 화재에 약한 각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삼성SDI가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과제다.
2000년부터 이차전지 사업을 시작한 삼성SDI는 그간 화재로 속을 끓여왔다.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를 탑재한 BMW나 ESS(에너지저장장치)가 꾸준히 화재를 일으켜서다. 그래서인지 경쟁사인 LG엔솔이나 SK온이 파우치 배터리에 올인할 때도, 삼성SDI는 화재 위험이 적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며 개발에만 성공하면 게임체인저가 확실할 것으로 예상되나 상업화 시기가 난제다.
실제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에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붓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기준 3사 R&D 비용은 삼성SDI 5147억원, LG엔솔 3784억원, SK온 1040억원으로 삼성SDI가 압도적으로 높다. 업계에서는 전고체 배터리 상업화 시기를 2030년으로 예상한다. 다만, 학계에 따르면 상용화에는 앞으로 10년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30년 가까이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한 도요타도 이루지 못한 과업을 삼성SDI가 더 빨리 완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 외길을 걷는 동안 생산공장 증설도 파트너십 확대도 이루지 못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이 시기 시장 선점은 향후 매출에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LG엔솔과 SK온이 적자 압박에도 빚을 내 생산공장을 늘리는 이유다.
LG엔솔과 SK온은 합작사(JV) 구성으로 배터리 내재화에 대비한 포석을 깔고 있다. LG엔솔은 제너럴모터스(GM)와 이차전지를 제조하는 JV 얼티엠셀즈를 만들고, 스텔란티스와도 JV를 구축했다. SK온도 포드와 JV ‘블루오벌SK’를 선보이고, 현대차에는 아이오닉6 배터리 공급을 따내며 고객사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삼성SDI의 JV는 LG엔솔과도 협력 관계를 구축한 스텔란티스 뿐이다.
삼성SDI의 이 같은 행보에 업계 일각에서는 시티그룹이 배터리 점유율 축소와 미온적인 생산능력 확장 등을 이유로 목표주가를 낮춘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미래 성장 전망이 없다면 현재 배터리 사업 흑자도 의미가 없다는 논리다.
자본유보율 4000% 육박…투자금 ‘충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SDI는 K배터리 3사 중 재무구조가 가장 안정적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10조→11조→13조원)과 영업이익(4600억→6700억→1조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도 지난해 2·3분기 각각 27억원과 3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흑자전환 했다. 4분기 3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나 연간 실적에서 손실을 만회해 플러스로 마무리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국내 셀 3사 중 가장 양호한 수익성 기록했다”라며 “동사 주력 고객은 원소재 가격 상승분을 배터리 가격에 전가시킬 수 있는 럭셔리 브랜드 비중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의 2020년부터 2022년(예상)까지 부채비율은 61.2→69.99→73.14%로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 부채비율은 일반적으로 200% 이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만큼 안정적인 수치로 판단된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셀업체 내 가장 견고한 이익률과 최근 삼성그룹사의 적극적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확대됐다”라고 밝혔다.
이자상환 능력으로 부실기업을 알 수 있는 이자보상배율은 수치가 높을수록 기업에 긍정적이며 1배 미만일 경우 부실기업으로 치부한다. 에프엔가이드는 삼성SDI 이자보상배율이 올해까지 최근 3년간 9.74→18.66→22.1(예상)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재무구조가 안정적인데도 투자에 인색한 면에는 부정 평가가 다수다. 자본유보율이 상승세에서 이 부분이 뚜렷이 드러난다. 자본유보율은 영업활동으로 생긴 이익잉여금과 자본거래 등으로 생긴 자본잉여금을 납입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이다.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을 알려주는 주요 지표다.
교보증권 자료를 분석하면 삼성SDI는 올해까지 최근 3년간 자본유보율이 3478.99→3786.55→4233.33(예상)%로 상승했다. 2020년과 비교해 올해 연말기준 754%나 증가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유보율이 높을수록 투자여력이 높다고 평가한다. 반면 올해 삼성SDI가 밝힌 투자는 스텔란티스와의 1조6000억원 규모 JV가 유일하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SDI의 당좌비율은 2020년 76.87%에서 2021년 76.72%로 줄었다. 당좌비율은 기업이 단기간에 환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100% 이상을 안정적으로 본다. 삼성SDI와 유사한 재무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삼성전자(005930)다. 이 회사 또한 지난해말 기준 당좌비율이 196.75%로 200%를 넘지 않지만 유보율은 3만3143.62%를 기록했다.
구성중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환경 대비 보수적인 증설을 감안해 중대형전지에 적용된 멀티플은 16배에서 14.5배로 소폭 하향한다”라며 “최근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수익성 중심의 경영은 재부각을 받고 있지만 추가적인 기업가치 상승은 생산능력 확대를 가속화할 때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SDI는 동사의 글로벌 원통형 전지 생산량을 2022년 31→2024년 52GWh(기가와트시)로 예상했으나, 2024년 38GWh로 수정 전망했다”라며 “삼성SDI는 경쟁사들과 달리 중장기 생산량 목표치를 제공하지 않아 향후 투자 발표시 실적이 변동될 가능성이 있어 타깃 멀티플을 경쟁사 대비 20% 할인 적용한다”라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