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는 미국이 사실상 전기차에서 ‘중국 배제’를 선언한 법안이다. 미국은 전기차 한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 신차 기준)의 보조금을 내걸고 규제를 예고했다.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2024년까지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원자재 광물(리튬·니켈·코발트 등) 비율 40%(2026년 말부터는 80%)와 주요부품 조달(양극재·음극재·전해액 등) 비율 50%(2028년 말부터는 100%)를 채워야 한다. 여기에 완성차 조립이 미국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약까지 붙었다.
결국 미국에 전기차를 팔고 싶다면 중국 원자재와 부품 조달을 중단하고 미국향으로 변경하라는 이야기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설 곳 없는 중국시장, 침투율 10% 미국이 대안
IRA는 적용 시점이나 기준이 미국 회사에만 유리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일본 등도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전기차 침투율이 10%에 불과한 점을 들어 IRA가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산업을 중국 그늘에서 벗어나게 할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판로가 막힌 중국 대신 90%의 시장이 남은 미국을 노리자는 이유다.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원자재 공급망 장악, 보조금 차등 지급 등으로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중국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을 살펴보면 18%를 차지한 테슬라를 제외하고 BYD(비야디 14%), 상하이우링(14%) 등 중국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매해 전년 대비 100% 이상 성장하고 있지만, 수입액은 2016년 9억200만 달러를 정점으로 이듬해 99.5% 줄어든 458만달러를 기록했다. 2016년은 테슬라가 중국 진출을 선언하고 염가의 중국 전기차가 대거 공개되며 판도가 내수 중심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중국 기업이 독점해 우리 기업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는 국내 배터리 업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LG엔솔은 중국 내수 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CATL에 이어 2위를 굳건히 지켰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중국 비야디가 LG엔솔을 제치고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16.2%) 2위에 올랐다. 3위로 주저앉은 LG엔솔의 점유율은 11%에 불과하다. 8개월 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20.3%로 2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IRA가 LG엔솔에 더욱 중요한 이유다.
니켈,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 다각화도 LG엔솔이 수년간 준비한 무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LG엔솔은 지난해 호주 QPM 지분투자로 2024~2030년까지 매해 니켈 7000톤과 코발트 700톤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동기간 오스트레일리안마인즈와도 니켈 11만8000톤, 코발트 1만3000톤을 공급받는 장기계약을 맺었다. 자동차업계 일각에서는 2차전지 핵심 원자재가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에 분포돼 있고 제련만 중국에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향후 국내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LG엔솔은 미국 내 6곳에 단독 및 GM·스텔란티스·혼다와 합작(JV) 2차전지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단독 공장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에서 운영 중이며 현재 증설투자 중이다. 확장 계획이 마무리되면 2025년까지 5기가와트시(Gwh)인 생산용량이 25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검토 중에 있는 1조7000억원 규모 애리조나주 퀸크리크 단독 공장 건설이 확정되면 생산능력은 더 증대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LG엔솔은 미국 오하이오주(GM JV, 8월31일 시제품 생산), 테네시·미시간주(GM JV, 2023·2025년 양산 목표)에서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스텔란티스와의 JV도 지역은 미정이나 2024년부터 2차전지 생산을 계획했다. 최근 맞손을 잡은 혼다와도 오하이오주에 5조1000억원대 JV 생산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착공해 2025년말 양산이 목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생산공장 투자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LG엔솔의 북미 생산능력은 올해 말 기준 14기가와트시(Gwh)에서 2025년까지 280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동시기 LG엔솔의 2차전지 생산능력인 580GWh 중 절반이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LG엔솔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국내외 특허는 총 2만3610건이며, 수주 잔고는 300조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1월에는 배터리연구소를 CTO(최고기술책임자)로, 품질센터는 CQO(최고품질책임자)로 승격하는 등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부채비율 낮아져도, 당장 쓸 현금 부족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엔솔은 3년여간 재무안정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이는 외부자본의존도를 나타내는 부채비율 하락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LG엔솔의 부채비율은 83.06%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171.8%) 대비 88.7%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에프앤가이드는 LG엔솔의 부채비율이 올해 연말께는 93.92%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안정적이라 판단하는 부채비율은 200% 이하다. LG엔솔은 올해 말까지 부채비율 100% 이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보다 안정적인 재무환경을 구축했다고 판단된다. IB업계 관계자는 “LG엔솔은 1월 코스피에 신규 상장하며 약 10조2000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해 상반기 자본총계가 20조원 가까이 상승했다”라며 “자본총계가 부채총계를 앞지르며 부채비율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LG엔솔은 순운전자본회전율도 2020년 0.7회에서 지난해 7.6회로 높아진 상태다. 대개 이 수치가 늘어나면 매출 현금화가 원활하다고 판단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엔솔은 최근 3년간 매출이 1조4611억→17조8519억→22조1442억원(예정, 2022년)으로 급증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올해 3~4분기 가파른 실적 성장과 여전한 고객사의 수요 상황에 따른 증설 계획 상향(520→540Gwh)과 수주잔고 증가(300조원→310조원)에 따른 실적 역시 동행할 것”이라며 “2분기 실적발표에서 향후 5년간 매출액 3배 성장 달성을 언급했으며 이는 명확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의 근거”라고 해석했다.
매출이 2년간 20배 넘게 증가하며 부실기업 꼬리표는 확실히 떼어냈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한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그해 이자를 갚을 수 있느냐를 나타낸 지표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이면 부실기업이란 낙인이 찍힌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LG엔솔의 이자보상배율은 2020년 –60.1배를 기록했으나 2021년 11.5배, 2022년 17배로 상승할 예정이다.
다만, LG엔솔은 자본금 확충과 매출 증가로 3분기 흑자 전환이 예상됨에도 공장 신설 등 대규모 투자로 현금 부족 현상을 나타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표적인 유동성 지표로 손꼽히는 당좌비율은 2년간 82.5(2020년)→59.5%(2021년)로 축소됐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년간의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 부족 및 높은 대기 수요를 감안 시 아직은 수요보다 공급을 걱정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미국 투자 가속화에 따라 Capex 규모는 2022년 7조원, 2023년 8조원으로 확대될 전망으로 연초 IPO로 확보한 자금을 통해 25년까지의 투자가 적시에 진행되고 있다”라며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의 견고한 파트너십을 중심으로 미국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