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이하영 기자]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옛 현대상선)의 영구채 조기 상환 여부와 관련해 난항이 예상된다. 산은과 해진공의 눈치를 보고 있는 HMM이 해운업계 피크아웃까지 맞물린 상황에서 조기 상환청구권을 행사할지 여부가 1차적 문제다. 아울러 HMM이 조기 상환청구권을 행사해도 배임 문제가 남아 있어 산은과 해진공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MM은 내년 10월 25일부터 2조68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조기상환청구권(콜옵션 조항)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HMM이 콜옵션을 행사할지, 대부분의 영구채를 보유한 산은과 해진공이 이를 받아들일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스크러버가 설치된 2만4000TEU급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진=HMM)
기업이 장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라면 콜옵션 행사가 원만할 것이다. 그러나 HMM 영구채는 주식 전환 권리가 있는 CB와 약정된 가격에 따라 일정한 신주를 부여받을 수 있는 BW로 구성돼 있다. 즉, 채권자가 콜옵션에 응하는 것 말고도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다.
또 산은과 해진공 입장에서 콜옵션에 응하는 대신 주식으로 권리를 넘겨받으면 더 큰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1주당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가액이 유통가격 보다 현저히 낮은 5000원에 불과해서다. HMM 주가는 17일 종가 기준 2만3450원을 기록했다. 단순 산술로 주식 전환 가격을 계산해도 산은과 해진공은 1주당 1만8450원의 이익을 보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6월 산은이 3000억원 상당 CB, 10월에 해진공이 6000억원 규모 CB를 각각 주식전환했다. 심지어 해진공의 주식전환청구 당시에는 HMM이 앞서 영구채 조기상환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 산은과 해진공은 이익을 낼 수 있는데 시도하지 않으면 배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운업계 “산은·해진공 배임 우려…주식전환 어쩔 수 없을 것”
해운업계도 배임 문제가 걸려 있어 산은과 해진공이 영구채를 주식전환 청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 봤을 때는 (영구채는) 당연히 전량 주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라며 “시세차익이 상당한데 민간기업 채권을 전환하지 않는다면 배임 행위가 돼 정부 차원에서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지난해 9월 리포트에서 일찍이 2조7000억원 상당 영구채가 전량 주식 전환 됐을 경우 희석주가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배 연구원은 영구채 9억651만주가 풀리면 HMM 주식이 1주당 3만3408원으로 희석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직 대규모 주식전환청구는 시작도 되지 않았지만 HMM 주가는 17일 종가기준 2만3450원으로 내려앉았다.
주가와 달리 HMM은 코로나19와 물류대란을 겪으며 고공 성장했다.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매출만 9조952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조6180억원이나 증가(87%)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도 6조8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53%(3조6775억원)나 증가했다. 부채 비율도 올해 6월 말 기준 46%, 현금성 자산 11조3269억원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에 풍부한 유동성까지 갖췄다.
소액주주들은 HMM 실적이 최고점을 찍어도 대규모 영구채 상환 부담이 지나치게 큰 것이 주가에 부담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공매도 세력의 빌미가 돼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민영화되지 못하고 산은과 해진공의 지휘하에 남아있는 것도 주가의 발목을 잡는 한 원인으로 손꼽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가 희석을 막기 위해 HMM을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민영화가 되면 주가 희석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식수가 늘어날수록 HMM 인수주체 기업 부담이 가중돼서다. 지난 10일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도 사전 브리핑에서 “HMM이 흑자가 계속 나고 있는 상황, 중장기적으로는 민영화로 가야 한다”라며 “현재 가격으로 보면 민간이 34~35% 지분 확보에 10조원 가까운 돈이 투입된다. 공공기관 지분을 단계적으로 줄여가는 방식으로 (민영화) 여건을 만들어가겠다”라고 밝혔다.
HMM 민영화는 추진하되 지분 확보에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들이지 않게 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 경우 시장에 주식이 많이 나오면 민영화에 불리하기 때문에 정책적 판단으로 주식전환청구를 막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은 HMM 주식을 각각 20.69%, 19.96% 보유 중이다. IB업계에서는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산은과 해진공의 HMM 지분율이 각각 36.02%, 35.67%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양 공기업 지분이 최소 40%, 최대 70%를 넘기는 만큼 HMM 민영화에는 양쪽 지분에서 일부분을 넘겨받아 1대주주를 만드는 방법도 예상해볼 수 있다.
소액주주 “HMM 영구채 조기상환 강력히 주장해야”
영구채는 발행 1년 후부터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산은과 해진공이 3조원에 가까운 CB를 당장 주식전환 청구한다고 해서 법적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로 인해 HMM 주가 자체가 공매도 세력에 휘둘리고 저평가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들은 주가 부양을 위해 사측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HMM은 줄곧 대주주인 산은과 해진공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와 소액주주들의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이 중 지난해 10월 배재훈 전 HMM 사장이 주주에게 보낸 배당·영구채 조기상환관련 주주서한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배 전 사장은 “현재는 상법상 배당 가능 이익이 없어 배당이 불가능하지만 이익이 발생하는 시점에 적극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하겠다”라고 말했다. HMM 실적이 상승하고 있지만 결손금 또한 4조원이 넘는 상황으로 배당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영구채 조기상환과 관련한 입장이다. 배 전 사장은 “내년 스텝업이 도래하는 제191회 영구채에 대해 회사는 조기상환 청구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라며 “다만 영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고 상환되는 경우 부채 비율이 상승하는 등 재무비율 악화가 예상돼 중장기적 관점에서 회사 사정을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영구채 조기상환 청구권은 ‘검토’에 그치지만 자본으로 인식되는 영구채가 상환되면 부채 비율이 상승하고, 재무비율이 악화될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사실상 영구채 조기상환 의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HMM은 영구채 수익분배금으로 당반기 수익분배금 327억원, 전반기 수익분배금 492억원을 지급하는 등 이자로 한 해에만 1000억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있다. 스텝업이 진행될 경우 이자 부담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주주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상환 노력을 하지 않는 임원은 회사 재무 상황에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올해 HMM호 선장이 된 김경배 사장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연 김 사장 역시 영구채 조기상환 이슈 등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입도 벙끗 못하고, “국가에 누가 되지 않는 좋은 회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말을 해 채권단 눈치보기에 급급했다는 평가다.
최근 해운운임 하락세에 업계 피크아웃이 현실화하며 HMM의 내년에 매출은 올해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사측이 채권단 눈치보기에만 집중한다면 피크아웃 우려에 영구채 조기상환 이슈도 언제 밀려날지 알 수 없다.
IB업계에서는 HMM의 현금 곳간이 가득 차 있는 만큼 남은 영구채를 한꺼번에 상환해도 될 정도라고 평가한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HMM의 자본규모 등이 굉장히 증가한 상태이기 때문에 (영구채를) 중도상환 하더라도 재무능력에 큰 부담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물론 HMM도 할 말이 없지 않다. 지난해 해진공 때와 같이 영구채 조기상환을 청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와 관련 HMM 관계자는 “내년에 영구채 조기상환 기일이 오면 (조기상환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주식전환 등은 (사측에) 결정권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