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은주성 기자]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상반기에 부진한 실적을 내며 업계 라이벌로 꼽히는
미래에셋증권(006800)에 '왕좌'를 내줬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보유채권의 평가금액이 급감하면서 타격을 받은 탓이다. 이에 연간으로도 지난해 탈환했던 증권사 순이익 1위 자리 역시 1년 만에 반납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하반기에도 증시 부진 등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어 업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투자증권은 견조한 IB(투자은행)부문 경쟁력을 바탕으로 실적 반전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의 올해 상반기 기준 순이익은 3486억원으로 전년 대비 40.2%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대금 감소 및 금리 인상 등으로 증권사 실적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한국투자증권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사진=한국투자증권)
특히 2분기 실적 부진이 뼈아팠다. 1분기 순이익은 2745억원으로 준수한 수준이었지만 2분기 순이익은 740억원에 그쳤다. 이는 전년 대비 68.2% 감소한 수치로 미래에셋증권 2분기 순이익(2635억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시장금리 급등에 따른 1000억원 규모의 채권평가손실이 발생한 데 영향을 받았다. 금리가 오르면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의 평가금액이 하락하게 된다. 환율 상승에 따른 330억원 규모의 외화채 환손실 등도 인식됐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투자증권의 증권사 순이익 1위 자리 수성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라이벌인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상반기에 증권사 중 가장 많은 460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메리츠증권이 순이익 4408억원을 거두면서 2위에 올랐다. 한국투자증권이 3위를 기록했고 키움증권(2498억원), NH투자증권(2219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아직 대형증권사 중 삼성증권 실적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한국투자증권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증권사다. 미래에셋증권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해마다 순이익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증권사 순이익 1위를 차지했지만 2020년에는 미래에셋증권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을 제치고 순이익 1위 자리를 탈환하면서 자존심을 회복했다. 순이익 규모는 1조4502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증시가 호황이었던 데다 카카오뱅크 상장을 통한 지분법 처분이익(5546억원)이 포함된 덕을 봤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예상보다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1위 자리 수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수익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자본 규모가 7조1478억원으로 미래에셋증권(10조6099억원)보다 3조원 이상 작음에도 순이익 1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해 연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2.3%로 미래에셋증권(11.8%)을 크게 웃돌기도 했다. 비록 지분법 처분이익의 덕을 봤지만 국내 대형증권사 최초로 ROE 20%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하반기 실적 반전에 성공하면서 순이익 1위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몰린다. 금리 급등으로 대규모 채권평가손실이 발생했지만 최근 채권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평가손실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실제 국고채 3년 물 금리는 6월 3.745%까지 치솟은 뒤 7월 말 3.009%까지 떨어지면서 우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핵심사업인 IB사업부문이 견조한 점도 하반기 실적에 기대를 더한다. 한국투자증권의 올해 2분기 IB사업부문 수익은 2079억원으로 전년 대비 28.8% 늘었다. 증시 부진과 금리 인상 등으로 IB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IPO(기업공개), PF(프로젝트파이낸싱), M&A인수금융 등에서 고른 수익을 거뒀다. 정민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투자증권이 최악의 업황에도 IB 등 핵심부문에서 견조한 펀더멘털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리 인상, 부동산 시장 둔화 등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수익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파생상품 등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적극적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 올해 1분기 한국투자증권의 순자본비율(NCR)은 1998.2%로 지난해 4분기보다 367.7%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국내 10대 증권사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총위험액이 3조4751억원에서 3조7838억원으로 늘어난 데 영향을 받았다.
한국투자증권은 이전에도 하반기 준수한 실적을 내면서 막판에 연간 순이익 1위에 오른 경험이 수차례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상반기에 순이익 2706억원을 거둬 미래에셋증권(2738억원)보다 실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하반기 실적에 힘입어 연간 순이익 5253억원으로 미래에셋증권(5049억원)을 제치고 순이익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도 한국투자증권은 상반기까지 순이익 2873억원을 기록해 미래에셋증권(3578억원)에 뒤졌지만 하반기 준수한 실적을 내며 연간 순이익 4993억원으로 미래에셋증권(4620억원)을 제치고 순이익 1위 자리를 지켜냈다. 2021년에도 상반기에 미래에셋증권(6532억원)보다 낮은 순이익(5834억원)을 냈지만 하반기 카카오뱅크 지분법 이익에 힘입어 결국 연간 순이익 1위에 올랐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금리 급등 등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운용 프로세스 고도화 및 리스크 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라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조달 방법을 '토털 솔루션' 형태로 제공하는 등 기업금융 역량도 강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은주성 기자 e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