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수정 기자] 이랜드그룹의 CVC(기업형벤처캐피탈) 이랜드벤처스가 준법감시 실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설립 1년 8개월이 넘도록 1건의 투자실적이 전부였던 이랜드벤처스가 보다 폭넓은 투자를 단행하며 계열사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재무 라인에 편중됐던 기존의 이사회에 준법감시인을 넣어 기능을 보강함과 동시에 될 성부른 '알짜' 스타트업 발굴에 김 실장이 힘을 보탤 것이란 기대가 실린다.
8일 이랜드벤처스에 따르면 지난달 12일부로 신규 사내이사로 김혜영 준법감시실장이 등기됐다. 김 실장은 그룹 CFO실에 있다 지난 6월 이랜드벤처스로 이동했다.
준법감시인 역할을 하는 임원을 이사회에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이랜드벤처스 이사회는 재무적인 기능에 편중됐다.
작년 말 일반 지주회사도 CVC를 설립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이 완화됐다. 이듬해 1월 이랜드그룹은 이랜드월드가 100% 지배하는 이랜드벤처스를 설립했다.
이랜드벤처스 보다 출발이 늦은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창업 투자 분야 전문가인 임정민 투자총괄을 필두로 팀을 꾸려 패션, 뷰티를 비롯해 IT 등 가리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쌓았다. 반면, 이랜드벤처스는 지난 5월 첫 투자를 단행했다.
이랜드벤처스는 자본금 30억원 규모의 창업투자회사(창투사)다. 작년 이랜드벤처스 영업수익은 약 2억원으로, 수익 창출 활동이 거의 없어 사실상 이랜드월드가 창업 초기에 댄 자본금으로 버티고 있는 상태다.
이랜드월드 역시 지난 2년간 팬데믹 쇼크를 벗어나는데 주력해왔다. 이랜드월드는 한해 1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던 기업이었는데, 코로나가 발생한 지난 2020년 패션 사업 부진으로 이익이 반 토막났다. 공격적인 투자 보다 손실 방어에 급급한 그룹 전반의 사정 탓에 이랜드벤처스도 설립 후 1년 시장을 지켜보기만 했다. 설립 7년 이내 창업 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창투사란 점도 이랜드벤처스가 투자에 신중했던 이유다. 실제, 1호 투자 회사 비빔블은 시드 단계의 4년 차 스타트업이다.
분위기 반전을 꿰한 것은 올해부터다. 작년 뉴발란스를 비롯한 패션업이 코로나 이전 수준의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랜드월드 연결 기준 영업이익 1120억원을 기록, 흑자 전환했다. 대표적으로 이랜드리테일이 지난 6월 오아시스에 투자했다.
이랜드벤처스가 준법감시인을 이사회에 포함시킨 것도 투자를 하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만큼, 의사 결정 단계에서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김혜영 실장은 이랜드벤처스가 투자할 스타트업의 재무 건전성 및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 판단해 줄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비빔블로 예열을 마친 이랜드벤처스는 여러 후보군을 놓고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랜드벤처스 홀로 투자를 단행하기 보다 계열사와 손발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지난 5월 비빔블에 이월드가 참여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비빔블은 메타버스 전시 플랫폼을 운영하는 유망 기업으로 알려졌다. 이월드의 테마파크 사업과 메타버스 기술간 협업을 기대해 이월드와 이랜드벤처스가 각각 10억 원씩 비빔블에 투자했다. 이랜드벤처스가 설립 자본금에 기대 투자할 수밖에 없는 만큼, 투자금 부담을 덜어 좋고, 그룹은 유관 사업과 스타트업 간 시너지를 구상할 수 있어 '윈-윈'이다.
김혜영 실장이 주로 몸담았던 외식 분야 투자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김 실장은 이랜드파크에서 외식부문 전략재무를 담당했다. 이랜드이츠가 설립된 이후에는 CFO를 역임했다. 이랜드벤처스는 출범 초 주력 투자 분야 중 하나로 외식을 꼽았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다년간 외식 부문과 함께 호텔리조트 등 다양한 부문의 성장과 살림을 책임져 온 인물이다"라고 귀띔했다.
김수정 기자 ksj021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