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공포가 우리 경제를 덮쳤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찾아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금리와 환율마저 치솟으면서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닥칠 위기가 엄습했다. 물가는 오르고 채용은 줄고 경제 불황이 깊어지면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고 기업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터널을 벗어나 회복에 나서는 듯했던 우리 기업들의 성장세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IB토마토>는 창간 3주년을 맞아 경제빙하기 속 국내 기업들의 현주소와 전망을 담은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금융·산업계가 맞닥뜨린 상황과 위기를 타개할 해법 등을 5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IB토마토 박수현 기자] 기업들의 자금조달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유동성 위기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탓이다. 코로나19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며 회사채 발행은 극도로 움츠러들었고, 전환가액 상향 의무화 등 금융당국의 규제까지 더해지며 대체 자금조달처인 메자닌 시장마저 얼어붙었다. 기업공개(IPO) 시장도 좀처럼 활기를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VC)이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자금절벽에 내몰린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회사채 발행이 줄면서 순상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사채 순발행 급감…순상환 흐름도 나타나
18일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지난 14일까지 회사채 순발행금액은 4961억원으로 집계됐다. 6조2887억원을 기록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순발행액은 총 발행액에서 만기상환액을 뺀 금액으로, 자금조달 상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5월에는 회사채 상환액(8조4703억원)이 발행액(7조8742원)을 넘어서며 5961억원의 순상환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기업들이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에 나서기보다 부채를 갚는 데 집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예측 참여율도 덩달아 낮아졌다.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 참여율(수요예측 참여금액/수요예측금액)은 249.2%로 전년 동월(329.0%) 대비 무려 79.8%p 감소했다. 미매각이 발생한 수요예측은 2건으로, 신용등급 AA급 기업과 A급 기업에서 나타났다.
발행사들이 신용등급에 구애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했던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투자은행(IB) 업계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국내외 금리 인상과 통화긴축 기조, 코로나19 재유행·완화 등 시장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기관투자자의 투자 심리가 위축, 발행물량도 축소된 것으로 분석한다. 금리 상승기에 채권을 구매했다가 평가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올 초 연 2%대였던 무보증 회사채(AA-) 3년 물 금리는 지난달 4%대까지 치솟았다. 작년과 비교하면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2021년 1월~2022년 7월 회사채(AA-) 3년물 금리
증시 부진에 정부 규제까지…메자닌 '한파'
메자닌 시장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익을 노리는 채권 투자가 줄어든 만큼 메자닌 채권 투자유인도 함께 감소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국내 메자닌 채권의 총 발행금액은 2조7268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9669억원) 대비 54.3% 감소했다. 유형별로는 전환사채(CB)가 2조2527억원, 교환사채(EB) 2996억원, 신주인수권부사채(BW) 1745억원 발행됐다. 이와 함께 메자닌 권리 행사 규모도 1조8385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조831억원)보다 11.7% 줄었다. CB는 1조2328억원, EB는 722억원으로 각각 15.3%, 50.6%씩 감소했으며, BW만 5335억원으로 유일하게 증가했다.
메자닌 채권은 주식과 교환할 권리가 있는 채권을 뜻한다. 회사채만으로 투자자를 모을 수 없는 기업 입장에선 채권에 주식을 붙인 CB나 BW를 발행함으로써 자금을 조달한다. 채권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가 향후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바꿔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메자닌 또한 올해 들어 심화된 금융시장 위기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지수가 동반 약세를 보이자 수요가 침체됐다. 특히 금융당국이 메자닌 채권 발행액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CB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체 발행 규모가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최대주주의 CB 매수선택권(콜옵션) 행사 한도를 발행 당시 지분율 이내로 제한하는 ‘증권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시행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에는 발행기업의 주가가 상승했을 때 사모 CB의 전환가액을 최초 전환가액의 70~100% 수준에서 상향 조정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대주주의 지분확대 수단이나 리픽싱(전환가액 조정)과 결합한 불공정 거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였지만, CB로 거둘 수 있는 차익에 대한 기대가 줄면서 발행물량이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IB 업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증시 부진으로 인해 주가 상승에 따라 전환가액을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 개정안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 시장이 얼어붙은 와중에 메자닌 발행 또한 위축된 상황만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채와 메자닌 시장의 불황이 이어진 것과 대조적으로 주식 활용 자금조달의 대표격인 유상증자는 늘었다. 올해 상반기 동안 219개사가 21조3193억원을 조달했는데, 회사 수 기준으로는 5.2% 감소했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21.5% 증가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온도차도 없었다. 코스피에서는 39개사가 17조567억원을 조달해 전년 동기 대비 23.6% 증가했고, 코스닥에서는 156개사가 3조9945억원을 조달해 15.5% 늘었다.
IB 업계 관계자는 “회사채든 메자닌이든 현재 대내외적인 악재가 많아 비교적 자금조달이 활발했던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해 모든 것이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증시 부진이라는 원인이 같기 때문에 소규모 기업의 경우 IPO를 통한 자금조달도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저신용등급의 기업들로 인해 현금확보를 위한 유상증자가 늘었을 수는 있으나, 이 또한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주가에는 악영향을 미쳐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자금조달 한파 속 일종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는 “이 와중에도 기술수출 성과에 따른 마일스톤 유입 등으로 다른 방식의 자금조달 없이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라며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유동성 조이기가 커지면서 실질적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수현 기자 psh557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