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공포가 우리 경제를 덮쳤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찾아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금리와 환율마저 치솟으면서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닥칠 위기가 엄습했다. 물가는 오르고 채용은 줄고 경제 불황이 깊어지면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고 기업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터널을 벗어나 회복에 나서는 듯했던 우리 기업들의 성장세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IB토마토>는 창간 3주년을 맞아 경제빙하기 속 국내 기업들의 현주소와 전망을 담은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금융·산업계가 맞닥뜨린 상황과 위기를 타개할 해법 등을 5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약 24년 만에 6%대로 치솟았다. (사진=연합뉴스)
[IB토마토 황양택 기자] 이른바 ‘S의 공포’라고 불리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 위기로 공급망 체계에 타격을 받은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시장이 침체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정책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경기불황(Stagnation)과 물가상승(Inflation)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인플레이션 지속 기간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경기둔화 가능성마저 커지면서 국내기업의 경영환경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리 상승으로 조달비용에 대한 부담이 늘었고 실물경제 침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대내외적 흐름에 저항할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 세계적 공급망 혼란…이례적 인플레이션 흐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CPI)로 측정한 OECD 지역의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은 지난 4월 9.2%에서 5월 9.6%로 상승했다. 가격 인플레이션은 식품 부문이 12.6%, 에너지가 35.4%로 나왔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4월 6.2%에서 5월 6.4%로 증가했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흐름은 1988년 8월 이후 가장 급격한 가격 인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OECD는 평가했다. 특히 OECD 10개 국가는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기도 했다.
OECD 소비자물가지수 인플레이션 추이 (사진=OECD)
극심한 인플레이션 배경으로는 치솟고 있는 국제 유가가 주요하게 꼽힌다.
한국석유(004090) 페트로넷에 의하면 국제 유가는 서부텍사스유(WTI)가 2020년 배럴당 39.34달러에서 2021년 68.11달러로 올랐고, 같은 기간 영국브렌트유(Brent)는 43.21달러에서 70.95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6월 기준으로는 WTI가 114.34달러, Brent가 117.50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는 코로나 확산 장기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훼손되면서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코로나 기간이 길어져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졌고 이에 따라 원자재 생산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또 선적과 하역 등 항만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운송과 수입 지연이 발생해 공급망이 해소되지 못했다.
주요 원자재 생산국이자 원유 공급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위기가 고조되면서 공급충격은 더욱 커졌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37만개 기업이 러시아 공급 업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최소 24만개 기업이 우크라이나와 연결됐다. 러시아 분쟁과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 수위가 강화되면서 국제유가 흐름도 요동쳤다.
‘긴축정책’으로 급격히 오른 기준금리…예고된 경기둔화
대외 변동성으로 원자재 시장 불안이 지속됨에 따라 인플레이션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은 이에 대응해 긴축정책을 강화하고 나섰는데 단기간에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경기 하방위험도 증대하는 모양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는 물가상승에 대응해 공격적인 긴축정책을 펼쳤다. 연준은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3월 0.25%p △5월 0.50%p △6월 0.75% 순으로 계속 인상하면서 1.75%까지 올렸다. 미국의 6월 CPI가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함에 따라 1981년 이후 4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 오는 26~2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시 한번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 8월(0.25%p)과 11월(0.25%p) 두 차례 금리를 올린 것에 이어 올해 △1월 0.25%p △4월 0.25%p △5월 0.25%p 등으로 ‘베이비스텝’을 밟다가 7월 0.50% 인상하는 ‘빅스텝’으로 기준금리를 2.25%까지 조정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향후 물가가 목표 수준을 계속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금리인상 기조를 현재와 같이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안정이 핵심 문제인 만큼 경기와 물가 중 인플레이션 사안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만 인플레이션에 대응한 긴축정책은 겸기침체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중론이다. 실질소득이 감소해 차후 수요둔화를 초래할 수 있고, 높아진 금리로 기업들이 자금조달과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등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땅치 않은 기업 대응책…금리 상승에 자금조달 난항
왜곡된 공급망 체계에서는 특히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로 인해 자동차 업체들 생산에 변수가 발생하는 등 연관 산업으로 파급이 확산했다. 또 노동력 부족으로 상품과 중간재 생산에도 영업 단축이나 중단, 서비스 축소 등이 발생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IB토마토>에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 단기적으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라면서 “재고도 많이 쌓이고 하다 보니 생산단가보다 낮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영업이익이나 수익성이 줄어들고, 투자 여력이 악화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본적으로는 생산단가 낮추기에 의한 효율 개선이나 적정한 임금을 위한 사회적 협조 등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확산과 러시아 분쟁 문제로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계속 강화되는 글로벌 긴축정책으로 기준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기업의 자금조달 환경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국내 기준금리와 시장 금리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 조달 여건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자본시장연구원은 연준의 금리 인상 충격이 장기 구간을 중심으로 국고채 금리를 높이고 시중 금리에도 유의한 영향을 준다면서 특히 회사채 금리가 오르고 은행의 조달비용이 증가해 가계와 기업대출 금리도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IB토마토>에 “미국 연준에서 금리를 계속 올리는 등 해외에서 나타나는 긴축 요인으로 금융시장의 상황 자체가 안 좋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라면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기업들 수익성도 손상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여건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 입장에서 유동성을 좀 더 보유하려는 것이 기본적인 대응 방안이 될 수 있다”라면서 “다만 여력이 좋지 않은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황양택 기자 hy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