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경찰이 SK온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로 하면서 SK온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통한 자금 조달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K온의 경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막대한 투자로 재무안정성의 한계를 지적받고 있어 자금 수혈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지난달 31일 산업기술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SK이노베이션(096770) 법인과 임직원 30여명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의 이번 기소 요청은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벌였던 ‘배터리 기술 유출’ 사건 관련 소송의 연장선으로, 지난 2019년 국내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고소한 건에 대해 수사한 결과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SK이노베이션과의 합의 후에 경찰에 ‘SK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라는 내용의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산업기술 유출의 경우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기 때문에, 즉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도 사실관계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죄여서 LG에너지솔루션 측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사와 소송이 진행됐다.
SK온 관계자는 이번에 송치된 임직원들에 대해 “정확한 내용은 알기 어려우나, 상당수가 SK온 소속인 걸로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SK온의 분사로 배터리 관련 소송은 더 이상 SK이노베이션 전체의 문제가 아닌 SK온의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의 추이가 SK온의 배터리 시설 확충을 위한 자금 조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SK온은 올 상반기 중으로 프리IPO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총 4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프리IPO 자금 중 3조원 가량은 외국계 투자자가, 1조원 정도를 국내 PEF(사모펀드) 컨소시엄이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스텔라인베스트먼트 등으로 구성된 국내 PEF 컨소시엄은 이미 SK온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외국계 투자자다. SK온은 지난 2월 외국계 투자자 대상 예비입찰에서 보통주 유상증자 형태의 투자를 희망한다고 밝혔는데, 보통주는 투자금 회수를 위한 안전장치가 없어 우선주보다 위험이 크다. 지속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SK온이 후속 투자를 진행할 경우, 지분 희석의 우려도 있다. 가뜩이나 리스크가 적지 않은 투자인데 외국계 투자자들이 민감한 ESG 관련 사건이 터지면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현재 거론되는 외국계 투자자는 블랙록·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칼라일그룹 등이다. 이 중 특히 블랙록은 코스닥의 ESG 자료까지 요구할 만큼 ESG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래리 핑크(Lawrence Douglas Fink) 블랙록 회장은 지난 1월 연례 서한에서 경영자의 신뢰도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이해관계자 경영’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제 투자자문사 러셀 인베스트먼트의 조사 결과 해외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ESG 항목이 ‘지배구조’였다는 점도 SK온이 자금 조달에 흥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해당 조사에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지배구조 80%·환경 13%·사회 5% 비중으로 중요도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명한 경영과 신뢰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SK온은 설비투자를 위해 매년 3조~4조원의 자금이 필요해 외국계 투자자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034950)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배터리·소재부문 투자 확대로 2021~2023년 동안 매년 3조~4조원 수준의 설비투자(CAPEX)집행이 예정된 점, 배터리 소송 합의금 지급부담(약 2조원) 등을 고려하면 중기적으로 차입 부담의 유의미한 감축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기존 차입금 수준, 배터리 사업 확장 계획과 소송관련 합의금 지출 등으로 인한 재무부담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판단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0조원을 돌파했다.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152.4%로 건전한 편이지만,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뜻하는 잉여현금흐름(FCF)은 –2조8460억원으로 3년 연속 적자다. 전년도와 비교하면 179%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가 투자유치를 통한 실탄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SK온 측은 이번 송치가 자금 조달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SK온 관계자는 “이번 송치를 불의의 사건이 아닌 예견된 절차로 보고 있으며, 자금 조달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무혐의나 벌금형에 그치지 않고 징역형이 선고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36조에 따르면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유출 등의 행위를 할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국내 유출의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산업 비밀 누설이나 도용의 경우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 사실과 SK온 측의 소명이 적용돼 벌금형에 그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대선 후보 시절 기술 유출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했고, 최근 특허청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산업보안 강화에 대해 새 정부에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징역형을 받을 경우 기업 신뢰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라며 “당장의 수익에는 영향이 적겠지만, 주요 인력의 부재로 연구개발과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