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변세영 기자] 미래에셋그룹이 새로운 먹거리로 ‘가상자산’을 낙점하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그룹 역량을 녹여낸 신설 법인을 통해 수탁 시장을 잡는 게 첫 번째 목표다. 수탁 시장을 선점하면 향후 펀드 운용 등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가상자산 종합금융시장을 리드하려는 미래에셋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그룹은 미래에셋컨설팅 산하에 가상자산수탁(커스터디) 비즈니스를 전담하는 신규 자회사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신규 법인은 일반 개인투자자가 아닌 ‘기관’을 대상으로 영업이 전개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와 대체불가토큰(NFT)을 보관하고 관리해 주는 일종의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가상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할 뿐만 아니라 대여, 세금 처리 등의 부가 서비스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미래에셋증권)
기업에게 가상자산은 ‘핫’한 키워드다. NFT를 활용해 신사업을 확대하거나 혹은 단순히 가상자산 거래 차익으로 투자 수익까지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상화폐거래소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하려면 실명 개인계좌가 있어야 한다. 즉 개인만 할 수 있다. 법인사업자의 코인 거래가 자금세탁 등의 범죄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다. 만약 법인이 기존에 코인을 보유했다면 거래소를 이용할 수 없다 보니 이동식저장장치(USB) 등 형태로 스스로 보관해야 했다. USB는 분실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법인이 코인을 다루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금융사들이 법인 대상 수탁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특히 미래에셋그룹 역시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가상자산이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평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상위 5곳 가운데
미래에셋증권(006800),
NH투자증권(005940),
삼성증권(016360)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5337억원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이익 8433억원에서 무려 36.7% 감소한 규모다. 미래에셋증권만 떼놓고 보면 1분기 순이익은 2081억원으로 전년 대비 29.9% 줄어든 것으로 예상됐다. 인플레이션 확대에 따른 미국의 긴축 행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면서 증시가 혼조세를 보이자 주식 거래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발 증시 활황이 그야말로 하락세에 접어들며 증권사에 효자로 군림했던 위탁매매 수익이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상태다.
증권과 함께 그룹의 또 다른 축인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지난해 1분기 미래에셋자산운용 순이익은 2229억원으로 역대 분기 최고 실적을 갈아치운 바 있다. 다만 올해부터는 주가상승 폭이 다소 둔화하면서 신규자산 유입이 제한돼 자산운용사의 주된 수입원인 운용수수료 수익이 마냥 핑크빛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2020년 말 일임 계약금액(해외자산 포함)은 57조2744억원에서 지난해 말 55조5424억원으로 약 2조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 (사진=미래에셋증권)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역시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미래 산업으로 암호화폐, 블록체인, 대체불가토큰(NFT) 등 디지털 기술과 자산이 등장하고 있다"라면서 "이를 빠르게 포착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시장의 강자로 성장한다"라고 가상자산 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4300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코스닥에 맞먹을 만큼 성장했다. 금융위원회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분석한 지난해 하반기(7월~12월) 국내 가상자산 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장 내 일평균 거래 규모는 11조3000억원이다. 이는 코스닥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인 11조8500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여기에 가상자산 거래소에 등록된 이용자는 1525만명, 실제 이용자도 558만명(중복 포함)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의 가상화폐 수탁사업 진출은 그룹 산하 역량이 집결된 프로젝트라는 평가다. 현재 스위스 투자은행 본토벨, 미국 US뱅크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하나둘씩 가상자산 수탁서비스를 전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금융사가 가상자산을 직접 수탁할 수 없다. 미래에셋 역시 증권 등 금융사가 아닌 미래에셋컨설팅 산하에 신설 법인을 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국내 금융사는 KB국민은행-한국디지털에셋, 농협은행-카르도, SK증권-피어테크 등 지분(합작) 투자를 통해 가상자산 수탁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스스로 법인을 통해 사업을 키우는 건 미래에셋이 유일하다.
우선 사업은 ‘수탁’ 부문에만 한정된다. 수탁사업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일부 수수료뿐이다. 그러나 향후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들어오면 ETF 펀드 운용 등 금융상품으로 활용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미래 먹거리 곳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캐나다 등 해외에서 가상화폐 ETF를 상장·운영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가상화폐가 금융자산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거래소는 자산운용사의 가상화폐 ETF 등을 허가하지 않는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공약으로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제정하고 가상화폐 양도소득의 5000만원까지 세금을 면제한다고 공언하는 등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업계에도 변화의 물결이 크게 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가상자산 수탁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로부터 사업자 라이선스 인가를 받아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법인 설립은 그냥 시작 단계"라면서 "인가를 받고 본 비즈니스가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시장 선점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세영 기자 seyo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