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 중고배터리 가격 인증 나선 이유는···'미래 수익원 선점'
케이카와 배터리 잔존가치 인증 MOU···가격 표준화 나서
가격 책정 수수료·데이터 확보·폐배터리 확보 등 선점 효과 커
공개 2022-03-08 06:00:00
이 기사는 2022년 03월 04일 16:58분 IB토마토 유료사이트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김성훈 기자] SK온이 중고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을 매기는 사업을 시작했다. 전기차 가격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값을 산정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SK온의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SK온이 미래 수익성을 고려해 해당 사업 선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우성 SK온 이모빌리티사업부장(좌)과 전호일 케이카 마케팅부문장이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SK온
 
3일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지난달 24일 국내 최대 직영 중고차 플랫폼 기업 ‘K Car(이하 케이카)’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케이카가 매입하거나 판매하는 중고 전기차 배터리의 잔여 수명과 잔존가치를 인증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중고배터리의 가격을 매긴다는 얘기다. 배터리가 전기차 가격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가격을 알면 중고 전기차 가격을 산정하기도 쉬워진다.
 
중고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아직은 시장이 크지 않고 가치 평가 기관이 따로 없어, 가격을 산정할 객관적인 기준도 없었다. 지난해 초 SK온은 배터리 수명과 잔존가치를 분석하고 이상 현상까지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BaaS Ai(Battery as a Service Artificial Intelligence; 바스 AI)’를 자체 개발했다. BaaS는 배터리의 생애주기별로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하는데, 현시점에서의 배터리 상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더욱 고도화된 BaaS를 가능케 하는 것이 ‘BaaS Ai’다. 
 
SK온은 작년 4월부터 SK렌터카(068400)가 운영하는 전기차 배터리 상태를 측정·분석에 BaaS Ai를 활용해 왔다. 5월부터는 전기차 충전 애플리케이션 '이브이 인프라'(EV Infra)의 운영사 ㈜소프트베리와 함께 6개월간 이브이 인프라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충전 패턴을 분석,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이브이 인프라는 국내 최대 규모인 2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어 다양한 배터리 데이터를 쌓기에 최적의 파트너였다. 이를 바탕으로 작년 11월에는 일반 고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BaaS를 개발했는데, 각 전기차 차주가 배터리 상태와 수명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번 중고배터리 가격 산정 사업도 SK온의 BaaS 확장의 일환이다. SK온 측은 “배터리 진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고 업계와 협업을 늘려가는 것은 진단 기술이 BaaS 산업의 시작점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고배터리 가격이 합리적으로 책정돼야 거래가 늘 수 있고, 수명이 부족한 배터리는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SK이노베이션, SNE리서치
 
배터리 가격을 측정해 표준화하고 가치 평가의 척도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지만, 업계에서는 SK온의 이 같은 행보로 향후 수익성 확보 전략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은 배터리 잔존가치 측정으로 얻는 수수료다. 전 세계와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있는 지금, 중고 전기차 배터리의 잔존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속 가능한 수익원이 된다. 중고 전기차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므로 케이카와 SK렌터카뿐만 아니라 다른 차량 보유 기업과의 제휴도 예상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2GWh(기가와트시) 수준인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30년136GWh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110배로 커지는 것이다. 에너지 전문 조사기관 SNE리서치 역시 글로벌 중고·폐배터리 시장 규모가 2019년 1조6500억원에서 2050년 600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잔존가치 측정의 또 다른 이점은 데이터 확보다. SK온은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먼저 잔존가치 측정 사업을 시작한 선점 효과로 더 많은 배터리 관련 데이터와 고객·제휴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배터리와 BaaS 고도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학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이든 배터리이든 결국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서의 주행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이 된다”라며 “데이터가 제품과 서비스 강화의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잔존가치 평가 사업의 선점은 폐배터리 확보와 재사용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로 배터리도 생산업체에서 출고되면 소유권이 구매자에 이전되기 때문에, SK온이 만든 배터리라고 해도 폐배터리가 됐을 때 SK온이 다시 배터리를 수거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현재 국내외 많은 기업이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사업에 나서고 있고, 폐배터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SK온의 경우 가치 평가를 위해 제휴를 맺은 고객사에서 안정적으로 폐배터리를 공급받을 수 있고, 이를 활용해 폐배터리 재사용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 
 
손혁 전 SK온 이모빌리티사업부장, 이태희 SK에코플랜트 에코스페이스PD, 이양수 ㈜케이디파워 대표이사가 '재사용 ESS 사업 활성화 업무협약'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SK온
   
이를 위해 SK온은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 종합 시험인증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업무협약을 체결, 폐배터리 성능을 검사하는 방법과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양측은 특히 배터리를 모듈 단위로 평가하는 방식을 넘어 ‘팩(pack)’ 단위로 평가하는 방법을 구축하기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팩을 모듈로 분해하지 않고 직접 검사하는 것은 모듈로 분해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사업성 확보에도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팩 단위 배터리 평가 방법의 표준화가 이루어지면 폐배터리를 ESS·소형 전기 이동 수단 등에 재사용하는 생태계 구축을 빠르게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KTL의 설명이다.
 
실제로 SK온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기아자동차 ‘니로EV’의 폐배터리 6개를 재사용한 300KWh(킬로와트시)급 ESS를 구축하고, 이를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SK에코플랜트 아파트 건설 현장에 활용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K온은 폐배터리 기반 ESS의 내구성과 안전성, 배터리 효율과 전력 요금 절감 효과 등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유관기관과 실증하며 관련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중고배터리 가격 산정은 배터리 구독 서비스로도 이어질 수 있다. 배터리 평가 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에 대해 SK온 배터리로의 교체를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096770)은 이미 중국에서 현지 업체와 협력해 다 쓴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 아닌 ‘교체’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와 유사하게 정기적으로 새로운 배터리를 공급받는 구독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 배터리 구독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차량 관리비를 줄일 수 있고 배터리 없이 자동차만 살 수 있게 돼 차량 구매 비용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SK렌터카도 보유 차량의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어, SK온 배터리 구독 서비스의 주요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와 폐배터리로 제작한 ESS에도 배터리 대여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한국전지산업협회 등과 협력하고 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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