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백아란 기자] IBK자산운용이 출범 18주년을 맞았지만 기업은행의 펀드 밀어주기 혜택이 여전히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펀드시장 경쟁 촉진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개선하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IBK자산운용은 펀드 판매 수익의 절반가량을 기업은행을 통해 얻고 있어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내부거래가 높은 기업일수록 경쟁력 확보가 힘들 뿐 아니라 모기업에만 의존해 홀로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024110)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펀드 신규판매액은 2조5105억원으로 이 가운데 1조626억원이 종속회사인 IBK자산운용 펀드로 나타났다. 계열펀드 신규판매액은 전년 동기(1202억원)에 견줘 10배가량 늘어난 수준으로, 총 누적 펀드 신규 판매 금액에서 계열사 펀드가 차지하는 단순 평균 비중은 지난 2020년 10%대에서 40%대로 약 4배 뛰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일감 몰아주기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에 제동을 걸었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중심의 펀드 판매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금융투자업규정’을 개정, 은행과 보험·증권사 등에서 판매할 수 있는 계열사 펀드판매 규모를 2018년 45%에서 매년 5%씩 줄이기로 했다. 올해의 경우 25%로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경우 금융투자업 규정에 명시된 계열사 펀드 판매 총량 제한 비율(30%·2021년도 기준)을 웃도는 등 계열사 몰아주기가 되레 늘었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기업은행의 계열사펀드 신규판매 비중은 작년 1분기 32.6%, 2분기 47.6%, 3분기 42.3%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주요 금융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론 총량 제한 비율은 연간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당장은 금융당국의 규제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펀드 판매 과정에서 계열사 펀드를 우선 판매할 경우 유사한 펀드 중 더 나은 조건의 펀드를 접촉할 기회가 줄어드는 등 투자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의 기회를 차단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수익률이나 성과가 좋은 펀드를 소개하기보다 계열사 펀드를 밀어줌으로써 투자자의 권한을 해칠 수 있어서다. 실제 기업은행은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대출을 미끼로 예금·보험·펀드 등의 금융상품 가입을 요구하는 일명 '꺽기(구속성 상품 판매)' 최다 은행으로 지적받은 바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약 4년간 기업은행의 꺽기 의심거래 금액은 16조 6252억원(26만8085건)으로 약 34%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기업은행
반면 여타 금융사들은 계열펀드 판매 비중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계열펀드 신규판매 규제 한도를 넘는 금융사는 농협은행과
미래에셋증권(006800) 2곳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농협은행의 경우 NH아문디자산운용이 출시한 펀드 판매 비중이 1분기 36%에서 2분기 32%, 3분기 29%로 감소했으며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자산운용 펀드 판매 비중은 각각 36%, 32%, 28%로 나왔다. 키움증권의 경우 지난 2020년 1분기 61%에 달했던 계열펀드 판매 비중을 작년 3분기 18%까지 낮췄다.
IBK자산운용은 자립도가 낮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2004년 투자신탁 자산운용과 자문·투자일임, 선물투자펀드의 운용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후 약 18년간 운용업을 영위했지만, 여타 자산운용사들이 대체투자와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한 것과 달리 운용자산 절반 이상이 단기금융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아이비케이자산운용의 순자산총액과 평가액을 더한 운용자산(펀드수탁고·투자일임계약고, AUM)은 19조8024억원으로 집계됐다. 부문별로 보면 단기금융이 11조1413억원으로 52.3%를 차지했으며 재간접(18.64%), 채권(9.77%), 주식(8.12%) 순으로 나왔다. 특별자산과 부동산, 혼합자산 등 대체투자 비중은 각각 3.91%, 0.87%, 0.18%에 머물렀다. 지난 2010년 1월 기업은행으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이후 '글로벌시장 진출'과 '운용업계 상위 10위권 진입'을 경영목표로 내걸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한 실정이다.
기업은행의 영향력이 큰 가운데 통상 기업은행 부행장 등이 자산운용 대표로 내려와 '2+1년'의 임기를 지내다 보니 머니마켓펀드(MMF) 등 원금손실 위험이 낮은 펀드를 중심의 영업문화가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기은SG자산운용 시절부터 현재까지 IBK자산운용을 거쳐간 10명의 대표 임기를 보면 초대 대표인 알버트 르큘로(2004년 10월~2007년7월)와 한영근(2010년 2월~2013년1월), 시석중(2017년 2월~2020년 2월) 전 대표를 제외하면 3년 임기를 채운 사람이 없다. 지난 2020년 선임된 강남희 대표의 임기는 올해 2월20일까지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핵심성과지표(KPI)를 통해 계열펀드 판매를 압박하거나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단기채권펀드 등 안전추구형에 대한 수요가 많다 보니 계열펀드 판매 비중이 증가한 것”이라면서 “현재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계열펀드 판매 비중은) 당국 규제에 맞춰 조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