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051910))의 상장 절차가 본격화하면서 경쟁기업인 SK온도 독립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 산하의 해외 자회사 지분을 SK온에 매각하고, 새 수장으로 그룹 2인자 최재원 부회장이 선임됐다. 업계에서는 흑자전환과 함께 내년 상장할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일 경우, SK온의 상장도 당겨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최재원 SK온 신임 대표. 사진/SK이노베이션
SK(034730)는 17일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최태원 SK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을 SK온 대표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SK온 대표이자 사내이사·각자 대표이사로 임명되면서, 최 수석부회장은 8년 만에 SK 관계사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앞으로 SK온은 최 수석부회장과 기존 지동섭 대표 각자 대표체제로 운영되며, 지 대표가 경영 전반을 맡고 최 대표는 성장전략 수립과 글로벌 네트워킹을 담당할 예정이다. SK온 측은 “최 수석부회장의 책임경영을 통해 중요한 성장기를 맞은 배터리 사업을 SK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육성함과 동시에, SK온을 배터리 분야의 글로벌 1위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회사 의지가 실린 인사”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SK가 그룹의 2인자인 최 수석부회장을 SK온 대표로 임명한 것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견제이며, 늦지 않게 완전 독립과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 대표가 브라운대학교 물리학 학사·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재료공학 석사 등 배터리 사업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학력을 보유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LG에너지솔루션이 그룹의 키맨(Key Man)인 권영수 부회장을 대표로 선임한 것에 대한 대응 조치의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누가 대표를 맡고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영업력이 달라질 수 있다”라며 “배터리 사업도 결국 수주 산업이기 때문에 그룹의 주요 인사를 대표로 선임해 일감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SK온 역시 상장 준비에 속도를 내기 위해 최 대표를 선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 대표는 2016년 7월 가석방 이후 지난 10월까지 취업제한을 받았는데, 취업제한 해제 후 바로 SK온 대표로 선임됐다는 점은 SK온 역시 내년 중 상장을 염두에 두고 독립 경영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SK온의 상장 준비 움직임은 이뿐만 아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중국 상하이의 배터리 제조 자회사 SK퓨처에너지(SK Future Energy) 지분을 SK온에 전량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처분 금액은 389억원이다. SK온이 지난 3분기를 기준으로 아직 9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SK이노베이션의 명시한 ‘처분 목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해당 공시를 통해 SK퓨처에너지의 처분 목적을 ‘물적분할 시 제외된 투자주식 매각을 통해 Battery 독자 경영 체계 구축 완성’이라고 설명했다. 미리 지배구조를 정리해 적정한 시점이 왔을 때 신속히 상장 절차에 돌입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 확충에 매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도 SK온의 상장이 당겨질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현재 220조원 수준인 SK온의 수주잔고는 내년 300조원을 돌파하며 압도적 1위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2025년까지 매년 3조원가량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 외에도 친환경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규모다.
실제로 SK온은 지난달 프리IPO(상장전 지분 투자 유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주관사로 도이치증권과 JP모간을 선정하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해외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중심으로 티저레터를 배포한 상황이다. 프리IPO 규모는 약 3조원으로, 시장에서 예상하는 SK온 기업가치의 10% 수준이다. 예비입찰은 내년 1월 진행된다.
SK온은 당장은 기업공개(IPO) 계획이 없으며, 2024년 정도에나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20년 가까이 많은 자금과 노력을 배터리 사업에 투자했지만, 여전히 돈을 잃고 있다”라며 “특히 자본지출 규모가 매우 커서 가끔은 이 숫자들이 정말 겁날 때도 있다”라고 밝힌 만큼 흑자전환이 이뤄지는 대로 재무 안정화를 위해 IPO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내년 초 상장 후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SK온 상장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SK온이 IPO에 나설 경우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국내 상장사는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인데, 규모 등 측면에서 직접 벤치마크할 대상은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것이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SDI와 중국 CATL을 비교 기업으로 선정해 평가한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은 112조2000억원에 이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업종 내 비교 대상 기업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일수록 투자자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신규 IPO에 나서는 기업의 몸값도 커진다”라며 “내년 상장 후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날개를 단 상황에서 흑자전환이 이루어진다면 SK온 상장 역시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