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창권 기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1억원 이상의 럭셔리 순수 전기차를 선보이며 브랜드 간 자존심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전기차 시장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내세우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1억원 이상의 전기차는 구매 보조금 혜택을 누리지 못해 브랜드의 영향력과 기술력에 따라 경쟁성과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초고가 럭셔리 전기차 전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내 브랜드 중에서는
현대차(005380)의 제네시스가 초고가 전기차 대열에 합류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는 시점이다.
25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벤츠와 BMW가 이날 열리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각사의 플래그십 라인의 순수 전기차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고 전기차 시장 경쟁에 나선다. 먼저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EQS 450+’ AMG 라인 모델을 선보이는데, 차량 가격은 1억7700만원에 달한다.
GV70 전동화 모델. 사진/현대차
EQS 450+ AMG 라인은 107.8㎾h(킬로와트시) 배터리 용량을 갖춰 환경부 인증 기준으로 1회 충전 시 최대 478㎞ 주행이 가능하다. 또한 배터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급속 충전기로 최대 200㎾까지 충전을 지원하며 약 30분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BMW 역시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전동화 모델 더 ‘iX’를 선보인다. 지난 2014년 브랜드 첫 순수 전기차 i3를 출시한지 7년 만에 한국시장에 전기차 라인업을 추가하는 것이다. 앞서 BMW코리아는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디 얼티밋 i 데이’를 개최하고 더 iX와 뉴 iX3를 국내 출시했다.
더 iX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프리미엄 럭셔리 세그먼트를 본격적으로 여는 첫번째 모델로, BMW의 최신 전기화 드라이브트레인인 5세대 eDrive가 탑재되며 1회 충전 주행 거리는 iX xDrive50이 복합 447km, iX xDrive40이 복합 313km다. 가격은 iX 모델이 1억2260만~1억4630만원이며, iX3는 7590만원이다.
아우디는 이번 행사에서는 소형 전기 SUV ‘Q4 e-트론 40’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내에 ‘e-트론 GT’, ‘RS e-트론 GT’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7월 국내시장에 ‘e-트론 55 콰트로’를 선보이며 전시차 시장에 진입한 아우디는 출시가격이 1억1592만원에 달하는 전기차를 올해 3분기까지 600대를 판매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가 이번에 선보인 전기차의 특징은 모두 1억원이 넘는 고가 프리미엄 모델이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전기차 구매시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이 지원되는데 6000만원 미만 전기차에는 보조금 전액이 지급되고 6000만~9000만원은 그 절반을 지급하며 9000만원 이상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사실상 국내에서는 전기차 보조금 효과로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았지만, 이들 신차의 경우 보조금을 1원도 받을 수 없는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브랜드와 제품 경쟁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수입 전기차 현황. 사진/한국수입자동차협회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 전기차(테슬라 제외)는 3874대로 전년 동기(2743대)보다 41%가량 증가했다. 이 가운데 1억원 이상의 고가 수입 전기차는 1504대가 팔렸다.
이달 들어서도 고가 전기차의 성장세는 두드러지고 있다. 포르쉐 타이칸 4S의 판매가격은 최소 1억4850만원으로, 터보는 1억9820만원, 터보S는 2억3760만원에 달하는데 전체 수입 전기차 가운데 26.7%에 달하는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수입차 브랜드들이 국내에서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고가의 전략을 내세울 수 있는 점은 그간 쌓아온 고가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인식을 통해 전기차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 일정 가격 이상이면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라며 “제품 품질만 좋다고 하면 보조금과 상관없이 구입을 망설이지 않는 고객들을 타겟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연간 누적 전기차 판매량은 7만1006대로 전년 동기(3만6268대)보다 96% 증가했으며, 국내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율은 5.5%에 달했다. 이는 현대차그룹에서 전기차 신형을 대거 선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지난 4월 ‘아이오닉5’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기아가 8월에 ‘EV6’를, 제네시스가 7월에 ‘G80e’, 지난달에 ‘GV60’를 각각 출시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 현황. 사진/한국자동차연구원
특히 현대차그룹의 고급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지난 9월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수소와 배터리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30년까지 총 8개 차종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완성해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제네시스의 전기차 모델은 향후 시장 점유율 확대에 있어 더욱 중요한 브랜드가 됐다.
현재 제네시스의 가장 고가 전기차 모델은 G80e다. 출시가격은 8281만원으로 보조금의 절반을 받을 수 있어 사전 계약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누적 계약 대수가 2000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G80e의 경우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적용한 모델이 아닌 전동화 모델로, 전기차에도 프리미엄 라인의 계보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9000만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실제 출시에는 가격이 소폭 낮게 출시돼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제네시스 브랜드가 수입 자동차 업계의 고가 프리미엄 전략에 맞춰 보조금 혜택과 상관없는 고가 전기차를 출시하며 경쟁에 나서냐는 점이다. 국내에서 프리미엄 라인의 성공이 향후 제네시스의 글로벌 진출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차량의 제조 원가가 높아 마진을 위해서라도 프리미엄 라인을 판매하는 게 회사의 매출에도 긍정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현재 그룹이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신규 모델을 출시 중인 것은 맞지만, 금액이 1억원이 넘는 모델을 출시한다는 명확한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창권 기자 kim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