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두산(000150)그룹이
두산퓨얼셀(336260)을 중심으로 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사상 첫 매출 5000억원 돌파에 대한 기대감 속에 4분기 드라마틱한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한켠에서는 수소경제로드맵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단기간에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2일 ㈜두산 지주 부문에 ‘그룹포트폴리오 총괄’ 부서를 신설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의 김도원 사장을 선임했다. 새로 만들어진 부서는 최근 계열사 전반이 집중하고 있는 수소 등 에너지 부문과 신사업 발굴 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사장을 외부에서 영입한 것도 김 사장이 25년간 에너지 관련 사업을 주로 다뤄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김도원 (주)두산 그룹포트폴리오 총괄 신임 사장, 문홍성 (주)두산 신임 CBO, 정형락 두산퓨얼셀 신임 대표 (왼쪽부터) 사진/(주)두산
지난달에도 신사업 관련 인사가 있었다. 10월28일 그간 ㈜두산 지주 부문에서 그룹 기획전략을 담당해 온 문홍성 사장이 ㈜두산 사업 부문 CBO(최고업무책임자)로 임명됐다. 문 CBO는 앞으로 전자BG(비즈니스그룹)를 비롯한 ㈜두산 내 사업부와 두산로보틱스·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 등의 신사업을 총괄한다. 같은 날 두산퓨얼셀에도 정형락 사장이 새로 선임됐다. 정 사장은 ㈜두산이 지분을 100% 보유한 두산퓨얼셀아메리카의 CEO를 겸직하고 있어, 그룹의 수소 관련 비즈니스 전반을 담당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두산그룹이 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설 부서와 두산퓨얼셀뿐만 아니라, 문홍성 사장이 담당하는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도 수소 연료전지를 활용한 드론 개발에 앞장서고 있어서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지난달 6일 경기도 용인시에 그룹 차원의 첨단기술 연구개발(R&D)센터를 건립하고, 수소 기술 연구시설을 중심으로 그룹 내 연구개발 역량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두산 측에 따르면 내년 하반기까지 수소 관련 연구시설을 최우선으로 설치할 방침이며, 이를 위해 연구개발센터에 ㈜두산·
두산중공업(034020)·두산퓨얼셀·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등 수소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의 연구개발 부문을 모두 용인에 모을 예정이다.
두산퓨얼셀은 활발한 협업을 통해 연료전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8월 SK에너지와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 활용 관련 업무협약을 맺은 두산퓨얼셀은, 지난달 27일 전북 익산의 두산퓨얼셀 공장에서 제1차 기술교류회를 가졌다.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트라이젠)와 고순도 수소 제조 시스템을 연계하는 기술의 개발, 현장에서 수소를 생산을 겸할 수 있는 수소 충전 거점 확대와 사업화 등이 양사의 계획이다. 최근 업계의 화두 중 하나인 수소 충전형 연료전지는 전기·열·수소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고, 분산 발전과 전기·수소 충전도 가능해 도심형 친환경 복합 에너지 스테이션 구축에 적합하다.
지난달 14일에는
현대차(005380)·
기아(000270)와 2019년 체결한 수소연료전지 관련 업무협약(MOU)의 결실로 수소 연료전지 발전시스템 실증사업에 들어갔다. 전력 소비지역 부근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분산 발전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연료전지 발전시스템을 검증하고 운행하는 것이 이번 사업의 목표다.
두산이 이처럼 수소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은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7일 수소 선도 국가 비전을 발표한 데에 이어, 최근에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의결했다. 수소 선도 국가 비전에 따르면 정부는 수소 사용량을 현재 22만t 수준에서 2030년 390만t, 2050년에는 2700만t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청정수소 비율도 2030년에는 50%, 2050년에는 100%로 높일 예정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2050년까지 연료전지 발전량을 17.1TWh(A안)·121.4TWh(B안)으로 늘리고,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4%(A안)·10.1%(B안)를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수소와 연료전지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두산퓨얼셀의 실적도 나아지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지난 3분기에 매출 1227억원, 영업이익 76억원, 당기순이익 6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여전히 감소한 규모지만, 전분기보다는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서 집계한 증권업계 추정치를 보면, 두산퓨얼셀을 올해 4분기 15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1.46%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같은 기간 매출은 2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며, 당기순이익은 무려 99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그룹의 수소에 대한 집중도와 정부의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두산퓨얼셀의 장기 전망이 밝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단기적으로는 두산퓨얼셀의 성장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의 연료전지 발전 계획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는 2050년까지 연료전지 발전량을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4%로 만드는 A안과 10.1%까지 높이는 B안을 동시에 의결했다. 그러나 최근 연료전지 발전의 비용과 탄소 절감 효과 등을 들며 발전 비율 확대에 회의감을 표하는 주장들이 잇따르고 있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연료전지 발전소 현황을 조사한 결과 그레이 수소 연료전지 발전사업은 온실가스 배출은 물론 경제성도 떨어진다”라며 “그린 수소 생산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 해당사업은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레이 수소는 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키는 개질수소와 석유화학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수소를 가리키며, 청정수소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린 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물을 전기 분해해 생산한 수소다.
양이 의원이 발전공기업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천연가스(LNG)를 개질해 만든 그레이 수소 연료전지 발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h(킬로와트시)당 548g으로, LNG 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 389g/㎾h보다 1.4배나 많았다.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는 현재 대규모 발전에 적합한 MCFC(Molten Carbonate Fuel Cell·용융탄산형 연료전지)의 탄소배출량이 ㎾h 당 350g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LNG발전보다 ㎾h 당 39g 적은 것이어서 극적인 탄소감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연료전지 발전이 비경제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발전공기업 5사에 따르면 2020년 연료전지 발전단가는 kWh당 200.2원으로, 132.7원/kWh인 천연가스보다 1.5배 비싸다. 원자력 발전소의 발전 단가는 40원 수준이다. 연료전지 발전 비중을 단기간에 높이기 어려운 이유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수소로드맵 2.0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연료전지 발전 비중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연료전지 발전 비중이 줄고, 정부가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A안에 가깝게 정책을 추진할 경우 발전용 연료전지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고 있는 두산퓨얼셀의 수익성도 크게 성장하기는 어려워진다. 실제로 공시에 따르면 두산퓨얼셀의 올해 초 수주량은 2458억원 규모였지만, 상반기 기준 신규 수주는 224억원에 그쳤다.
두산퓨얼셀을 탄소배출량을 260g/㎾h 정도로 줄일 수 있는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Solid Oxide Fuel Cell)를 개발하고, 수출 확대를 통해 연료전지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개발에 나선 것이 최근인데다, 수출을 시작한 것도 지난 9월이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일본과 유럽 등은 발전용 연료전지 수요가 크지 않아, 중국과 북미 시장 판로 개척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청정수소인 그린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발전이 필요한데, 국내에서 사용되는 수소 중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생산된 ‘그린수소’는 5% 미만에 불과하다. 허선경 산업연구원 연구원도 “그린수소 생산 분야에 더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수소 공급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연료전지 발전 비중만을 확대하는 것은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우려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연료전지 발전에 대해 논란이 많은 상황이어서 정부도 발전 비중을 급격히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두산퓨얼셀이 미래 가치가 큰 기업이지만, 그린수소 공급 증가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개발 등이 이뤄진 후에야 큰 규모의 수익을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