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배터리 소재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포스코케미칼(003670)이 단기 모멘텀이 부재한 상황에서 먹구름이 드리운 모습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잇따라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마그네슘 쇼크에 대한 걱정이 더해지면서 성장세가 주춤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테르예 안데르센 모로우 CEO, 존본 불로우 모로우 연구개발 소장, 정대헌 포스코케미칼 에너지소재사업부장, 곽민수 포스코케미칼 에너지소재마케팅실장(왼쪽부터)이 배터리 소재 사업 업무협약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케미칼
31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25일, 노르웨이의 2차전지 기업 모로우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개발·공급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포스코케미칼은 모로우 배터리가 2024년부터 양산하는 배터리에 들어갈 양·음극재를 개발해 공급하게 됐다.
모로우 배터리는 노르웨이 아렌달 지역에 연간 생산 능력 42GWh(기가와트시)의 대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인데, 42GWh는 전기차 약 70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에 대해 포스코케미칼이 주요 고객인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소재 내재화 전략에 고객 다양화로 응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새로운 고객은 곧 수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포스코케미칼이 공급한 소재로 배터리가 제작돼도, 정작 배터리를 달 자동차가 생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계속되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로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여전히 생산량을 줄이거나 공장을 멈추고 있다. 일본의 닛산자동차는 10~11월 글로벌 생산 규모를 계획했던 것보다 30% 줄이기로 했고, 혼다는 공장별로 생산량을 10%씩 줄이는 감산 계획을 내놨다. 프랑스 완성차기업 르노 역시 올해 생산 차질 예상 규모를 9월 초에는 22만대로 밝혔지만 최근 30만대로 늘려 잡았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 역시 반도체 수급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9월 자동차산업 동향'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생산 대수는 작년 동기보다 33% 감소했다. 기업별로 보면
현대차(005380)가 30.4%,
기아(000270)는 28.6%, 한국지엠(GM)과 쌍용자동차는 각각 69.5%·39.9%씩 생산이 줄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동남아에서 코로나19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재확산하면서 자동차 반도체 수급에 차질이 커졌다”라고 설명했다.
LG전자(066570)는 이날 열린 실적발표회에서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상당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상반기 완화했던 수급 상황이 동남아 코로나 이슈로 3분기 더 심해졌고 4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내년 초, 1·4분기는 돼야 반도체 수급이 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반도체 수급 문제가 더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올해 초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가 2~3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것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라며 “자율주행차, 전기차 도입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반도체 제조 시설 부족으로 공급이 적다”라고 설명했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 회장도 최근 “반도체 수요·공급 불일치 상황은 2023년에도 장담할 수 없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계속되면서, 포스코케미칼의 실적에 대한 증권·투자업계의 전망도 나뉘고 있다. 현대차증권은 “일시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관련 이슈가 있었지만, 2차전지 소재 부문의 성장성과 양호한 철강 경기로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이베스트투자증권은 포스코케미칼이 지난 3분기에 증권사 추정치를 밑도는 실적을 기록했다며 투자의견을 ‘중립(Hold)’으로 뒀다. NH투자증권도 완성차 생산 차질에 따른 양·음극재 판매 부진 영향으로 포스코케미칼의 단기 실적 상승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포스코케미칼의 올해 3분기 매출은 505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9.9% 늘었고 영업이익도 63.5% 증가한 315억원을 기록했지만 증권업계 추정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의 집계 결과, 포스코케미칼의 3분기 매출은 증권사 추정치보다 1.52%, 영업이익은 13.98% 적었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사 매출의 34%를 차지한 양극재의 경우, 판매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최종 고객사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 이슈로 인한 출하 차질에 따라 물량이 전분기보다 5% 정도 감소했다”라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주요 성장 사업 부문인 양극재와 음극재의 경우 고객사 출하 전략에 따라 4분기에도 가동률이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포스코케미칼의 올해 매출 추정치를 기존 2조1637억원에서 1조9786억원으로 8.6% 낮췄다. 영업이익 추정치도 1558억원에서 1334억원으로 14.3%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전력난도 포스코케미칼의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유례없는 전력난에 중국 정부는 제련 기업의 가동 중단을 명령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텅스텐과 규소의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면서 반도체 수급 문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기준 세계 텅스텐 생산량의 82.1%를 차지하고 있고 규소는 67.5%, 낸드플래시 제조에 필요한 황린은 40.3%를 점유하고 있다.
반도체 소재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87%를 담당하는 ‘마그네슘’ 수급 부족도 잠재적 문제로 지목된다. △차량용 기어박스 △시트 골격 △연료탱크 덮개 △핸들 조향축 등 자동차 주요 부품의 대부분이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중국 산시성 정부는 지난달 성내 마그네슘 제련 기업 30곳에 연말까지 가동을 일시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중국 정부가 지시를 내리자마자 t당 3000달러선이던 마그네슘 가격은 5000달러를 넘어 이달 초 8250달러(약 980만원)까지 치솟았다. 국제마그네슘협회(IMA)는 “전례 없는 가격 상승으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내년 상반기가 돼야 가격이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마그네슘은 3개월 만에 산화될 정도로 보관 기간이 짧아서 중국이 생산을 늘리지 않으면 재고를 확대하기가 어렵다. 이에 더해 최대 전기차 시장 중 한 곳인 유럽이 마그네슘 공급량의 9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자동차 생산량 감소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알루미늄 시트나 등을 생산할 때 마그네슘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는 없다”라며 “마그네슘 수요의 35%는 차량용 시트 제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마그네슘 공급이 멈추면 자동차 생산도 멈출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마그네슘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줄면 신규 수주가 감소해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업체의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며 “신차 출시가 지연되면서 기존 수주분의 매출 인식이 늦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전했다.
포스코케미칼 측은 이에 대해 “반도체 부족 이슈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며 “조선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중국 전력난에 의한 포스코 현지 공장 가동 중단 사태도 해결된 만큼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