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연내 자산매입 축소, 이른바 ‘테이퍼링’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오르면 당장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금융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힘들어진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조달 후 금융비용이 커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투자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IB토마토>는 유동성이 사라지는 상황에서의 기업들이 처한 상황과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IB토마토 전기룡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0월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0.75%로 동결했지만 다음달에 이어 내년에도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지며 기준금리는 팬데믹 이전 수준인 1.25~1.5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규제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저금리에 따른 과도한 유동성을 원인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연 0.75%의 기준금리로 집값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기조도 상당하다.
다만 집값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다가는 자칫 피해가 건설·부동산업계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건설업 특성상 PF(Project Finance)와 같은 자금조달이 끊임없이 요구된다는 점,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선분양에서 후분양으로 선회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규제·공급책에도 잡히지 않은 집값…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
인천 서구의 한 공사현장 전경. 사진/전기룡 기자
금통위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정례회의를 열고 연 0.75%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금통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야기한 경기 침체에 대응하고, 빚투(빛을 내 하는 투자)가 끌어올린 집값을 안정화시키고자 지난 8월26일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당초(0.5%)보다 0.25%p 인상한 바 있다.
계속된 부동산 규제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던 영향이다. 정부는 세제 기준을 강화하는 등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책을 내놓았다. 또 3기 신도시 사전분양과 같이 주거안전성을 높이는데 초점을 둔 공급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 집값이 2019년 9월 셋째 주부터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까지 계속해서 상승하자 결국 넘치는 유동성을 원인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10월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유지됐지만 추가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다. 채권시장에서도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세 차례 추가 인상돼 1.5%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간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한 금융 불균형이 지속돼 왔던 만큼 한차례 금리 인상만으로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기는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집값도 조정기를 끝내고 다시금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 직후 0.31%이었던 전국 집값변동률은 추석 연휴 기간을 거치면서 9월 넷째 주 0.24% 수준까지 축소됐다. 하지만 10월 첫째 주 전국 집값변동률은 0.28%를 기록하며 전주 대비 0.04p 상승한 상태이다. 같은 기간 전국 전셋값변동률도 0.16%에서 0.20%으로 확대됐다.
자산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는 유동성도 여전히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21년 8월 중 통화 및 유동성’에는 지난 8월 시중통화량 평균잔액이 광의통화(M2) 기준 3494조4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5%(50조5000억원) 늘어났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잔액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기록이며, 월 증가액도 200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크게 늘어난 규모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통화정책방향회의 이후 이뤄진 온라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금리 이외에 다른 여러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쳐 왔기에 한차례 금리 인상만으로 정책효과가 가시화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경기 흐름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다음 회의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고려할 수 있을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피해는 건설·부동산업계 몫…부동산금융 익스포저 10.3% 증가
다만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과 자산 간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건설·부동산업계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은행의 ‘2021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건설업의 부채비율은 121.5%로 전산업군 가운데 운수업(200.1%), 전기가스(161.2%)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차입금의존도도 25%로 평균치(24.6%)를 웃돈다.
일반적인 업종과 달리 건설업이 PF, 대출 등 자금을 조달한 후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건설업이 잔금을 받는 시점을 매출로 인식하거나, 공정률에 따라 매출을 반영하는 것도 자금조달이 우선돼야 하는 현 구조에 기인한다. 공사·분양선수금과 초과청구공사를 부채로 인식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최근 3년간 전체 국내 부동산금융의 익스포저(위험노출) 규모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2279조3000억원대로 전년 말(2067조원) 대비 10.3% 증가했다.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부동산 담보 대출 등 가계여신 △PF 대출 등 기업여신 △리츠 등 부동산 금융투자상품으로 구성된다.
눈에 띄는 부분은 기업여신의 증가율(10.7%)이 가계여신의 증가율(8.3%)을 웃돌았다는 데 있다. 특히 마이너스대 성장률을 보였던 분양 관련 사업자보증이 책임준공확약, 분양이행보증 등을 중심으로 해당 기간 20조원 급등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시장이 부진하자 국내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실적을 견인하던 국내 건설업종으로서는 금리 인상이 향후 위험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여신 가운데 부동산업 관련 대출이 손실흡수능력이 떨어지는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급증한 만큼 다양한 보완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라며 “향후 한시적 원리금 상환유예가 종료돼 부동산 규제 등의 여파와 결합된다면 관련 부동산 법인의 신용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후분양을 선택하는 사업장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후분양은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공사비를 대여해 부담하고, 이후 공정률이 60%를 넘기면 분양을 진행해 수익을 올려 되갚는 방식이다. 후분양이 분양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공사 입장에서는 이자비용을 부담해야 하기에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저금리 기조가 이어져 건설사들의 이자비용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이후 비용절감에 나섰다는 점도 후분양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였다. 실제 시공능력평가순위 10대 건설사의 올해 상반기 차입금 합계는 13조46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줄었다. 금융비용도 3810억원으로 같은 기간 23.0% 감소한 상태이다.
하지만 향후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들어 정비사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인허가를 받는 사업장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인 만큼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시공권 확보를 위해서라도 후분양을 요구하는 조합의 입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힘들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이전에 후분양으로 전환한 사업장의 경우 저금리로 조달 가능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라며 “최근에는 철근값 급등으로 공사의 5~10%를 차지하는 원자재 가격도 두 배가량 뛰어 부담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증가하는 공사비와 분양가를 저울질한 후 후분양을 진행해야 하는데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상되면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전기룡 기자 jkr392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