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회삿돈 횡령·배임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는
SKC(011790) 자회사 에스케이텔레시스(SK텔레시스)의 재무건전성이 심각하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자본잠식과 수익성 문제에 더해 최근에는 감사의견 거절로 신용도 하락 가능성까지 불거지며 모기업인 SKC에 추가로 손을 벌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SK텔레시스는 17일 반기보고서를 통해 외부 감사인인 삼덕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고 밝혔다. 공시에 따르면 삼덕회계법인은 “5월2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SK텔레시스 대표이사를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소했다”라며 “이는 회계 부정에 의한 회계처리 위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되는 상황으로, 내부감사기구에 조사를 요구했지만, 결과는 현재 제출되지 않았다”라고 의견 거절 사유를 설명했다.
안승윤 SK텔레시스 대표가 기소된 것은 지난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모기업인 SKC가 당시 자본잠식 상태였던 SK텔레시스의 899억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한 사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은 SKC를 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배임’ 혐의를 받고 있고, 안 대표는 분식회계 혐의를 받는다. 2015년 유상증자 과정에서 설정한 사업 목표를 이룰 수 없게 되자, 작년 초 자산을 부풀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식의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신원 당시 SK텔레시스 대표(현 SK네트웍스 회장)와 이들이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감사의견 ‘거절’이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기업평가는 “감사인의 ‘의견 거절’은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낮추는 부정적 요인”이라며 “검토의견 거절의 구체적인 사유, 내부감사기구의 조사 결과와 회계처리 위반 사실 여부 등에 대해 추가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해 추후 신용등급 변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텔레시스의 회계처리에 대한 삼덕회계법인의 의심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SK텔레시스의 신용등급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기업평가가 SK텔레시스에 부여한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은 A3-로, 투자적격등급 최하단이다. 신용등급 B부터는 ‘투기’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투기등급은 해당 기업에 투자 시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여서 SK텔레시스가 투기등급이 되면 자금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SK텔레시스 측은 “내부 조사를 진행하던 중 공시 시점이 돼, '판단 불가'라는 점에서 거절 의견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회사의 회계 등에 문제가 있어서 거절 의견이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K텔레시스는 삼덕회계법인의 요구에 따라 지난달 23일 제3의 회계법인을 선임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일단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삼덕회계법인 측이 공시에서 '내부통제의 전반적인 신뢰성에 의문이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언급한 만큼 단순 판단 불가 이상의 의미일 수 있다"라고 전했다.
SK텔레시스의 신뢰도 하락이 모회사인 SKC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대목이다. 이미 ESG 부문에서는 SK텔레시스 관련 혐의와 구속 기소 등으로 인해 SKC의 지배구조(G) 부문 등급이 A에서 B로 하락했다. ‘B’는 비재무적 위험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 기업에 주어지는 등급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ESG 등급을 A에서 B+가 아닌 B로 두 단계 강등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며, 지난 2차 등급조정에서는 SKC가 유일했다. 국내 ESG 경영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
SK(034730)그룹 입장에서는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내부 조사가 끝나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향후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이 신용등급 유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SK텔레시스는 2011년부터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상태에 접어들면서 심각한 자본잠식에 빠졌다. 상반기 말 별도 기준 자본총계 역시 –661억8155만원, 부채는 총 2439억원, 자본금은 1172억227만원으로 자본잠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부채 중 단기차입금 규모는 1612억원으로, 821억7800만원 수준인 현금·현금성자산의 약 두 배다. 1분기 별도 기준 순차입금 의존도 역시 90.2%로, 건전성 기준인 30%를 훌쩍 뛰어넘었다.
SKC인프라서비스 매각 대금인 789억원과 보유 현금·자산 등을 더하면 유동성 위험은 크지 않다는 것이 SK텔레시스 측 입장이다. 그러나 자금을 모두 단기차입금 해결에 사용할 경우, 실탄이 크게 줄어 자본잠식 해결과 사업 정상화·재편에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재무구조가 매우 취약한 수준”이라며 “중단기적으로 자본잠식상태가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익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SK텔레시스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17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내긴 했지만, 1분기까지만 해도 16억원 적자였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영업손실 71억원, 당기순손실 329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2015년 취득한 자회사 SKC인프라서비스가 SK브로드밴드와
SK텔레콤(017670)이라는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바탕으로 이익을 내왔지만, 이마저도 매각하면서 향후 수익창출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SK텔레시스의 지난해 전체 매출 4066억원 중 통신부문 매출은 2363억원으로, 58.11%를 차지했다. 전자재료부문 매출은 16% 이상 적은 41.89%였다. 통신부문 매각으로 SK텔레시스의 매출 규모가 절반 이상 쪼그라드는 것이다.
SK텔레시스 측은 반도체 중심 사업 재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내놨지만, 현금흐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스신용평가도 “통신망사업부문의 연결기준 매출비중이 60%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매각 이후 회사의 사업기반은 상당 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라며 “신규 사업 추가에 따른 투자 부담, 높은 채무부담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 등의 현금흐름의 제약요인이 존재하고 있어 저조한 현금흐름을 지속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SK텔레시스가 믿을 수 있는 구원투수는 모회사 SKC다. 현재 기업어음이나 회사채 발행도 SKC의 보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SKC가 SK텔레시스의 지분을 81.4%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는 보유 지분이 큰 만큼 SK텔레시스의 저조가 SKC의 자금 확보나 재무, 경영 활동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C 자체는 수익창출력 등 여러 부문에서 탄탄한 기업이지만, SK텔레시스에 대한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 될 경우 주주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SKC 측은 이에 대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신사업 중심의 사업 재편 등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