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액셀러레이터·신기사 역할로 CVC 활발계열사로부터 자금 모아 포트폴리오 구성…시너지 추구대기업 특유 기업 문화 걸림돌 될 수 있어…리스크 테이킹에 소극적
출처/CJ그룹
[IB토마토 변세영 기자] 유통업계 전반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바람이 불고 있다. 스타트업 성장에 따라 지분매각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본업과 시너지도 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는 평가다. 다만 벤처 투자 특성상 성과가 나오기까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데다, 시간과 비용이 대폭 소요되는 만큼 아직은 투자 성적표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인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사명을 '롯데벤처스'로 바꿨다.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AC)는 극초기 단계 스타트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금과 경영노하우를 전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에 투자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반면 벤처캐피탈(VC)의 타깃은 초기단계를 거친 업체로 엑셀러레이터보다는 투자금액이 큰 규모로 전개되는 게 특징이다. 벤처캐피탈은 또다시 '창업투자회사(창투사)'와 '신기술투자금융회사(신기사)'로 나뉜다. 이 둘은 납입자본금에서 차등이 있는데, 창투사는 20억원, 투자 범위가 더 넓은 신기사는 100억원 이상이다. 롯데벤처스는 액셀러레이터이자 신기사의 역할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운용가능 범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롯데호텔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 각각 지분 39.97%, 19.99%를 갖는 롯데벤처스는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목적으로 지난 2016년 출범했다. 2018년 272억원 규모의 1호 펀드를 시작으로 현재 운영 중인 펀드만 약 9개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엘캠프에서 투자한 총 121개사의 기업가치는 선발 당시 3067억원에서 현재 9685억원으로 약 3.2배 성장했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이는 지분투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롯데벤처스는 기타 영업수익으로 지분투자관련 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 평가이익으로 2억8500만원을 인식했다. 이는 투자업체의 영업전망 및 미래가치가 상승했음을 의미하는 뜻이기도 하다.
롯데벤처스는 CVC답게 롯데그룹 계열사들과 협업해 투자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023530), 롯데홈쇼핑 등이 출자자(LP) 전주로 CVC에 자금을 조달해 돈을 모은다. 이처럼 CVC는 투자만을 전문으로 하는 VC와는 다르게 그룹 측면에서 업력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CJ(001040)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난 2000년 씨제이창업투자로 출범한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타임와이즈인베)는 씨앤아이레저산업이 100% 지분을 갖는 창투사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은 CJ 이재현 회장의 장녀 이경후
CJ ENM(035760) 부사장과 이선호
CJ제일제당(097950) 부장이 각각 24%, 51% 지분을 갖고 있다. 타임와이즈인베는 주로 ENM, 올리브영, 제일제당 등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식품·바이오, 콘텐츠 분야 등에 투자한다. 식품유통 부문에서는 국내 1위 밀키트업체 프레시지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등에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콘텐츠 부문은 2017년부터 2019까지 국내 관객수 TOP10에 오른 영화 30편 중 18편에 투자해 성과를 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최근엔 280억원 규모 스마트비대면펀드 등을 결성해 중소기업 투자를 운용하고 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시그나이트)는 신세계 계열 CVC다. 지난해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이 100억원,
신세계(004170) 60억원, 신세계센트럴시티가 40억원을 공동 출자해 자본금 200억원으로 출범했다. 첫 발은 KDB산업은행 등 5개 기관과 함께 에이블리 시리즈B 투자자로 내딛었다. 시그나이트는 이중 약 3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이블리는 여성복 커머스 플랫폼으로 지난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해 짧은 업력에도 초개인화 등을 무기로 현재 기업가치가 약 4000억원 수준에서 평가받고 있다. 패션에 강점이 있는 신세계로서 온라인 부문 시너지를 노린 행보이기도 하다. 에이블리를 시작으로 시그나이트는 패션 브랜드 엔타이어월드(Entireworld), 차량호출 및 배달금융 플랫폼 그랩(Grab) 등에 연이어 손을 뻗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모태펀드의 출자를 받아 500억 규모의 벤처투자조합 ‘스마트신세계시그나이트투자조합’을 결성하는 등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롯데벤처스가 운용하는 펀드 리스트. 출처/롯데벤처스
다양한 강점을 갖는 CVC에도 과제는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보통 시드(Seed) 투자 이후 시리즈A, B, C를 거쳐 프리(Pre) IPO 단계를 거친다. 단계를 거듭할수록 투자 위험도는 낮아지지만, 그만큼 투자 경쟁률이 높아 리턴도 낮은 게 일반적이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현재의 CVC는 여러 스터디와 인재 영입 등을 통해 높은 투자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기존 VC와 비교해 기업 문화상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성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스타트업 투자자문 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투자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자가 나오기도 전부터 투자처들이 줄을 서는 경우도 있다"라면서 "투자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라는 변수도 있다. VC 매출은 관리보수를 비롯한 성과보수와 기타 수익인 금융자산 평가이익 등으로 세분된다. 다만 아직 롯데벤처스와 타임와이즈인베 등 이들 CVC 매출을 살펴보면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구주매각 등을 통한 수익보다는 펀드 관리보수에 그친다. 이들은 계열사들로부터 대부분 출자금을 유치받아 투자금 수익이 나면 계열로 흘려보낸다. 이 때문에 CVC가 갖는 수익은 일부 운용수수료에만 한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롯데벤처스는 전년 대비 47% 증가한 영업수익 25억원을 올렸지만, 조합관리 보수가 21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결국 IPO나 지분 매각 등을 위해서는 투자한 업체들이 ‘벌크업’ 할 때까지 인고의 기다림이 필요한데, 대기업이다 보니 계열사 이해관계 및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VC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흔히 10건 투자 중 6~7개 이상 실패한다고 본다"라면서 "투자 성과도업체에 따라 몇 년 안 걸리는 건도 있고, 플랫폼 케이스에서는 10년 이상 소요될 때도 있을 만큼 천차만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적인 투자 규모가 커져 (성장 및 엑시트 등에)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CVC 전망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어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변세영 기자 seyo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