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성훈 기자] 국내 타이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넥센타이어(002350)가 미국의 반덤핑 관세 판정에 비상이 걸린 데다 설상가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물류난과 차량용 반도체 부족까지 덮치며 수익성 악화 우려에 직면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로 저조했던 실적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넥센타이어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하면서 올해 극적인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일 타이어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23일, 한국·대만·태국·베트남산 타이어의 덤핑 판매로 미국 타이어 산업이 피해를 봤다고 최종 판결했다. 미국 상무부가 이달 중 최종 세율을 결정하면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넥센타이어에 반덤핑 관세가 부과된다.
반덤핑세율은 △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161390)지 27.1% △
금호타이어(073240) 21.7% △넥센타이어 14.2%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이어업계는 빠른 대응에 나섰다. 한국타이어는 하반기부터 미국 테네시공장 증설을 시작해 연 생산량을 기존의 두 배인 1100만개로 늘린다. 인도네시아·헝가리 등 해외 공장의 미국 수출량도 확대할 방침이다.
금호타이어는 베트남 공장을 증설해 국내 생산 물량 일부를 이전하기로 했고, 연 400만개 생산이 가능한 미국 조지아공장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반덤핑 관세의 원인이 된 타이어 가격도 일제히 올리고 있다.
문제는 넥센타이어다. 넥센타이어는 국내 시장점유율이 25%로 높지 않은 데에 비해 북미 매출 비중은 30%로 타이어 3사 중 가장 크다. 이번 관세 조치로 인해 북미 매출이 줄어들거나, 수익성이 떨어질 경우 실적에 대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ITC의 이번 결정과 바이든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로 국내 업체들의 북미 시장 타이어 판매량 감소가 염려된다”라고 전했다.
북미에 공장이 없는 넥센타이어는 ITC에 매년 재심을 청구해 관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넥센타이어는 현재 중국과 체코에 각각 한 곳씩 해외 공장을 두고 있다. 넥센타이어 측은 “북미 공장 투자와 체코 공장 증설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넥센타이어 체코 공장의 올해 1분기 생산능력은 119만8000개로, 435만8000개를 생산하는 경남 양산 공장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중국 칭다오(靑島)와 경남 창녕 공장도 각각 257만8000개·290만2000개를 생산하고 있다. 넥센타이어 관계자는 “체코 공장은 아직 생산 안정화가 안 된 상황”이라며 “관세 적용 후에도 우선은 국내에서 계속 대응하고 추가적인 방법도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체코 공장 정상화가 실적 회복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넥센타이어의 체코 공장은 글로벌 팬데믹으로 인해 정상 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라며 “체코 법인은 지난해 매출액 3,078억원, 당기순손실 588억원을 기록했는데, 실적 회복을 위해서는 체코 법인의 정상화가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기업분석플랫폼 딥서치의 집계 결과, 넥센타이어는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매출액은 16% 이상 줄었고 영업이익도 81%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올해 1분기 역시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48% 줄었다.
넥센타이어의 고민은 비단 미국 관세뿐만이 아니다. 갈수록 높아지는 원자재 가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타이어의 원료인 천연고무 선물가격은 지난달 28일 기준 1kg당 237.3엔이다. 이는 1년 전보다 약 68.8% 오른 수치다. 학계 관계자는 “천연고무는 타이어 제조 원가의 약 25~30%를 차지하기 때문에, 천연고무 가격이 오르면 타이어 업체의 수익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넥센타이어는 이미 지난 4월과 5월 글로벌 공급가를 3~8% 인상했지만 천연고무 가격 상승에 따라 타이어 가격을 더 올려야 할 가능성도 있다.
물류대란으로 운송 비용이 크게 오르고 있는 점도 문제다. 운임의 기준이 되는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26일 사상 최고치인 3785.4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동부로 가는 운임은 10주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해외 공장이 중국과 체코뿐인 넥센타이어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비싼 운임을 부담한다고 해도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수출할 배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임시선박을 투입했지만 타이어 운송에 적합하지 않은 벌크선이고, 그마저도 중소기업 위주로 선적 물량이 배정됐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이 상승세인데, 원자재 구매 후 생산 투입에 따른 원가 반영이 4-5개월 지연된다는 점에서 향후 원가 상승 요인이 존재한다”라며 “물류비용 상승·관세 부담이 더해져 올해 연간 영업이익도 추정치를 –22%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역시 넥센타이어의 실적 개선을 막는 요인이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의 포드(Ford)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7월에도 북미 지역 8개 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거나 생산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따라 포드의 켄터키·미시간·미주리·시카고 등 주요 공장들이 사실상 7월 한 달 동안 가동 중단과 차량 감산에 들어가게 됐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7월 한 달간 북미 지역 3곳의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생산을 줄일 계획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5개 완성차업체의 6월 국내외 시장 판매량은 65만751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1% 늘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저효과로 숫자 자체는 늘었지만,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실제로는 국내외 모두 판매가 줄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 시장만 놓고 보면
현대차(005380)·
기아(000270)차·한국지엠·르노삼성·
쌍용차(003620) 등의 지난달 판매량은 23.6% 감소했다.
이재일 연구원은 “델타 변이 등 변종 코로나 확산과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로 인한 유럽 완성차 메이커의 가동률 하락으로 단기 넥센타이어의 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완성차 판매량 감소에 더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타이어 3사의 제품이 아닌 해외 기업 제품을 더 많이 쓰고 있다는 점도 점유율이 낮은 넥센타이어엔 숙제다.
타센타이어의 고급타이어 브랜드 '엔페라 스포츠'/넥센타이어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차종의 고급화·대형화 등을 추진하며 수입 타이어를 속속 장착하는 비율을 높이고 있다. 2017년 국내 타이어 업체의 전체 타이어 생산량 중 8.8%를 차지했던 신차용 타이어(OE)는 지난해 6.5%로 2.3%포인트 감소했다. 이 비율은 올해 들어 1~4월 누적 기준 5.4%까지 줄었다.
넥센타이어 측은 이에 대해 “기아의 EV6에 제품을 납품하며 기술을 인정받고 있고, 폭스바겐·세아트 등 해외 기업으로의 매출도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voic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