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영업익, 지난해 같은 기간의 2% 대로 급감코로나19 이전 3년 성장성·수익성, 국내 평균 미달호텔·쇼핑·주류, 구조적 문제에 봉착…수익성 오른 캐피탈 주인은 일본롯데인사 충격요법…연말 인사 폭 더욱 커질 수도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급전직하'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어떤 일이나 형세가 갑자기 바뀌어 걷잡을 수없이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뜻이다.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가 급전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의 위기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이후 실적이 추락하는 가운데 형제의 난, 신동빈 회장의 수감, E-커머스 시장의 성장과 같은 악재가 호재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롯데는 롯데다. 126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활용해 반 년에 최소 1조원이 넘는 이익을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올 상반기 롯데는 34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0)이 두개나 빠졌다. 코로나19는 호텔, 백화점, 대형마트, 화학 등 롯데의 주력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면세 사업을 제외하면 제자리걸음 중이었거나 뒷걸음질 중이었던 롯데는 급전직하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달 28일 한국기업평가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어떠한 묘수풀이 가능할지?'란 롯데그룹 분석보고서를 내놨다. 신용평가사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수준의 제목이자 진단이자 전망이다. 김병균 한기평 평가위원은 "2017년 이후 그룹 전반의 실적이 저하되고 있으며, 차입부담도 커졌다"라며 "코로나19 완화 이후에도 실적 회복 속도는 더딜 것"으로 예상했다.
전년비 2%로 쪼그라든 영업익, 과연 코로나19 탓만 일까?
롯데그룹 비금융부문 영업실적 추이. 출처/한국기업평가
지난해 상반기말 금융부문을 제외한 롯데그룹의 영업이익은 1조5070억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말 영업이익은 34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2.2% 수준이다. 코로나19 여파가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그룹 차원의 하락세는 그전부터 나타났다. 2017년 이후 3년간 롯데의 영업이익은 평균 17.2%씩 줄었다. 그렇다고 외형이 커진 것도 아니었다. 3년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0%다. 코로나19 이전 성장세였던 사업은 면세점 뿐이었다. 호텔롯데 내 면세사업 부문은 2017년 이후 영업이익이 3%씩 개선됐고, 매출액은 2015년 이후 연평균 9%수준으로 늘었다. 하지만 나머지 사업은 무거운 움직임이었다.
가장 맏형인 롯데호텔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한국호텔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2010년~2014년)과 비교해 2010년대 후반(2015년~2018년)의 객실이용률은 그대로지만 객실당 수입은 10% 줄었다. 하지만 △시그니엘서울 △롯데리조트속초 △L7명동 △L7강남 △L7홍대 △시그니엘부산 등을 신규 오픈하며 투자를 확대했다. 국내가 악화된 업황 속 투자확대가 문제였다면 해외 호텔은 회계처리다. 2015년 약 1조원을 들여 인수한 뉴욕팰리스호텔은 상각 기간이 짧아지며 매년 200억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발생 중이다.
호텔롯데 부문별 영업실적. 출처/한국기업평가
투자 확대로 2015년 이후 매출은 15%씩 늘었다. 하지만 적자 행진 중이다. 특히 올 2분기는 커진 고정비와 코로나19가 겹쳐지며, 영업손실(1289억)이 매출(871억)보다 큰 다소 황당한 실적을 냈다.
롯데쇼핑(023530) 역시 유사하다. 2015년 이후 △마산 △광교 △ 가산 △진주 △남악 △고양 △군산 △기흥 △인천터미널 등에 신규 개점하며 사세를 넓혔다. 경쟁사인
신세계(004170)와
현대백화점(069960)에 비해 3~5배 많은 수준이다. 하지만 수익은 큰 차이가 없다. 해외 사업은 중국 사업을 철수했고 대형마트 역시 E-커머스 시장의 확대에 대응하지 못했다. 2015년 이후 당기순손익은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손실이다. 손상차손, 처분손실 등 일회성 비용이 자주 발생한 터라 영업손익이 아닌 당기순손익으로 비교했다. 하지만 E커머스의 확대로 매출액은 되려 줄었다. 혁신의 상징으로 꼽혔던 롯데'On'은 사실상 실패로 기우는 분위기다.
화학 부문(
롯데케미칼(011170))의 경우, 둘러싼 외부 환경이 날로 악화되며 실적이 줄어들었다. 미중 무역갈등, 중국발 만성 공급과잉, 글로벌 경기 둔화, 코로나 19 등 악재가 장기화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다만,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에탄분해설비(ECC)공장을 신설해 셰일가스 혁명에 대비했다. 스프레드에 의해 실적이 좌우되는 화학 사업에서 납사와 에틸렌을 모두 생산, 사업 리스크를 크게 줄인 점은 고무적이다.
식료품 부문은 매출은 정체됐지만, 수익은 꾸준히 낸다. 다만, 주류 사업이 말썽이다. 적자가 3년 반째 이어지고 있다. 공장 증설로 고정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일본 불매운동, 코로나19 등이 겹쳤다. 롯데칠성음료가 지분 '50%-1주'를 보유한 롯데아사히주류는 한·일 정치 갈등에 직격탄을 맞으며 지난해 19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로 전환되기도 했다. 배인해 한기평 연구원은 "맥주사업의 부진으로 주류부문 적자가 이어지면서 향후 롯데칠성음료의 수익성 개선은 요원할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캐피탈이 코로나19 속에서도 실적이 호전됐지만, 현재 최대주주는 롯데파이낸셜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진짜 두려움과 대안은?
롯데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그룹이다. 하지만 그룹 내 많은 사업들은 구조적 문제에 봉착하며, '전통기업'의 이미지에 '고루함'이 강화됐다. 잠재적인 위험은 급격한 변화다.
미국 시어스 그룹(Sears Holdings) 파산 신청이 일례다. 1893년 설립된 시어스는 50년 가까이 미국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1970년대 초 미국 전역에 매장 3500개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 패턴의 변화, 온라인 발달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며 2010년 이후 줄곧 적자에 시달렸고 결국 파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전문가들은 시어스가 월마트나 타깃 등 경쟁사에 비해 디지털 혁신에 뒤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롯데그룹도 언택트 문화와 같은 변화를 대응하지 못할 경우, 위기 그 이상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PEF)의 모 대표는 "과거에는 서서히 망했지만, 요새는 한 번에 망한다"면서 "롯데 역시 그룹을 변화시킬만한 솔루션이 없다면 지금 국면에서 몰락할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M&A를 주로 자문하는 한 관계자는 "롯데는 특유의 힘을 너무 잃어버렸다"면서 "케미칼을 제외하면 M&A를 제안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케미칼을 제외한 이유는 실적과 내부 사업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계열사 내 현금이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롯데 역시 변화 중이다. 그룹 차원에서 변화 폭은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달 중순 롯데그룹 최초로 연말 정기 인사가 아닌 임시 이사회에서 고위급 인사를 단행했다. 재계는 이번 인사를 두고 사상 초유의 실적 부진을 맞게 된 롯데그룹의 문책성 인사로 해색했다. 또한 경영지원실을 경영혁신실로 바꾸며 '혁신'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들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가장 필요한 것이 기업 문화 변화지만, 변화가 가장 어려운 것이 기업 문화"라면서 "기존 롯데 문화에 섞이지 않는 별도 법인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란 의견을 냈다. 이어 "이는 기존의 경영진이 아닌 별도 법인이 롯데의 브랜드와 자산을 활용하는 의사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라면서 "경영진 물갈이, 조직 내부 승진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