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기업, 코스닥 시총비중 20% 상회신라젠·에이치엘비·헬릭스미스. 임상 실패 이슈코스닥 부양 무색…특례상장 기업 주가 대폭 하락
[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올해 코스닥시장은 바이오기업들의 잇단 임상 실패 소식에 몸살을 앓았다. 시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밀물보다 큰 썰물'이었다. 저금리 기조 및 정부의 부양책 등으로 풍부한 유동성이 지속됐지만, 올해 초 760대까지 올라갔던 코스닥 지수는 550대까지 내리기도 하는 등 어느 때 보다 큰 변동성을 보였다. 현재 660선에서 움직이는 코스닥 지수의 시가총액은 최초 개장 시점인 1996년 7월을 축으로 두고 비교했을 때, 전년 대비 13%가량 감소했다.
2019년 코스닥지수 변동 그래프. 출처/구글
올해도 이어진 정부의 코스닥 부양책…상장 확대로 지수 회복 노려
일단 정부의 코스닥 부양책은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스닥 상장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중기부 등에 따르면 올해 벤처투자액이 역대 최고인 4조원을 넘어갈 것으로 전망될 만큼 관련 시장이 커졌으므로, 코스닥 상장사를 대폭 늘려 전체 파이를 키우고 이를 통해 코스닥 지수 등을 부양하려는 계획이다.
이에 정부는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요건을 재정비했다. 기술특례상장 이용 가능 기업의 범위를 기존 중소기업 한정에서 2사업 연도 평균 매출액 20% 증가 이상 기업으로 대폭 완화했다. 더불어 바이오기업의 기업계속성 심사 기준을 매출 등 실적보다 기술력에 방점을 뒀고, 동시에 임상 기간 동안 관리종목 지정을 면제하는 요건도 삽입했다.
즉, 정부는 바이오기업 등을 중심으로 하는 코스닥 상장 유도 전략을 쓴 셈이다. 그 영향으로 일단 올해 코스닥 신규상장 기업은 전년 대비 7% 증가한 108개로 확대됐다. IT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과 스팩-이전상장-기술특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2015년을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다. 특히 기술특례 상장 기업은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역대 최대인 22개를 기록했다. 이 중 바이오기업은 14개다.
지난해 4월 도입된 성장성특례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도 5곳으로 늘었다. 성장성특례는 기업공개(IPO) 주관사가 기업의 성장성을 보장하며 풋백옵션 등 제반 리스크를 짊어지고, 대신 거래소가 상장요건 중 자기자본을 2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극도로 완화시켜주는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심지어 기술성 평가도 필요 없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상장한 성장특례 1호
셀리버리(268600)는 간암치료 항암신약 후보물질의 미국 특허를 획득하며 주가가 공모가 대비 2.5배가량 올랐다. 이에 주관사인 DB금융투자는 100억원 규모의 차익을 실현했고, 이를 노린 여타 증권사들도 앞다투어 성장특례에 뛰어들었다.
2018년 11월 9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열린 셀리버리 코스닥시장 신규상장기념식. 사진 왼쪽부터 김원대 한국IR협의회 회장, 정운수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조대웅 셀리버리 대표이사, 고원종 DB금융투자 대표이사, 김재철 코스닥협회 회장. 사진/뉴시스
악재 릴레이…K-바이오를 덮친 판매 취소·임상 실패 충격
장밋빛 희망을 기대하며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이오 겹악재’다. 바이오 기업이 코스닥 시가총액의 20%를 넘게 차지했던 만큼, 이들 기업의 주가 급락은 결국 코스닥 전체의 침체로 이어졌다.
포문을 열어젖힌 것은
코오롱티슈진(950160)이다. 올해 4월 초 코오롱티슈진의 주력 제품인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2액 성분이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GP2-293)였다는 과정이 미국 임상 3상 과정에서 밝혀졌다.
간단히 말해 인보사는 연골을 치료하는 연골세포주사와, 연골을 빨리 자라게 해주기 위해 신장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를 분리추출한 보조주사를 함께 맞는 격인데, 기술 미비 등으로 보조주사 성분의 신장세포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신장세포는 증식이 빨라 자칫하면 암을 확대할 우려가 있다.
게다가 조사 과정에서 코오롱티슈진과 계열사
코오롱생명과학(102940) 측의 말 바꾸기 및 은폐 정황이 드러났고, 그 결과 인보사 판매가 취소됐고 코오롱티슈진도 상장폐지실질심사를 받았다. 이에 코오롱티슈진 주가는 올해 초 4만원 초반대였지만, 거래정지 직전인 5월 말에는 8000원으로 하락했다.
코오롱티슈진이 잠잠해질 무렵 악재가 이어졌다. 6월 말
에이치엘비(028300)는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에서 1차 유효성평가지표인 전체생존율(OS) 내부 목표에 부합하지 않아 해당 결과값으로는 예비 신약허가신청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에이치엘비에 따르면 이는 임상 실패가 아닌 “보수적 관점에서의 임상지연”이었지만, 투자자들의 오해는 커져서 당시 주가는 급락했다.
이후 에이치엘비는 10월 스페인에서 열린 종양학회 정기학술대회(ESMO)에서 임상 3상 관련 결과를 발표하고 2차 유효성평가인 무진행생존기간(PFS)·객관적반응률(ORR) 등에서 유효한 결과값이 나왔다며 “임상 3상은 성공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식으로 승인받은 성공이 아니며, 특히 과거 논란이 됐던 전체생존율(OS) 평가지표가 여전히 미흡해 ‘미완의 성공’이라고 평가받았다. 다만, 에이치엘비 주가는 연초 9만원대에서 한때 2만원대로 폭락했지만, 이후 투심이 서서히 회복돼 현재는 10만원대에 이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셈이다.
에이치엘비 소식이 코스닥 시장을 한낮 태양보다 뜨겁게 달구던 8월 무렵,
신라젠(215600)의 악재가 터졌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이사가 4일 펙사벡 간암 임상 조기종료와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뉴스토마토DB
신라젠은 면역 항암바이러스 치료제인 ‘펙사벡’ 임상 3상 시험성 평가 미팅에서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로부터 임상 조기중단 권고를 받았다. 펙사벡은 간단히 말해 표적항암제의 효과를 극대화해주는 물질이다. 따라서 임상은 표적항암제 ‘넥사바’ 단독 투여와 ‘넥사바+펙사벡’ 병행투여의 비교로 디자인됐다. 그러나 임상결과는 단독투여-병행투여 결과값의 큰 차이가 없다고 나왔다.
즉, 펙사벡이 환자의 생존 시간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결론이 나왔고, 결국 더 이상의 임상 진행이 무의미해 조기종료된 셈이다.
이에 신라젠 측은 “임상 3상 조기종료는 항암바이러스-표적항암제 병행요법 치료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펙사벡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투자심리를 되돌리지 못했다. 그 결과 올해 초 7만원대를 기록했던 신라젠 주가는 현재 1만4000원대까지 내려앉았다.
신라젠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9월 말, 헬릭스미스 사고가 터졌다. 헬릭스미스는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후보물질인 ‘엔젠시스’ 글로벌 임상 3-1A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위약효과(플라시보)를 가려내기 위해 가짜 약을 먹은 위약군 환자 집단 일부의 혈액에서 엔젠시스 성분이 검출됐고 반대로 실제 약을 투여한 환자군 일부는 약물 농도가 지나치게 낮게 나왔다. 즉, 임상 전반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려 정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에 헬릭스미스는 기자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약물 혼용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올해 초 30만원을 넘나들던 헬릭스미스 주가는 현재 8만원 후반대까지 밀렸다. 헬릭스미스는 내년 1월 중순 약물 혼용 등에 대한 임상 오염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바이오 악재에 따른 코스닥 디스카운트…새우등 터진 기술특례 상장사
투자업계는 국내 유명 바이오 기업들의 연이은 악재가 곧 한국 신약개발 시장 전체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일단 인보사 사태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전반적인 제품의 신뢰도를 급격히 하락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식약처 승인이 글로벌 수준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오기업의 전반 기업가치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가시적인 실적이 거의 없는 바이오기업의 기업가치는 단순히 말해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이 성공할 경우를 가정해 미래현금흐름을 계산하고, 여기에 각 임상 레벨에 맞는 성공 확률 등의 변수를 투입해 산출된다.
일반적으로 성공률은 FDA 평균 수치를 참고했는데, 올해 한국 바이오 시장에 터진 겹악재는 결국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미국 등 선진국 대비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고, 이는 곧 임상 성공률을 낮춰 결과적으로 기업가치 하락을 유발할 수도 있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으로는 임상 성공률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추가 적용될 것”이라며 “바이오 선진 국가에서의 평균 성공률을 우리나라 업체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자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진 연구원은 “특히 임상 초기 단계나 항암제같이 개발 난이도가 높은 파이프라인에 대한 디스카운트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거래소 시황판. 사진/뉴스토마토DB
한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신뢰성 하락은 결국 정부의 코스닥 부양 정책에 발목을 잡았다. 거래소가 뚝심 있게 개선한 기술특례 상장제도는 기업계속성을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의 기술성 중심으로 평가하므로 바이오기업들이 애용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디지탈의 현재 주가는 공모가 대비 60%가량 밀렸고, 셀리드, 수젠텍도 약 50%가량 하락했다. 물론 이들 기업의 공모가를 결정한 주가수익비율(PER)의 평균값이 31.74배에 이르는 만큼, 애초에 공모가가 높았던 측면도 있었다.
성장성특례 기업들의 주가 선방으로 일단 주관사들도 한숨 돌린 모양새다. 주관사들이 상장 후 일반청약자 주식을 되사주는 풋백옵션을 짊어지면서까지 성장성특례에 나서는 이유는 결국 발행물량의 10%에 이르는 신주인수권(BW) 등을 활용해 차익실현을 내려는 목적이다. 즉, 주가 표류로 외려 한숨 돌리며 내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상장한 셀리버리 주가도 근 4개월가량 미미한 상승세를 보인 바 있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