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태호 기자] 셋톱박스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든 이후 성장 가도에 비상이 걸린 휴맥스가 최근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흥행으로 전방산업 교섭력도 약해지고 있다. 교섭력 약화는 차입금 부담으로 이어져 휴맥스의 재무건전성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휴맥스(115160)의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현금전환주기(CCC)는 지난 2015년 대비 21일 늘어난 약 121일을 기록했다.
현금전환주기는 제품이 현금으로 전환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매출채권회전일과 재고자산회전일의 합계에서 매입채무회전일을 차감해 산출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의 평균 현금전환주기는 약 66일이다.
휴맥스 게이트웨이 부문 현금은 19개 해외법인으로 수출된 셋탑박스 제품이 설치된 후 취득되는데, 현금전환주기를 참조하면 이 기간이 대략 네 달 가량 걸린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물론 분기 중에는 운전자본 변동성이 있다.
거의 모든 기업은 현금전환주기를 단축하려 한다. 최대한 빠르게 현금을 회수하고, 반대로 지불은 늦춰야 현금유동성을 높여 기회비용을 줄이고 차입부담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현금전환주기 연장은 곧 차입금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휴맥스 연결 기준 총차입금은 제반 이유 등으로 2015년 1858억원에서 올해 3분기 기준 3701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총차입금의존도는 19.5%에서 32.6%까지 증가했다. 통상 제조업체는 차입금의존도가 30% 미만일 때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김승범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운전자본부담 증가 등으로 재무안정성이 약화됐다”라며 “향후 추가적인 운전자본부담이 차입금 감축을 제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휴맥스의 현금전환주기 증가는 전방산업의 구조적 성장둔화에서 비롯되고 있다. 휴맥스 매출의 75% 내외가 위성TV, 케이블TV 서비스 등에 소요되는 셋탑박스에서 창출된다. 이 중 유럽·북미 매출이 70% 내외를 차지한다. 즉, 휴맥스 주요 전방산업은 유료방송 산업인데, 현재 해당 산업군은 넷플릭스, 아마존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급부상으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세계 케이블 및 위성방송 가구수는 2017년 6억8400만가구에서 2022년 6억8700만가구로 사실상 정체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다양한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PwC에 따르면 2017년 미디어 및 통신산업분야의 인수합병은 879건으로 직전 연도 대비 29% 증가했다.
PwC는 “컨버전스를 초래하는 힘이 슈퍼경쟁자(Supercompetitor)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비슷한 사업모델로 수렴하는 소수 글로벌 기업은 자체적으로 자본을 결합해 전방위 소비 등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휴맥스의 주요 거래처인 다이렉TV(DirecTV)는 2015년 AT&T에 485억달러에 인수됐다. 이듬해에는 주요 거래처 중 하나인 차터(Charter)가 타임워너케이블(TWC)을 약 550억달러에 인수했다. 해당 건은 동종업 간 M&A라는 점에서 특히 많은 주목을 받았다.
즉, 전방산업 업황이 악화되는 중에 주요 거래처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휴맥스 교섭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교섭력 감소는 곧 현금전환주기 연장 외에도 수익성 악화 등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휴맥스는 폭등한 D램 가격을 협상력 약화 등으로 판가에 반영하지 못했고, 여기에 구조조정 비용 영향까지 겹쳐 2018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적자를 기록했다. 단, 올해 3분기는 D램가격 폭락으로 누적 EBITDA마진이 4.2%까지 올랐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교섭력은 결국 제품의 구매가격이나 결제조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라며 “수익성이 잠식당하는 산업이나 업체의 경우 교섭력이 떨어져 제품 원가상승분 전체를 전가시킬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승범 연구원도 “휴맥스 교섭력은 향후에도 열위에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수익성 회복은 단기간 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휴맥스는 이 같은 구조적 업황 악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M&A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2017년 차량용 안테나 생산업체 위너콤을, 2018년에는 카셰어링 솔루션 개발업체 디지파츠를 인수했다. 해당 사업들은 휴맥스 연결 기준 매출의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8월 말에는 사모펀드 스틱인베스트먼트와 손잡고 카셰어링 업체 플랫 지분 47.8%를 950억원에 취득했다. 플랫은 해당 자금으로 국내 수위의 주차장 운영업체 하이파킹을 인수했다.
휴맥스 측은 “도심 주요 거점에 위치한 주차 공간을 기반으로 렌터카 및 커뮤니티 기반의 카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주차 공간 내에서 정비, 세차, 충전서비스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결합하는 등 모빌리티 서비스의 허브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플랫이 편입되면 휴맥스 재무제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이파킹의 지난해 매출액은 519억원을, 영업이익은 39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한편,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부터 휴맥스의 단기신용등급을 A3로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성장 둔화 및 재무건전성 악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