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은 국내 철도업계에서 시장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철도 부문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트로이카 중 하나인 플랜트 부문은 5년 이상 적자 행진이다. 재무 구조는 꾸준한 적자로 악화되고 있다. 일회성 비용이 일상적이었던 현대로템에 지난해 12월 '샐러리맨 신화' 우유철 부회장이 실적 반등을 이끌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는 분위기다. 우유철 부회장이 이끈 현대제철의 1년 실적과 재무상황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박기범 기자] '시마 사원', '시마 주임', '시마 계장'…
일본의 인기만화 '시마' 시리즈는 유명하다. 주인공인 시마 코사쿠는 비정상적으로 운이 좋아 승진을 거듭했다. 만화책 주인공이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한 이후 전무가 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만화책 주인공보다 절반 이상 빠르게 승진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우유철 현대로템 부회장이다.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사진/현대제철
그는
현대차(005380)그룹의 샐러리맨에게 신화 같은 존재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후
현대로템(064350),
현대제철(004020)을 거쳐 다시 현대로템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승진도 고속이었다. 2003년 1월1일 부장이었던 그는 이사대우, 상무를 거쳐 2년 만에 전무로 이동했다. 급여도 신화다. 지난해 현대제철로부터 받은 보수는 67억여원이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란 말이 어울린다.
올해 그는 현대로템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 초 신년사에서 "현대로템의 유전인자(DNA)를 내재화하는 원년으로 인식하자"라며 "올해를 변화와 혁신을 통해 재도약하는 터닝 포인트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월에는 '2027 VISION 선포식 및 사업실천 결의회'에서 R&D 비용을 크게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온 이후 실적과 재무 상황은 창사 이래 최악의 수준까지 악화됐다. 게다가 그가 강조한 가치와 목표 역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재무 상태부터 실적까지 꼬인 현대로템
현대로템의 등급전망은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악화됐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9일,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6일 등급전망을 떨어뜨렸다. 3대 신용평가사 중 나머지 하나인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6월 등급전망이 아닌 등급을 낮췄다.
등급 전망과 등급 하락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이는 재무 상태로 나타난다. 2014년 이후 적자가 빈번했던 탓에 재무구조가 서서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의 재무 상태는 지속적인 실적 부진으로 경고등이 켜졌다. 2017년 말 188%였던 부채비율은 3분기 말 332%까지 증가했다.
2017년 1418억원이었던 총자본은 올 3분기 935억원까지 줄어들었다. 차입금 역시 증가했다. 3분기 말 차입금 1569억원으로 2017년과 비교해 11.5%(162억원)증가했다. 노동 집약적인 철도 제조업 특성상 시설 투자가 덜 요구되지만, 완성 후 대금을 받는 해비테일(Heavy-Tail)구조다 보니 자금 조달의 필요성은 꾸준히 있다. 당연히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졌다. 2017년 말 34.5%였던 차입금 의존도는 4.8%p 올라 39.3%까지 증가했다. 차입금 의존도는 통상적으로 30%를 기준으로 많고 적음을 평가한다.
박도휘 삼정KPMG 책임연구원은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부채비율이 200% 이상일 경우 잠재적 위험 요소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부채비율이 300%일 경우 금융비용이 순이익보다 많은 수준"이라며 "부채비율 400% 이상의 기업은 고위험 기업으로 분류한다"라고 분석했다.
지난 7일 현대로템은 1060억원의 영구채 성격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며 부채비율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이자가 발생하는 증권이다 보니 여타의 차입금처럼 이자비용이 발생해 현대로템의 영업외비용을 증가시킨다.
20년 사이 5배 증가한 철도 부문 해외 매출 비중
과거 현대로템은 꾸준히 이익을 냈다. 내수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사세를 키웠다. 현대로템은 1999년 7월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국내 철도차량 3사를 통합해 설립된 법인이다. IMF 이후 급격히 줄어든 국내 시장에서 3사를 통합했으니 내수시장의 지위는 우월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철도 내수 매출은 회사를 이끌었다.
2002년 전체 매출에서 철도차량 내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3%, 수출은 16%였다. 내수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할 당시 영업이익률은 2002년 7.6%, 2003년 12.1%를 내는 등 우수했다. 최승호 당시 한국신용정보(현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내수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해 수주 단가가 상승하고 있다"라면서 "가격경쟁력과 제작능력을 기반으로 신뢰성과 인지도를 회복했다"라고 2003년의 현대로템을 설명했다.
이후에도 현대로템은 승승장구했다. 2002년 신용등급이 BBB였던 현대로템은 2008년 A-, 2009년 A, 2012년 A+까지 10년 사이 3계단 올랐다.
2010년 초반 현대로템의 영업이익률. 출처/한국신용평가
10년간 승승장구했던 현대로템의 상황이 변했다. 철도 부문의 해외의존도가 급증했다. 2002년 20.2%이었던 철도부문 내 해외 매출 비중은 2010년에는 50%까지 증가했다. 게다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래 매출을 가늠할 수 있는 수주잔고 중 해외 프로젝트의 비중이 85%에 달하기 때문이다.
철도 차량은 기본적으로 수출이 어렵다. 해외 매출 비중이 낮았던 2004년 현대로템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대로템은 "(철도 차량 시장에) 초기 진입에 성공하려면 당연히 가격경쟁력, 기술경쟁력 그리고 품질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라면서도 "그러나 선진시장을 제외한 시장에서는 아직도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요소이므로 입찰시 저가공세를 유발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운송비가 만만찮아 차량 자체의 가격경쟁력만으로는 타 지역의 수출이 매우 어렵다"라면서 "이러한 이유로 철도차량은 우수한 기술과 품질만으로는 타 지역 진출이 여의치 않으며, 지역을 중심으로 독점화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까지 현대로템은 내수 시장에서 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달랐다. 봄바디어(Bombardier), 스테들러(Stadler) 등 글로벌 경쟁업체가 있어 기술과 품질에서 압도적이기 어렵다. 가격 경쟁이 불가피하기에 마진율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전동차 제조업체 스태들러. 출처/스태들러 홈페이지
이 같은 상황에서 인건비 상승, 설계 변경과 같은 돌발 변수가 생기면 예정보다 원가율은 상승한다. 또한 수출 비중이 높기에 환율, 지정학적 변수도 원가율 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달러에서 브라질 헤알화로 결제통화가 변경된 탓에 적자를 낸 2015년 현대로템의 실적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탄탄했던 사업 부문도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로템의 효자 사업 부문이었던 철도 내수 시장도 독점이 깨졌다.
다원시스(068240) 때문이다. 2015년 처음 공공기관으로부터 수주를 따냈던 다원시스는 사세를 서서히 확장했다. 올해 포스코건설로부터 처음으로 수주하며 민간투자사업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플랜트 사업 부문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영업손실률은 30.8%였다. 100원을 벌면 제조와 판매, 관리를 위해 130원을 썼다는 의미다. 2014년 이후 꾸준히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고착화된 수준이다.
우유철 부회장 효과는?
우 부회장은 '2027 VISION 선포식 및 사업실천 결의회'에서 현대로템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목표는 2022년까지 ▲영업이익률 5% 달성 ▲전체 수주에서 신사업 비중 10% 확보 ▲R&D 투자 연평균 성장률 30% 증대 ▲업무효율 10% 개선 등이다. 이를 위해 설계변경, 사업지연 등에 대한 프로젝트 관리능력 강화, 수주 전 사업성 분석을 위해 수주심의제도 등을 세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대는 모습이다. 우선, 호주 시드니 전동차 계약 변경의 건이다. 호주 시드니 전동차 계약은 2016년 수주했다. 올해 826억원 추가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건은 올해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시드니 2층 전동차 사업의 설계변경과 공기 지연, 저가 수주된 국내 프로젝트의 추가 원가 반영 등으로 손실 규모가 올해 확대됐다"라고 분석했다. 프로젝트 관리능력 강화, 영업이익률 5%, 수주 심의를 했다면 나올 결론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R&D 투자 증가와 관련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다. 연평균 30%를 높이겠다는 연구개발비는 3분기까지 750억원을 지출했다. 연환산시 1000억원 수준인데,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8.6% 증가한 수준으로 증가율은 2018년보다 낮다. 2018년에는 2017년과 비교해 R&D 비용이 10.8% 증가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플랜트 사업 부문에 대한 처방전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우유철 부회장이 현대로템으로 돌아오자마자 임직원에게 "돈 되는 사업만 하자"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졌다. 플랜트 부문은 이 말에 자유롭기 어려운 사업 부문이다. 100원 벌며 130원을 썼기 때문이다.
현대로템 수처리 사업부문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카타르 알다키라 프로젝트. 출처/ 한국기업평가
올해 플랜트 사업 부문의 매출은 줄었다. 3분기까지 플랜트 부문의 매출은 30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60억원보다 26% 감소했다. 고정비 탓에 단기적인 실적은 적자일 수 있다. 고정비는 단기간 바뀌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재호 나신평 연구원은 "플랜트 부문의 계열 캡티브 물량 확보 등을 고려할 때 우수한 사업기반을 보유했다"면서 "향후 수익성이 저조한 플랜트 사업의 실적 비중 감소와 방산부문의 실적 비중 확대 등을 기반으로 점진적인 영업수익성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