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김태호 기자] 강도 높은 자구책에도 현대일렉트릭의 A급 신용도 유지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중동 수주량 감소에 실적 부진은 지속되고 있고, 차입금의존도도 높아졌다. 사업 경쟁력 역시 악화됐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었던 국내 업황마저 좋지가 않다.
현대일릭트릭은 최근 유상증자 등을 발표했지만 비상등은 계속 깜빡이고 있다. 다만 선박용 제품 실적 확대와 고정비 절감 계획 등이 얼마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대일렉트릭은 현재 강도 높은 자구안을 이행 중이다. 지난 16일 1500억원 유상증자 단행을 발표했다. 유증과 함께 용인 마북리연구소, 울산공장 내 선실공장 부지, 선박제어사업 양도 등 자산·사업부도 매각해 1500억원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확보 예정금액인 3000억원 중 400억원은 연구개발비 등으로 투입되고, 나머지는 차입금 상환에 소요될 전망이다. 자구안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현대일렉트릭 총차입금의존도는 30% 수준으로 하락해 일단은 하향 트리거에서 벗어날 전망이다.
한국기업평가는 등급 하향 트리거로 총차입금의존도 35% 초과 지속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순차입금의존도 30% 상회 등을 언급하고 있다.
다만, 신용등급 A급 유지까지는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사업 경쟁력 약화로 재무안정성이 재차 나빠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일렉트릭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2% 감소한 8231억원을 기록 중이다.
실적 회복이 동반되지 않으면, 유상증자 등의 자구안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된다. 과거 이력도 있다. 현대일렉트릭은 지난 2017년 2489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총차입금의존도를 25% 내외까지 낮춘 바 있다. 그러나 영업실적 부진으로 차입금의존도는 올해 6월 말 40.7%로 재차 높아졌다.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일렉트릭의 이번 자구계획이 신인도 하향 압력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유가가 뭐길래…지속 중인 중동발 실적 악화 여파
사업 경쟁력 제고는 중동 부문 매출 회복에 달려있다. 실적 악화 주요 원인이 중동 수주량 감소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현대일렉트릭의 중동 매출 실적은 몇 년 전부터 급격히 악화됐다. 2017년 중동 매출액은 직전연도 대비 36.2%나 감소한 390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이보다 41.8% 더 감소한 2272억원을 기록했다.
유가가 급락한 탓이다. 현대일렉트릭의 주력제품인 변압기, 고압차단기 등 전력기기는 국가 전력인프라 사업에 투입된다. 중동 국가는 원유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할 경우 관련 투자 진척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현대일렉트릭의 중동 내 주요 거래국가는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UAE), 쿠웨이트 등이다.
실제로 지난 2016~2017년 두바이유 선물 평균 가격은 배럴 당 약 47달러를 기록했고, 그 영향으로 관련 투자가 위축돼 현대일렉트릭의 2017~2018년 평균 중동발 수주액은 2016년 대비 67%가량 감소한 1억8000만불을 기록했다.
수주업 특성상 수주시점과 매출발생 사이에 1년 이상의 간극이 발생한다. 즉, 2017~2018년 수주량 감소는 2018~2019년 매출액과 이어지는 셈이다.
때문에 현대일렉트릭의 지난해 연결 기준 중동 매출액은 2016년 대비 58.8% 감소한 227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더욱 줄었다. 상반기 연결 기준 중동 매출액은 2018년 대비 33.8% 감소한 978억원에 불과했다. 즉, 유가 하락→중동발 수주 감소→매출 감소 흐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말하면, 유가가 상승할 경우 중동발 수주량은 자연스럽게 늘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지난해 유가가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중동발 수주량 회복은 더뎠다.
2018년 두바이유 선물 평균 가격은 지난 2016~2017년 대비 48.3% 상승한 배럴 당 69.7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일렉트릭의 지난해 중동발 수주량은 2017년도 대비 0.6% 늘어난 1780만불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올해 중동발 수주는 더욱 위축됐다. 상반기 수주량은 지난 2017년 대비 18.4% 감소한 8000만불을 기록했다. 특히 2분기 수주량은 6분기래 최저인 2400만불에 불과했다.
김연수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과거 대비 낮은 수주잔고 수준과 불리한 시장 환경 등을 감안 시 단기간 내 매출 회복 여력은 제한적”이라며 “높은 수준의 고정비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중단기적인 영업수익성은 낮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분석했다.
현대일렉트릭 측은 "중동 주요 발주국 재정 적자로 위축됐던 인프라 투자 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유가가 상승하더라도 실질 인프라 투자 증가에는 시간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 수준의 시장 규모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ESS 화재에 발목…선박용 제품 매출 회복될까
중동발 매출 회복이 불투명하다면, 국내를 비롯한 미국 등 중동 외 지역의 매출이라도 크게 늘어야 한다. 하지만 전력기기 등 업황이 대체로 좋지 않은 모습이다. 국내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기조 확대 등으로 관련 투자가 줄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현대일렉트릭의 올해 상반기 국내 매출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5.8% 감소한 3833억원을 기록했다.
게다가 ESS 화재 발생으로 매출 하락은 더욱 가속화됐다. 현대일렉트릭의 ESS 등 에너지솔루션 부문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체의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크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비중이다. 현대일렉트릭의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에너지솔루션(ESS) 사업 부문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5% 감소한 256억원 기록했다.
심지어 수주량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가 6월11일 ESS화재 사고원인을 발표했고, 그 이후 강화된 안전기준 및 사업비 구조 변동 등이 적용되면서 기존 계약 일부가 취소된 탓이다.
현대일렉트릭은 선박용 전기제품 매출 확대 등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새다. 전방산업인 조선업 업황 회복 기대감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 관련 매출은 감소세를 보여왔다. 2014년 선박 관련 매출액은 5770억원으로 총 매출의 25%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반 토막 난 2095억원을 기록하면서 매출 비중도 10.8%로 줄었다. 수주액이 급감한 탓이다. 지난 2017년 수주액은 2014년도 대비 72.1% 감소한 1억5500만불에 불과했다.
다만, 수주 상황은 지난해부터 개선되고 있다. 2018년도 수주액은 직전연도 대비 20% 증가한 1억8500만불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 수주액은 전년 동기 대비 65.7% 증가한 1억6400만불을 기록했다. 이미 직전연도 총 수주액의 89%를 달성한 셈이다. 수주액은 1~2년 시차를 두고 매출에 총 반영된다.
그 외 고정비 절감도 계획하고 있다. 국내외 생산공장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통한 생산효율성 개선으로 약 200억원 규모의 원가절감을 도모하고 있으며,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현대일렉트릭 측은 “올해 상반기 수주액이 전년 연간 수주액의 89%를 달성하는 등 저점 이후 양호한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라며 “중동 시장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주, 매출 회복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대일렉트릭 측은 “ESS의 경우 올해 3분기 이후 다수 계약 대기 고객들의 신규 계약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도 덧붙였다.
김태호 기자 oldcokewa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