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 박기범 기자]
현대상선(011200)의 자본금은 50%가량 잠식된 상태다. 반쯤 가라앉은 현대상선은 체질 개선을 위해 3가지 카드를 차례차례 꺼내들었다. 이 카드들은 현대상선의 체질을 근본적, 구조적으로 바꾸는 수준으로 흑자 전환도 기대된다. 하지만 누적된 결손의 해소까지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2분기 현대상선은 200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현대상선의 적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대상선은 2014년에 27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이는 사업부 매각에 따른 5000억원 수준의 처분이익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이익을 제외하면 2011년부터 8년 반 동안 내리 적자 행진이다.
장기간 이어진 적자는 자본잠식으로 이어졌다. 2013년부터 부분자본잠식(18.7%)에 빠지기 시작한 현대상선은 유상증자, 출자전환 등으로 꾸준히 자본금을 확충했다. 하지만 1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적자로 자본잠식률은 47%까지 이르렀다.
8년 반 동안 이어진 적자 기조는 해상 운송업의 환경과 현대상선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해상 운송업은 변동성이 크다. 게다가 공급은 비탄력적이다. 선박 건조 기간이 길어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16년에는 세계 1위 회사인 머스크(Maersk)를 포함해 전 세계 주요 회사가 동반 적자를 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경기가 좋을 때다. 경기가 좋다면 흑자를 내야 한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해운업 경기가 좋더라도 현대상선은 적자였다. 경쟁사들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주요 컨테이너선사 EBIT 마진. 출처/한국기업평가
현대상선의 적자 행진은 100%가 웃도는 원가율이 주원인이다.
2010년 이후 연결 기준 평균 원가율은 102%다. 전 세계 주요 회사가 동반 적자를 기록한 2016년에는 원가율이 111%까지 치솟기도 했다. 100원을 벌기 위해 판매, 관리 그리고 금융비용을 제외해도 102~103원을 썼다는 의미다. 부족한 금융(리스 금융 포함)·유류·용선(배를 빌려 씀) 비용 관리 능력은 구조적인 적자를 야기했다. 해운업의 특성상 100%가 넘는 원가율은 다른 산업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2010년대 현대상선의 원가율.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주 수익원인 운임 가격은 해운사에서 결정할 수 없다. 시장 가격에 순응해야 한다. 게다가 수요에 맞춰 공급이 변하기 어렵고, 후방산업인 조선에 운임료 하락을 전가하기에는 조선사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고 생산능력도 제한돼 있어 쉽지 않다. 해운업은 회사 간 서비스 차별성도 낮고 해운사도 많아 경쟁 강도가 센 편이다.
황용주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벌크 운송 사업은 진입장벽이 낮아 경쟁 강도가 매우 높다"면서 "컨테이너선 사업의 경쟁 강도는 항로별로 상이하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인건비, 용선료, 금융비용 등 자체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비용 관리가 장기적인 이익률을 결정한다.
금융위기 당시 맺었던 고가의 용선 계약은 현대상선을 적자의 늪으로 이끌었다. 현대상선은 앞으로 뱃값이 비싸지고 용선 비용도 더 오른다는 데 ‘베팅’했다. 게다가 기간도 길었다. 용선계약 기간은 보통 벌크선이 1~3년, 컨테이너선은 5~10년이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벌크선을 빌리며 10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었다. 금융 위기 이후 용선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은 상대적으로 경쟁사보다 높은 사용료를 지불하게 됐다. 2016년 현대상선은 용선료를 협상을 통해 20% 정도 낮췄지만, 여전히 시세보다 30% 정도 높은 수준이었다. 용선료가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다. (1조 7325억원/5조 4989억원)
3가지 카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유류할증료·디 얼라이언스 가입
현대상선의 첫 번째 카드는 초대형(23000 TEU급) 컨테이너선 20척 발주다.
지난해 현대상선은
대우조선해양(042660),
삼성중공업(010140), 현대중공업에게 1만5천 TEU급 8척, 2만3천 TEU 급 12척 등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했다. 국내 단일 선사 발주량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현대상선 측은 "친환경 초대형 선박은 최고의 연료 효율성을 갖춰 유류비 절감은 물론, 한 번에 많은 양의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기 때문에 수송하는 컨테이너 단위 당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라고 말했다.
리스는 물건의 가치와 함께 이자비용도 함께 지불하는 구조다. 그에 반해 발주 방식은 물건의 대가만 지불한다. 비용 절감과 아울러 금리의 영향을 덜 받게 되는 셈이다. 해운업은 환율, 금리, 유가 등 각종 변동성에 노출돼 있기에 변동성을 하나라도 줄일 필요가 있다. 황용주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해상운송업의 산업위험은 높은 수준"이라며 "수익 변동성은 운임 및 유가 등의 변동에 민감하게 영향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보유는 두 번째 카드인 디 얼라이언스 가입으로 이어졌다.
지난 7월 현대상선은 Hapag-Lloyd(독일), ONE(일본) 및 Yang Ming(대만)으로 구성된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의 4번째 회원사로 가입했다. 기간은 2030년까지로 총 10년간이며, 경쟁 당국의 승인을 거쳐 2020년 4월1일부로 협력 개시 예정이다. 디 얼라이언스는 해운 동맹 중 3위에 해당한다. 1~2위와 다소 격차가 있는 동맹이다. 세력을 키워야하는 디 얼라이언스 입장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보유할 현대상선은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은 앞으로 기존 회원사와 선박 공유, 터미널 공유 등을 하게 된다.
얼라이언스 가입으로 1.5조원 가량 매출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는 "현대상선은 디 얼라이언스 가입 이후 신규 화물에 따라 총 1조 5002억원의 매출액 증대를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아시아~북미 항로는 7170억원, 아시아~유럽 항로는 7832억원이다. 특히 유럽항로는 1년 사이 약 4.5배의 공급이 늘 것으로 관측했다.
현대상선의 극동아시아-유럽 항로 공급량 전망. 출처/KMI
세 번째 카드는 유류할증료 도입이다.
유류 할증료 도입으로 현대상선은 화주에게 유가 변동성에 대한 위험을 일부 전가한다. 과거에는 없던 일이다. 해운사들이 소위 '을'이다 보니 유류할증료에 관한 논의조차 나오기 어려웠다. 내년 도입 예정인 IMO 2020 환경 규제는 논의의 배경이 됐다. 선사들은 저유황유 사용, 스크러버 설치, LNG 선박 교체 등으로 상당한 비용 부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측은 "유류할증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서 "선사들 혼자 어마어마한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글로벌 대형 선사들도 유류할증료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선제적으로 도입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항구에서 배에 짐을 싣고 다른 항구에 배달하는 것이 해운업이기에 기름값은 순이익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보면 연료비의 규모는 매출원가의 14%(7386억원/5조4989억원)수준이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전방 사업자에게 유가 변동성에 대한 위험을 전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현대상선 측은 “유류할증료는 각 선사들마다 운영하는 노선, 선박 크기, 목적지에 따라 계산된다"면서 "현재 금액과 단계를 산출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100대 해운사의 자본 건전 수준. 출처/삼성KPMG
3가지 카드로 대수술한 현대상선…약발 먹힐까?
삼정회계법인에 따르면, 한국의 매출 순위 기준 상위 100대 해운사 중 자본잠식 상태인 회사는 5개였다. 이 중 하나가 현대상선이다. 그리고 부채비율은 653%다. 부채비율이 300%가 넘어가면 영업으로 이자도 갚기 힘들 기업이란 삼정회계법인의 연구도 있다.
박도휘 삼성KPMG 책임연구원은 "업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부채비율이 200% 이상일 경우 잠재적 위험 요소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부채비율이 300%일 경우 금융비용이 순이익보다 많은 수준"이라며 "부채비율 400% 이상 기업은 고위험 기업으로 분류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현대상선의 결손금은 4.1조원으로 과중한 수준이다. 최근 15년 사이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해의 평균 이익 수준은 3300억원 가량이다. 지난 15년 사이좋을 때 실적이 12.4년 이어져야 현재 결손을 해소할 수 있다.
아시아-유럽, 아시아-미국 항로 소석률 전망. 출처/MDS트랜스모덜
디 얼라이언스 가입만으로 이익구조 개선이 어려울 수 있다는 근거도 있다.
아시아-유럽항로의 평균 소석률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소석률이란, 배에 최대로 실을 수 있는 수준과 비교해 화물이 어느 만큼 실었느냐를 측정하는 비율이다. MDS트랜드모덜은 '아시아-유럽'노선의 물동량 증가와 동반해 소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컨테이너선이 대형화됨에 따라 공급량은 늘었지만, 해운 수요가 못 따라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운 공급량은 탄력적인 변화를 주기 어렵다.
현대상선 측은 "스크러버를 장착한 친환경 초대형선 확보를 비롯해, 신규 화주개발, 영업력 강화, 첨단 IT기술 도입 등의 노력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이를 통해 소석률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해사연구본부장은 "초대형 선박 투입에 따른 공급량 증가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공급과잉을 초래해 평균 선적률이 낮아지는 역효과를 가져온다"면서 "유럽에서 영업력이 낮은 현대상선이 얼라이언스 가입과 선대투입 이후 바로 평균 선적률에 이르는 선복량을 채우기에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박기범 기자 partn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