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다시 오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과 인수·합병(M&A) 시장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은행이 신용도와 담보력을 더 깐깐하게 따지면서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한 기업들은 사모신용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변동금리 차주는 늘어난 이자비용에 차환 부담까지 짊어지고, 사모펀드(PEF)는 인수금융 비용 상승으로 매도자와의 가격 간극을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IB토마토>는 금리 재상승이 자본시장에 일으킨 변화를 사모신용 시장의 확대, 변동금리 차주의 부실 위험, 인수금융 부담에 따른 M&A 지연·무산 사례를 통해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기준금리 재상승으로 기업 자금시장의 선별 현상이 짙어지는 가운데, 은행이 떠안기 어려운 기업금융 영역을 '사모신용(Private Credit)'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은행 기업대출 전체 규모는 오히려 늘고 있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증가하는 사이 회생기업이나 비상장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기업, 공모채 시장 접근이 어려운 차주들은 사모신용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은 이 같은 거래에 참여하는 차주의 금융비용과 투자자의 회수 부담을 높이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서는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 글랜우드크레딧, 스틱인베스트먼트 크레딧부문, IMM크레딧앤솔루션(ICS), JKL인베스트먼트 등 크레딧 운용사를 중심으로 직접대출과 전환사채(CB)·교환사채(E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지분담보형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AI 제작·IB토마토)
은행의 기업대출도 대기업 중심
은행이 기업금융 시장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금리가 뛰면서 회사채 발행을 줄이고 은행으로 이동하는 우량기업도 늘었다. 지난 9월 예금은행 기업대출은 한 달 동안 10조 7000억원 증가해 잔액이 1441조 5000억원까지 확대됐다. 증가액 가운데 대기업대출이 7조 5000억원으로 약 70%를 차지했고, 중소기업대출은 3조 2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만 은행 기업대출의 증가세는 올해 들어 대기업 중심으로 뚜렷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예금은행의 대기업대출은 22조 6000억원, 중소기업대출은 33조 4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올해 1~9월에는 대기업대출이 약 41조 5000억원 늘어 불과 9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증가액의 1.8배를 넘어섰고,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은 약 36조 10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증가액을 소폭 웃도는 데 그쳤다.
지난해에는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이 대기업보다 컸지만 올해는 대기업 증가액이 중소기업을 약 5조 4000억원 웃돌며 은행권 자금 공급 무게중심이 대기업 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는 은행권의 자본비율과 신용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는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소기업대출을 우선적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은행을 통해 회사채 상환자금까지 조달하는 반면 회생절차나 낮은 담보가치, 비상장 주식, 불확실한 회수구조 등을 안고 있는 중소기업은 은행의 일반적인 여신심사에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 사모신용이 파고드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회생기업부터 지분담보 대출까지…은행에 앞서 운용사가 설계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부품업체 코다코다.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과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는 올해 5월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코다코에 500억원 규모의 DIP금융을 제공하면서 천안과 안성 공장을 담보로 확보했다.
VAC와 한투PE는 코다코가 회생절차를 졸업한 이후 은행권 대출로 대환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 사모신용이 은행의 영구적인 대체재라기보다 은행이 당장 들어가기 어려운 단계에서 먼저 위험을 떠안는 ‘브리지’ 역할을 한 셈이다.
구조화금융 규모도 커지는 분위기다. 글랜우드크레딧은 올해 메가존 관련 거래에 약 8000억원을 투입했다. 약 6000억원은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성 투자로, 약 2000억원은 EB 형태로 구성됐다. 은행의 일반적인 기업대출과 달리 비상장 자회사 지분이라는 자산과 향후 기업공개(IPO) 가능성을 기초로 대규모 자금을 구조화한 것이다.
해당 거래 자금은 글랜우드크레딧이 조성한 4000억원 규모의 펀드에 하나은행과 농협은행,
미래에셋증권(037620)으로부터 나머지 4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조달했다. 은행이 기업에 직접 모든 위험을 부담하는 대신 사모신용 운용사가 뛰어들어 딜을 설계하고 자금을 공급, 은행과 증권사는 인수금융 조달을 통해 위험을 최소한 것이다.
이 같은 구조는 은행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형태로 참여할 수 있어 위험가중자산(RWA) 규제에 따른 자본규제 부담도 덜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사모신용은 자금 조달 기반을 확보하고, 기업은 자금 가뭄을 해소하는 상생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12일 발간한 ''미국 사모신용시장의 건전성, 유동성 및 시스템 리스크'에서 이 같은 구조를 두고 "은행이 중견기업에 직접 대출할 경우, 규제자본비율 산정 시 100%의 위험가중치가 적용되지만 사모신용펀드에 대출하면 위험가중치는 20%로 낮아진다"며 "낮은 위험가중치 적용이 자본비용 절감으로 이어져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상승시킨다"고 설명했다.
비예금금융기관을 통한 간접 신용공급 구조로 이동…국내도 확대
글로벌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증권은 '2026년 해외크레딧 전망' 보고서를 통해 최근 은행들이 고레버리지 기업에 대한 직접대출에서 후퇴했지만, 신용공급 자체를 줄이기 보다 비예금금융기관(NDFI)을 통한 간접 신용공급 구조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사모신용은 공모시장 접근이 어려운 미들마켓 기업을 중심으로 직접대출을 확대했고, 이후 사모펀드(PEF) 등과 결합하면서 시장 영역을 넓혀왔다는 진단이다.
하형민 하나증권 선임연구원은 <IB토마토>에 "은행이 리스크 특성상 취급하기 어려운 기업금융 수요를 사모신용과 같은 비은행 영역이 보완하는 흐름이 해외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사모신용 시장은 대출형 사모펀드 투자자가 기관 중심으로 제한되고, 투자 형태 역시 메자닌이나 구조화금융 중심이어서 해외 사모신용과는 구조에 차이가 있지만, 크레딧 전문 운용사의 펀드 조성이 늘고 있어 리스크 관리가 병행된다는 전제하에 은행과 비은행 간 역할 분담이 점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국내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 비경영참여형 PEF 운용사가 집행한 기업금융 사모대출은 2024년 기준 22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내 주요 크레딧 운용사의 블라인드펀드 결성액은 2025년 기준 3조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는 분위기다.
IB업계에서는 은행의 기업대출 총량보다 어떤 위험을 은행이 직접 보유하려 하느냐가 향후 사모신용 시장 확대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이 자본비율과 건전성을 이유로 고위험·비정형 여신을 선별할수록 그 밖으로 밀려난 기업의 자금 수요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모시장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사모신용은 결국 은행이 남긴 자금 공백에 가격을 매기는 시장"이라며 "금리 상승과 함께 기업금융 시장의 위험 선별이 강화될수록 은행과 사모신용의 경계도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는 아직 직접대출보다는 메자닌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시장 역시 담보나 상환재원 등 회수 가능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거래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